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머리를 맡길
미용실 찾습니다

by 난화

머리를 감고 말리면서 거울을 본다. 아무래도 미용실에 가긴 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 파마가 5개월 전이었다. 그 뒤로 간간히 커트를 하면서 돈도 아끼고 스타일도 살려 왔는데 이제는 한계에 온 것 같다. 머리 길이도 어정쩡하고 앞머리도 다 내려앉았다. 머리끝 웨이브도 거의 풀려서 맨날 올려 묶고 다녔다. 그래, 봄이 오는데, 이런 우중충한 스타일로 꽃들을 맞이할 수 없지. 가자, 미용실로!


그런데 어디로 가지?


석 달 전 새로운 동네로 이사를 왔다. 아이들을 데리고 다닐 병원도 찾고, 적당한 가격에 싱싱한 채소와 과일을 파는 마트도 봐뒀는데, 미용실은 아직이었다. 미용실 유목민으로 지내 본 이들은 다 안다. 자신의 머리털을 안심하고 맡길 미용실 찾는 게 얼마나 어렵고 두려운 일인지.


기분 전환 하고 싶어서, 이뻐지고 싶어서, 변화를 주고 싶어서, 미용실에 갔다가 충격과 공포를 경험하고 돌아온 적이 있을 것이다. 기대와 설렘을 안고 갔다가 내 돈 쓰고 슬퍼지는 일이 생긴다. 소개팅할 때마다 실패하고 돌아올 때의 우울과 비관의 멜랑콜리를 미용실 문을 나서며 경험한다. 분명히 검색했을 때 방문자 리뷰가 아주 훌륭했다. 기장 추가도 없다고 했다. 원장님 경력도 훌륭했다.


그런데 가니까 손상 방지 어쩌구 하며 비용이 추가되고, 내가 들고 간 사진처럼 해준다고 했는데 내 얼굴이 문제인지 완전 다르고, 심하면 머리카락이 우수수 끊어진다. 미용실에서 드라이해줬을 때는 괜찮았는데, 집에 와서 머리를 감으니까 파마가 풀려버린다. AS 요청하러 가자니 눈치가 보이고, 용기 내어 찾아가도 냉랭한 대우를 받게 되니 다시는 안 가는 소심한 복수 밖에는 길이 없다.


이사오기 전, 나는 한 미용실을 8년 동안 다녔다. 원장님이 40대에서 50대가 되고, 나는 30대에서 40대가 되는 긴 시간이었다. 두 번의 이전이 있었고, 물가 상승에 따라 뿌리 염색 비용이 2배로 올랐지만 나는 미용실을 옮기지 못했다. 처음에는 가격이 저렴하길래 들른 곳이었다. 2000원 주고 앞머리를 잘랐는데, 마음에 들었다. 나는 기미상궁처럼 처음 미용실을 고를 때 앞머리 커트부터 시도한다. 생각보다 정교한 기술이 필요한 시술이기 때문이다.


애기 낳고 허옇게 새치가 번졌길래, 뿌리 염색을 하러 간 게 두 번째 방문이었다. 가격은 저렴했지만 두피에 자극도 없고 색깔도 잘 맞춰 주셨다. 두 번의 성공에 자신감을 얻어 세 번째 찾아가서 파마를 시도했다. 나는 유전으로 일찌감치 머리에 새치가 생겼다. 새치를 감추려니 맨날 시커먼 머리색을 유지했었는데, 원장님은 젊은 사람인데 머리색을 밝게 해 보라고 권하셨다. 고심하시더니 저렴한 가격에 블랙 빼기 시술을 해주셨고, 그날 퇴근 시간을 넘기면서까지 4시간 넘게 염색과 파마가 이루어졌다.


원장님의 장인 정신(?)에 감동한 나는 단골손님이 되었다. 무엇보다 나는 손재주가 없어 머리 손질을 잘하지 못한다. 애 둘 키우느라 늘 허덕이니 정신도 없고, 돈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미용실에 가면 늘 '알아서 해주세요' 했다. 그러면 원장님은 이리저리 내 머리를 살펴보시고 진짜 알아서 해주셨다. 최대한 오래가면서 커트로 버틸 수 있게 했고, 신기한 것은 매 번 다른 스타일로 만들어 주셨다는 점이다. 지난 8년 동안 안 해본 펌이 없다. 뚱뚱하면 부은 얼굴을 커버할 수 있게, 핏기가 없을 때는 발랄하게, 평범한 아줌마의 스타일리스트가 되어 주셨다.


시간이 흐르며 원장님과 나는 서로 만날 날을 기다리는 친구가 되었다. 나이 차이는 10살 이상 났지만 결혼하고 애들을 키운 공통점이 있어서인지 말이 잘 통했다. 원장님은 내가 가는 날에는 일부러 예약을 막아 두고 둘 만의 시간을 준비했다. 점심시간이 되면 머리를 수건으로 말아 올리고 같이 김밥도 시켜 먹었다. 속 썩이는 남편과 사는 고달픔, 자식들을 품는 수고로움, 건강하지 못한 생활에 대해 나누며 우리는 서로의 위로자가 되었다.


이사를 앞두고 마지막 방문한 날, 원장님은 천천히 공을 들여 머리를 만져 주셨다. 그동안 머리가 마음에 들지 않은 순간도 있었겠지만, 당장 이쁜 것보다 오래오래 유지되며 보기 좋게 하는 쪽을 택해서 그랬었노라고, 혹시 서운한 맘이 있었더라도 잊어 달라 했다. 나는 한 번도 마음에 안 든 적이 없었다고. 내 마음과 주머니 사정까지 헤아려 가며 머리를 해주셔서 고마웠다는 말로 답을 하며 우리는 마지막 인사를 나누었다. 서로를 꼬옥 안아주는 따뜻한 작별이었다.


지난 8년 간의 미용이 너무 근사했기 때문일까. 나는 아직 정착할 미용실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 도시 어딘가에 새로운 인연이 있으리라 기대해 본다. 다시, 앞머리 커트부터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