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작년엔 뭘 입고 다녔지?
옷장에 빼곡히 걸려 있는 옷들을 보며 뱉는 말이다. 어릴 때 엄마가 사준 옷만 입어야 했던 시절에 비하면, 나는 지금 대단한 옷부자가 되었다. 계절별로 외투가 몇 벌씩 있고, 긴 스커트 짧은 스커트가 길이별로 걸려 있고, 블라우스와 남방도 있고, 카디건도 있고, 니트는 색깔별로 있고, 목도리도 있고 선글라스도 있고 귀걸이 목걸이 세트도 있다.
그런데 나가려고 하면 입을 옷이 없다.
매 년 옷을 새로 사는 것 같다. 새로운 계절이 와서 옷장을 열면 입을 만한 옷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울렛 1층의 행사장부터 2층 여성복, 3층 캐주얼 코너를 이 잡듯이 뒤져 고른 옷들이다. 매장에서 입어 보고 내 맘에도 쏙 들고 매장 언니도 적극 추천했던 옷이었다. 그런데 옷장에만 들어가면 험하게 이별한 옛 연인처럼 버려지고는 한다.
차라리 비싸고 좋은 옷을 한 두벌 사서 오래오래 입는 게 남는 거라고 했다. 결혼식에 입고 갈 옷이 마땅치 않다며 푸념을 하던 이모는 나더러 한 해에 비싼 거 딱 한벌만 사라고 한다. 싼 거 여러 벌 사봤자 금방 질리고 낡아서 못 입는다고 하면서 말이다. 그러면서 정작 자기는 동네 로드샵에서 행사에 입을 원피스를 고르고 있었다.
옷을 살 때마다, 그 옷은 내게 찾아온 운명 같았다. 이렇게 잘 어울릴 수가 없었다. 가격까지 마음에 쏙 들었다. 나를 위해 기다린 마지막 한 벌 같았다. 매장 거울에 비쳐 보면 울룩불룩한 곳 없이 잘 맞았다. 매장 언니와 그 옆에 옷을 구경하던 아줌마까지 찰떡이라고 호응을 해줬다. 그런데 집에 와서 다시 입어 보면 바지 허리가 불편했다. 아까는 안 보였던 옆구리살이 거슬린다. 블라우스의 팔이 잘 올라가지 않는다. 니트는 너무 짧아서 손을 흔들며 인사라도 하면 허연 런닝이 다 보인다. 젊은이들은 크롭 스타일로 잘만 입던데 팔을 어떻게 올리는지 의문이다. 무엇보다 세트로 사지 않는 이상 내 옷장에는 새 옷과 어울리는 옷이 없다. 이런저런 이유로 그렇게 새 옷은 내 눈밖에 나고 만다.
애 둘 낳고 몸이 망가져서 원래 몸무게보다 8-10킬로 그램정도 늘었다. 원래 입던 옷이 맞지 않아서 옷을 다 새로 사야 했다. 몸은 달라졌어도 예전에 입던 스타일을 포기하지 못해서 하늘하늘 원피스나 몸에 붙는 옷들이 많았는데, 거울 앞에 서면 그렇게 이상하지는 않았었다. 그러다 누가 내 사진 찍은 걸 보면, 마치 볼록렌즈로 장난친 것같이 푹 퍼져 있어서 깜짝 놀라고는 했다.
5년 이상 부은 몸으로 지내다가 작년에 그 살을 다 빼면서 원래 사이즈로 돌아오게 되었다. 그런데!!! 뚱뚱했을 때 산 옷들이 너무 잘 어울리는 것이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허리가 너무 헐거워서 못 입는 바지 외에는 원피스, 니트, 티셔츠, 고무줄 치마까지 모두 제대로 잘 맞았다.
'뭐야! 매장 언니도, 그 옆에 아줌마도, 거울을 보던 나 자신도 잘 어울리는 옷이라고 맞장구를 쳤는데, 뭐가 괜찮았던 거지?'
옷을 팔려는 언니의 욕망과 새 옷을 사고 싶은 나의 욕심과 내 퉁퉁한 몸이 거슬리지 않았던 아주머니의 안목이 합쳐져서 부적절한 쇼핑이 이루어졌던 것은 아닐까.
몸이 가벼워지니까 다시 또 예쁜 옷이 사고 싶다. 그런데 옷장 안에는 아직 입어달라고 아우성치는 옷들이 즐비하게 걸려있다. 유행에 맞지 않는다고, 나는 이제 저 스타일 안 좋아한다고, 이런저런 쇼핑의 핑계를 만들어내는 나 자신에게 꿀밤을 먹인다.
옷이 무슨 잘못이야. 네 변덕이 잘못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