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를 줄여 볼까

by 난화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성공적인 마케팅 전략은 바로 '중독'이 아닐까 싶다. 낯선 것을 익숙하게 만들어 습관과 루틴으로 자리 잡게 만들어 버리는 것.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 더 이상 자기 제품을 사달라고 애원하지 않아도 된다. 알아서 찾아와 지갑을 열 테니 말이다.


어릴 때부터 콜라와 과자를 먹으면 평생 단맛을 갈구하게 된다. 단맛에 길들여지면 그 외에 담백한 맛, 쌉쌀한 맛 등 다채로운 감각에 적대적이 되어 버린다. 짠맛, 매운맛도 이와 비슷해서 점점 더 강도 높은 맛을 찾게 되고 위장에 구멍이 나든 위산이 역류하든 쉽게 멈출 수 없다.


'중독'은 인간이 유한한 존재임을 증명하는 증상인 것 같다. 중독은 접근이 용이하고 단순하며 쉽게 쾌락을 맛볼 수 있다는 특징을 지닌다. 공부중독, 독서중독이 쉽게 일어나지 않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간혹 일중독이나 운동중독처럼 꽤나 멀쩡해(?) 보이는 중독이 있는데, 일이나 운동이 그 사람에게는 가장 안정감을 줄 수 있는 일이라는 점에서 충분히 중독의 조건이 된다고 볼 수 있다.


중독에 빠지기는 쉽지만, 벗어나려면 손모가지를 걸어도 될까 말까이다.


흡연중독, 게임중독, 도박중독, 마약중독의 무서운 점은 해롭다는 걸 인지해도 못 벗어난다는 점이다. 자기 인생이 무참하게 파괴되어도, 그 파괴자의 주체가 자기 자신이어도, 결코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 이때의 중독은 더 이상 의지나 정신력의 문제가 아니다. 중독이라는 괴물에 통째로 잡아먹혀 버렸으니까.


거창한 중독은 아니어도 현대인은 소소하게 하나쯤 무엇에 중독되어 있다. 드라마 중독, SNS 중독, 유튜브 중독, 주식 중독, 부동산 중독, 쇼핑 중독, 연애 중독... 자기가 좋아서 하는 일이라고 착각하지만, 멈출 수 없고 한계를 두지 못하는 걸 보면 중독이 틀림없다. 이 정도는 평균적인 중독이라며 스스로를 위안하면서 말이다. 어쩌면 우리의 주체적인 선택이라는 게 어떤 중독을 선택할 것이냐에 불과한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 쉽게 놓지 못하는 중독이 하나 있다. 바로 커피 중독이다. 고등학생 때 입시를 치르느라 믹스 커피를 하루에 두세 잔씩 먹은 게 시작이었다. 노란 맥심 커피믹스는 달콤한 각성제 노릇을 해주었고, 무엇보다 저렴했다. 그때만 해도 나는 믹스 커피만 먹을 줄 알았다. 스무 살이 되어 친구와 커피숍을 가도 핫초코나 아이스 초코를 먹었다. 시커먼 아메리카노는 외국에서 살다 온 사람이나 먹는 줄 알았다.


직장 생활을 하니 출근하자마자 믹스 커피를 종이컵에 타서 마시는 게 루틴이 되었다. 점심 먹고 나른한 몸을 깨우기 위해서 한잔 더 마시고, 퇴근 때까지 버틸 힘이 없는 날에는 한 잔을 더 털어 넣었다. 사회생활을 하며 커피숍에 갈 일이 많아지니까 슬슬 커피도 마시게 되었다. 첫 시작은 초코 맛이 나는 카페 모카였다. 휘핑크림 잔뜩 올라간 그 녀석은 전혀 커피 같지 않은 커피였다. 캐러멜 마키아또 역시 매력적이었다. 20대를 지나 30대가 되자 슬슬 단맛이 물리기 시작하고 바닐라 라테의 세계에 입문하게 되었다. 대놓고 달콤한 카페모카나 마키아또와 달리 은은하게 달아서 더 자주 먹게 되었다.


애 낳고 몸이 망가지니까 믹스 커피와 바닐라 라테가 비만과 역류성 식도염이 되어 돌아왔다. 이비인후과에 진료를 보러 갔더니 커피를 끊으란다. 그래서 물었다. 하루에 따악 한 잔은 안 될까요? 어쩌다 한 번은요? 전형적인 중독인의 증상이었다. 사실 믹스 커피는 첫 만은 달콤하지만 마시고 나면 속이 더부룩하고 입이 텁텁했다. 바닐라라테는 맛을 잘 내는 커피숍이 은근히 드물고, 가격도 비싼 편이었다. 나는 완전히 커피를 끊는 대신 어른의 맛, 아메리카노로 넘어갔다.


탕약 같은 시커먼 커피를 왜 마시는지 이해를 못 했었다. 처음에는 한 두 모금 맛만 보는 정도였다. 그런데 지금은 하루 한 잔 이상 물처럼 마시고 있다. 동네 어디를 가도 1500원 내면 큰 컵에 커피를 왕창 담아 주는 매장이 꼭 있다. 하루 한 잔 사서 아침부터 밤까지 깨작깨작 마시던 것이, 이제는 하루 두 잔은 마실 만큼 늘었다. 술은 안 마시지만, 주량도 이런 식으로 늘어나는 걸까? 아메리카노는 다른 간식과 궁합도 찰떡이라 케이크나 와플 등에 꼭 곁들이게 된다.


나는 이렇게 중독에 관한 글을 쓰고 있는데, 다 알고 있는데, 그런데 커피를 손에서 놓지 못한다. 이렇게 노트북 자판을 두드릴 때 커피는 또 얼마나 잘 어울리는지. 커피를 대체할 수 있는 건강한 중독이 있으면 갈아타고 싶다. 친구에게 선물 받은 허브티가 싱크대 안쪽에 있는데 영 손이 안 간다.


하루 커피 값 1500원. 나를 위한 선물일까? 중독의 대가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