현재 시각은 00:53분. 잠들기 전에 반드시 선택해야 하는 한 가지 문제를 두고 나는 아직 깨어 있다. 혹시 누구한테 털어놓고 상의라도 할 수 있을까 싶어서 카톡을 보내봤지만 역시 잠들었는지 대화창의 1이 사라지지 않는다. 물론 내가 스스로 판단해서 결정해야 할 내 일이지만, 누군가에게 털어놓다가 내 진심을 알게 되는 경우가 있어서 새벽의 무례를 무릅쓰고 메시지를 보낸 것이었다.
글을 쓰는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은 내 안에 아주 오랫동안 끈질기게 자리 잡고 있었다. 왜 글을 쓰고 싶냐고, 무얼 쓰려는 거냐고 물으면 나는 딱히 대답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다만 이렇게 홀로 고민하는 밤에도 그 고민에 대해 쓰고 있는 나 자신을 보게 될 뿐.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했던 나는 글을 써서 먹고살겠다는 야무진 꿈을 꾸며 전업 작가에 도전을 했었다. 글쓰기에 매진하겠다며 연고지도 없는 지방 소도시에 하숙을 얻어 두 달 동안 도서관을 오가며 글을 썼다. 그때 쓴 얼토당토않은 단편소설 한 편을 가지고 신춘문예에 응모했지만 떨어졌고, 나는 미련 없이 먹고살 길을 찾아 직장인의 길로 들어섰다.
월급 받아 생활하고 연애하고 결혼하고 애를 키우는 동안, 글쓰기에 대한 열망은 아주 깊게 몸을 숨긴 듯했다. 그러나 문득 문학 공모전 사이트에 들어가 마감 일자를 검색하기도 하고, 혼자 비공개로 블로그에 글을 쓰다가 애 키우는 고단함에 슬그머니 문을 닫기도 하면서 나는 글쓰기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고등학교 동창이 시조 시인이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배가 아팠다. 멀찍이 그의 기사를 찾아보거나 그가 쓴 글을 읽어 보기도 했다. TV 드라마도 잘 안 보고 영화는 더 안 보면서 시나리오나 드라마 극본을 써보면 어떨까 하며 그쪽을 기웃거리기도 했다. 하지만, 너에게 특별한 필력이 있어? 네가 쓰고 싶은 게 뭔데? 과연 꾸준히 쓸 수 있을까? 이런 몇 개의 문장만으로도 나는 쉽게 글쓰기를 놓아 버렸다.
사실, 사는 게 너무 피곤했다. 어린 두 아이를 키우는 동안 나는 양치도 못하고 머리도 못 감고 쪽잠을 자는 일이 잦았다. 다른 엄마들도 하는 일이지만, 그렇다고 내 고생이 가볍지는 않았다. 남편 눈치 보고, 애들 키우고, 직장에 나가고, 살림을 하느라 나는 나날이 쇠약해졌다. 결혼하고 10년이 지난 지금, 나는 병든 몸과 복잡한 마음, 내일에 대한 기대가 없는, 생활비에 쫓기는 삶을 살고 있다. 내 가정을 위한 나의 헌신과 노력이 결코 헛된 것은 아니지만, 절대 아니지만.... 그래도 나 자신이 아예 사라지고 싶지는 않다.
몸과 마음에 병을 얻어 휴직을 했으나 3월에 복직을 앞두고 있다. 그리고 오늘 집 근처 학교에 발령이 났다는 연락을 받았다. 내가 원하는 곳으로 발령받기가 어려운지라 마음을 졸이고 있었는데, 내가 기대한 것보다 더 좋은 결과로 연락이 왔으니 기뻐해야 마땅했다. 잘됐다며 축하도 꽤 받았다. 그러나 내가 진짜 기다리던 소식은 따로 있었다. 지난 2주 동안 남몰래 하나님께 기도하고 간구했던 일.
<저에게 딱 한 학기만 시간을 주십시오. 지금 저는 글을 쓰기 시작했고, 글을 쓰는 게 즐겁고, 글을 더 써보고 싶습니다. 저에게 1000만 원만 주시면 어떻게든 살아볼 테니, 발령이 나기 전에 꼭 주세요. 제게는 회복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몸도, 마음도 돌볼 수 있는 시간을 조금만 더 주세요.>
나는 신에게 뭘 달라고 기도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이미 내게 필요한 것은 다 주셨다고 믿으면서 내 마음의 소원을 꽁꽁 숨기는 게 익숙하다. 그런 내가 10살 먹은 우리 딸처럼, 아이처럼 매달려 기도했다. 그것도 돈을 달라고 말이다. 만약 내가 혼자였다면, 나는 서슴없이 복직 대신 글쓰기를 선택했을 것이다. 나 혼자 먹고살고 빚 좀 지는 일에 겁을 먹을 만큼 쫄보는 아니다. 하지만 내게는 내가 먹여 살려야 할 두 아이가 있다. 그래서 지금 이 밤에 잠들지 못하고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나는 내일 새로 발령받은 학교에 가서 인사를 하고 복직 의사를 밝혀야 한다. 만약 휴직을 하겠다면 말할 기회는 내일 오전 단 한번뿐이다. 학교에서도 새 학기가 되기 전에 사람을 뽑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 글을 다 쓸 때쯤에는 내 마음을 정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여전히 답답하기만 한 것을 보니 나는 아무것도 포기하고 싶지 않은가 보다. 아이들을 키우는 데 필요한 월급도, 글쓰기라는 내 꿈도 말이다.
신은 내게 천만 원을 주지 않으셨다. 그러나 발령이 나기 전 날, 갑자기 내가 쓴 글을 읽은 사람들이 많아졌다. 1000명, 2000명, 그리고 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내 글을 읽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글이 내게 돈을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설렘으로 가슴이 뛰었고 더욱더 글을 쓰고 싶어졌다. 좋은 글, 위로가 되는 글, 세상에 흘려보낼 가치가 있는 글을 쓰고 싶다는 열망이 연약한 몸을 뚫고 마구 솟았다. 그리고 나는 이것이 신의 응원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래, 용기를 내자. 지난 10년, 그 전의 10년, 그 전의 10년을 그놈의 돈 때문에 망설이고 머뭇거리고 포기했는데 뭐 6개월 동안 빚이 좀 늘어난다고 해서 어떻게 되겠는가. 오늘 발령 축하한다고 연락받은 이들에게 돌연 휴직을 하겠다는 말을 하기가 머쓱하지만 그것은 잠깐이다. 결국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내 행복과 건강을 진심으로 응원해 줄 테니까. 글을 쓰면서 내일을 기다리게 되고, 그다음 내일을 꿈꾸게 되었으니까. 이미 답은 정해진 게 아닐까.
새벽 1:39.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선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