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의 꽃은 연애다. 젊은이는 연애를 해야 한다. 본격적인 인생의 계산이 시작되기 전, 유일하게 '감정'이라는 원료 하나로 열정을 활활 불태울 수 있는 황홀한 기회이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밖에 사랑할 줄 모르는 인간이 타인에 의해 좌지우지되며 찾아오는 불안과 환희를 경험하면서 인간은 성장한다. 논리와 이성으로 설명되지 않는 우스꽝스러운 감정놀음에 시달리면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선명하게 볼 수 있다. 내가 이렇게 유치했나? 이렇게 잘 웃는 사람이었나? 이렇게 눈물이 많은 사람이었나? 이렇게 집착이 심했나? 연애가 던져 주는 숙제를 외면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분명히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
나에게 연애는 '동화'였다. 살벌한 다큐멘터리 같은 현실에서 도망쳐 숨을 수 있는 환상의 세계였다. 나의 동화 속 왕자님은 엄청나게 잘생길 필요도 없고, 돈이 많지 않아도 되고, 이름난 대학에 다니지 않아도 됐다. 그냥 나만 사랑해 주면 합격이었다. 바로 이게 내 연애의 치명적인 함정이었다. 차라리 원하는 조건 몇 가지를 만족시키는 사람을 만나는 게 쉽지, 마음의 갈증을 채워줄 사람을 만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왜냐하면 그 마음의 구멍은 내가 해결해야 할 과제이지, 타인에 의해 메워질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젊은 날의 나는 상대의 사랑이 부족해서 이별하는 거라고 믿었다. 내 연애는 언제나 뜨겁게 시작해서 차갑게 끝났다.
흑백의 일상을 반짝반짝 빛나게 해주는 연애의 단물만 빼먹느라 나는 성장하지 못했다. 나는 연애를 위해 연애를 했다. 사랑이 끝나면 많이 울었지만, 다시 그 빈자리를 채울 사람을 찾아냈다. 심지어 내 사랑은 솔직하지도 못했다. 내 안에 휘몰아치는 열정을 들키면 질리지 않을까 싶어 꼭꼭 숨기기 바빴다. 신식 여성이니까 남자친구와 데이트 비용도 꼬박꼬박 더치페이를 했다. 내 통장 잔고가 여의치 않다는 걸 밝히기 싫어서 이별을 택한 적도 있었다. 1년 넘게 만나도 화장 지운 맨얼굴을 보여주지도 않았다. 상대가 왕자님은 아니어도 되지만, 나는 늘 공주처럼 보이고 싶어 했다. 나의 겉과 속을 다 내보이고도 사랑받을 수 있을까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내 연애가 오로지 뜬구름 잡는 '감정'만으로 유지되었기 때문에, 현실에 두 다리를 딛고 살아내야 하는 결혼 생활이 행복할 리 없었다. 뭘 먹을지, 어디를 갈지, 부모님 용돈은 얼마를 드려야 할지, 명절 선물은 뭘 살지, 조카들 용돈은 얼마를 줘야 하는지, 쓰레기는 누가 버리고 설거지는 또 누가 할 것인지, 두루마리 휴지는 저렴한 홑겹을 살지 도톰한 4겹을 살지, 마음이 상한 걸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상대의 잘못을 넘어가야 하는지 따져 물어야 하는지... 매 순간의 선택 앞에 버벅거렸다. 생각해 보니 연애 시절에 제대로 싸워 본 적도 없고, 깊은 대화를 나눠 본 적도 없었다. 그냥 서로 잘해주기에만 급급했다. 그러니 나도 그 사람도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까막눈이었다. 자기 자신을 잘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남과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을까.
언젠가 한국에 정착해서 살고 있는 북유럽 출신의 젊은이들이 모여 대화를 나누는 영상을 본 적이 있다. 그들은 입을 모아 한국 사람들이 너무 감정적인 연애를 한다고 했다. 한국인 연인과 사귈 때 가장 힘든 부분이 싸우거나 갈등이 생길 때 대화를 하지 않고 적당히 넘어가는 것이라 했다. 선물을 주거나 애교를 떨어 그 상황을 모면하고, 대화로 풀자고 하면 왜 이렇게 따지냐고 기분 나빠하며 피로감을 표시한다는 것이다. 나는 지금의 청춘들이 북유럽 젊은이들같이 피곤한 연애를 했으면 좋겠다. 서로 충돌하는 지점에서 대화로 풀어나가는 경험을 충분히 하기를 바란다. 결혼 생활의 가장 큰 벽은 '말이 안 통한다'는 것인데, 좋은 인간관계를 위한 대화는 아주 고도의 기술이라 반드시 연습이 필요하다.
결혼의 균열 조짐은 이미 연애에서부터 나타난다. 사랑의 감정 뒤에 숨은 진짜 당신은 누구인가? 결혼식장에 들어서기 전에 답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