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가 좋긴 좋지

by 난화

나의 취미는 독서였다.

스마트폰이 등장하기 전까지 말이다.


어릴 때는 할 게 없어서 책을 읽었다. 집에 장난감도 없고, 텔레비전도 안 나오니까 할 게 독서밖에 없었다. 사람과 어울리는 것보다 방에 처박혀 책을 읽는 게 더 편한 적도 있었다. 허구의 이야기를 읽는 게 좋았다. 이야기를 읽는 동안만큼은 현실의 모든 짐에서 벗어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소설 속에서 불가능은 없었다. 하늘을 날고, 시간의 흐름을 거스르고, 정의가 승리하고, 비밀이 밝혀지고, 사랑이 있고, 스릴 있는 모험이 시작되었다. 상상 속 세계는 현실의 결핍을 치료해 주는 공간이었다.


책을 읽으면서 똑똑해지는 기분도 좋았다. 이해하는 문장이 늘어나는 만큼 세상을 잘 알게 되는 것 같았다. 책 속의 아름다운 문장은 오래오래 남아 구름 위를 걷는 폭신한 감동을 주었다. 내가 읽은 문장만큼 인간을 알고 품을 수 있게 되는 것 같았다. 이야기 속 인간들의 어리석음은 현실과 비슷했고, 악을 이기고 품는 선과 사랑의 힘은 어린 소녀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물론 현실에서 이런 고귀한 일은 모래밭에서 영롱한 다이아몬드를 찾는 것만큼이나 희귀한 것이었지만 말이다.


나는 지금도 영화, 드라마 등 영상으로 전개되는 이야기에 잘 몰입하지 못한다. 금방 지루해져서 스킵하거나, 영상의 구성을 이해하지 못해 꺼버린다. 사실 가끔 영화관에 가는 것도 캐러멜 팝콘 먹으며 쉬러 가는 거다. 어쩌면 영상 백치일지도 모르겠다. 타임 슬립이나 1인 2역처럼 구성이 조금만 화려해져도 이해를 못 하고 묻는다. "아까 저 사람 죽지 않았어?"


나는 책 읽기를 좋아하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분명 그런 사람이었는데, 최근 10년 동안 내가 스스로 찾아 읽은 책이 5권이나 될까 싶다. 충격적인 반전은 내가 국어 선생이라는 점이다. 학교에서 의무 도서로 선정되면 읽고, 내 자식들 앞에서 독서 연출(?)을 하기 위해서 책을 읽기도 했다. 하지만 그 옛날 책에 얼굴을 박고 읽다가 배고픈 줄도 모르고, 해가 넘어가는지도 몰랐던 독서의 기쁨은 사라진 지 오래다.


지금은 옆으로 누워서 핸드폰 붙잡고 있는 게 최고의 취미이자 특기가 되어 버렸다. 막상 핸드폰을 열어도 딱히 할 게 없는데, 소모적인 눈검색을 하다가, 남의 희로애락에 잠시 몰입되었다가, 유튜브를 떠돌고도 아쉬워 이 기계를 놓지 못한다. 한번씩 각성해서 집에 박제되어 있는 책을 꺼내어 보지만, 몇 장 넘기지 못하고 다시 또 핸드폰을 잡는다. 내가 사랑한 독서는 이제 영영 못 만날 아련한 옛사랑이 되어버렸는가.


무엇보다 지금은 허구의 이야기를 읽지 않는다. 지어낸 이야기에 폭 빠질 여유가 전혀 없으니 말이다. 책 한 페이지 넘기다가 이번 달 관리비 생각이 나고, 그다음 페이지에 아이 유치원에 보낼 새 칫솔 생각이 난다. 결국 책을 내려놓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날 수밖에 없다. 그나마 가끔 찾아 읽는 책은 '요즘 요리', '무명작가 글 쓰는 법', '불안한 엄마 무관심한 아빠' 같은 현실 문제의 돌파구가 되어줄 수 있는 것들이다.


독서에 몰입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그립다. 마음은 쓰지 않고 손가락만 써서 노는 핸드폰 놀이에서 나는 벗어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