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낳고 난 이후 내 사진을 거의 찍지 않는다. 가족사진을 찍어야 할 경우를 제외하면 내 모습을 따로 남기는 걸 꺼려했다. 결혼 후 10년 치의 사진을 다 모아도 몇 장 안 될 것 같다. 대신 아이들 사진은 수 만장이나 되서 대용량 외장하드를 따로 구입해 모아 놓았다. 아름답고 반짝이는 순간을 향해 카메라를 누르게 되니까, 시들어버린 나 자신은 피사체에서 자연스레 제외되었다. 나의 빛나는 시절과 꽃 같은 웃음은 전부 결혼 전 앨범에 갇혀 있다.
결혼식장에서 동화 속 공주님 같은 드레스를 입은 게 최후의 호사였다. 그 뒤에는 구박덩이 신데렐라 같은 일상이 이어졌다. 밥 하고 설거지하고 빨래하고 청소하고 공과금 내고 대출 이자 갚고 그 와중에 출근해서 돈 벌고 시댁 챙기고 애 낳아서 죽어라 키우고 현모양처이자 효부 노릇을 하면서 버둥거렸다. 그러나 신데렐라에게 가장 고통스러웠던 것은 그녀의 무거운 책임이 아니라 이 모든 걸 인정받지 못하고 무시를 당해야 하는 서러움이 아니었을까. 왕자님을 만난 줄 알았는데, 여자를 사랑할 줄 모르는 가짜 왕자님이었다. 결국 재투성이 여자의 일상은 혼자일 때보다 더욱 고단해졌다.
서울대를 졸업하고 석사 과정을 밟으며 박물관 도슨트로도 활약하던 친구가 아기를 낳았다. 신혼집은 서울이지만 일하면서 아기를 돌볼 수가 없어서 수원에 있는 친정에 아이를 맡기고 주말에 보러 갔다. 아이가 8살이 되어 초등학교에 입학하자 친구는 공부와 일을 다 그만두고 아이를 데려 왔다. 아이는 세 살에 한글을 뗄 만큼 똑똑하다고 했다. 친구의 똑똑함은 세상을 향해 꽃을 피우지 못하고 저만치 시들어버렸다. 나 역시 발령 동기인 남교사가 내가 아이 둘을 낳고 키우느라 육아 휴직을 반복하는 동안에 성과급 최고 등급을 받을 만큼의 위치에 올라간 것을 목격했다. 둘의 출발선은 같았으나, 앞으로는 영영 그 간격을 좁히지 못할 것이다. 이것은 우리의 자발적인 선택이었을까? 정말...?
우리는 대한민국에서 성적으로는 상위 5%, 10% 이내에 드는 여자들이었다. 죽어라 공부해서 대학에 갔고 토익 시험도 보고 유럽 여행도 갔다 오고 자격증도 따서 졸업했다. 누구는 아나운서 시험을 준비하고, 누구는 교사가 되고, 누구는 출판사에서 일을 하고, 누구는 금융 회사에 취업을 했다. 우리는 서로의 길을 응원했고 어쩌면 서로를 자랑스러워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다 카톡 프로필 사진이 웨딩드레스에서 아기 사진으로 바뀌고, 육아 휴직 소식이 들려오고, 버티다 못해 전업 주부가 되었을 때쯤 우리는 소식이 뜸해졌다.
똑똑한 여자들이었다. 책도 많이 읽고 영어도 잘하고 인간 관계도 넓었다. 집에서 학원비와 취업 준비로 지원해 준 돈도 어마어마할 것이다. 언젠가 친구와 이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렇게 집에서 집안일하고 애들 숙제나 봐줄 거면 대학은 뭐 하러 나왔나 모르겠다고. 좋은 대학 나왔다고 애 더 잘 보는 것도 아닌데. 어쩌면 그게 우리 인생의 마지막 휴가 아니었을까, 하고 말았다.
결혼이 인생의 전부인 시대는 진작 사라진 줄 알았다. 가진 게 없어도 미래가 있고 꿈이 있고 함께 어울려 수다 떨 친구들이 있는 어여쁜 청춘들이 아내가 되고 엄마가 되면 미래와 꿈과 친구를 거의 잃고 만다. 함께라서 더 빛날 줄 알았던 결혼 생활은 다툼과 무거운 책임과 상처로 위기를 맞는다.
나는 문정희 시인의 '그 많던 여학생들은 어디로 갔는가'라는 시를 진작 알고 있었다. 20여 년 전 대학 다닐 때 읽었다. 그러나 내가 그 시 한 복판을 살아가게 될 거라고는 상상조차 못 했다. 나는 내 힘으로 끝없이 반짝거릴 줄만 알았다. 세상은 변했고, 변하고 있다. 그런데 50년 전에도, 20년 전에도, 지금 2025년도에도 사라진 여학생들이 너무 많다. 해도 해도 너무 많다.
그 많던 여학생들은 어디로 갔는가
- 문정희
학창시절 공부도 잘하고
특별활동에도 뛰어나던 그녀
여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입시에도 무난히
합격했는데 지금은 어디로 갔는가
감자국을 끓이고 있을까
사골을 넣고 3시간 동안 가스불 앞에서
더운 김을 쏘이며 감자국을 끓여
퇴근한 남편이 그 감자국을 15분 동안 맛있게
먹어치우는 것을 행복하게 바라보고 있을까
설거지를 끝내고 아이들 숙제를 봐주고 있을까
아니면 아직도 입사원서를 들고
추운 거리를 헤매고 있을까
당후보를 뽑는 체육관에서
한복을 입고 리본을 달아주고 있을까
다행히 취직을 해 큰 사무실 한 켠에
의자를 두고 친절하게 전화를 받고
가끔 찻잔을 나르겠지
의사부인도 교수부인 간호원도 됐을거야
문화센타에서 노래를 배우고 있을지도 몰라
그리고는 남편이 귀가하기전
허겁지겁 집으로 돌아갈지도
그 많던 여학생들은 어디로 갔을까
저 높은 빌딩의 숲, 국회의원도 장관도 의사도
교수도 사업가도 회사원도 되지못하고
개밥에 도토리처럼 이리저리 밀쳐서
아직도 생것으로 굴러다닐까
크고 넓은 세상에 끼지 못하고
부엌과 안방에 갇혀 있을까
그 많던 여학생들은 어디로 갔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