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치: 남의 마음을 그때그때 상황으로 미루어 알아내는 것.
눈치는 초능력과 비슷한 결을 지닌다. '남'의 '마음'을 '그때그때' '미루어' '알아내는'이 어마무시한 기술이 우리나라에서는 생존을 위한 기본값처럼 여겨진다. 주절주절 설명을 해줘도 알아먹기 어려운 타인의 마음을 알아서 정확하게 해석해 내야 미움받지 않을 수 있다. 친청 엄마의 '차 막히는데 뭐 하러 오냐'는 말을 진짜 믿는 자식은 없고, 여자친구의 '나 화난 거 아니야'라는 말을 믿는 남자도 없다. 이 말을 순진하게 받아들이는 순간, 관계는 어그러진다. 학교에서도 학원에서도 가르쳐주지 않지만 배우게 되는 것, 배워야 하는 것, 바로 눈치이다.
눈치는 자기 자신이 아닌 '타인'에 집중하며 살게 만든다. 타인의 표정과 입술을 주목해야 되고, 조직의 분위기를 살펴야 하고, 자신의 말과 행동이 어떻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는지 촉각을 곤두세워야 한다. 그래서 성취보다 관계를 우선시하는 사람들, 많은 여성들에게 눈치가 생긴다. 눈치 보는 게 몸에 밴다. 어떻게 하면 미움받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는 인생이 된다.
어린 시절에 나와 동생이 시골 외가에 맡겨졌을 때, 동생은 스스럼없이 외숙모의 팔을 베고 잠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우리가 환영받지 못하는 아이들이라는 것을 알아챘다. 누구도 대놓고 우리를 쥐어박거나 싫은 내색을 하지 않았지만, 안방을 차지한 아픈 외삼촌과 아이 밴 몸으로 시집살이를 견디는 외숙모와 농번기의 분주한 노동으로 정신없는 할머니 내외 뒤에서 나는 자꾸 주눅이 들었다. 해맑게 외가를 누비는 남동생이 꼴 보기 싫었었다.
학교에 다니면서 가만히 있으면 예쁨 받는다는 걸 알게 되었다.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숙제 잘해오고 청소 잘하면 모범생이 되었다. 튀지만 않으면 됐다. 교복을 줄여 입거나 머리 색깔을 바꾸는 일로 시끄럽게 굴지 않으면 학교 생활은 수월했다. 여자 친구들만 있는 교실에서는 '잘난 척'과 '예쁜 척'만 안 하면 친구 사귀기도 어렵지 않았다. 친구가 늘어놓는 시답잖은 하소연을 잘 들어주고 맞장구를 쳐주면 금방 베스트프렌드가 되었다. '내 생각에는...'이라는 말만 안 하면 된다.
눈치가 빠르다는 게 직장 생활에도 큰 도움이 되었다. 나대지 않는 선에서 싹싹하고 예의 바르게 굴면 되었다. 선배님의 공로를 인정해 주고, '죄송합니다'와 '감사합니다'만 잘하면 어렵지 않았다. 선배님의 낯을 살피는 것부터 하루의 시작이었다. 일을 잘하는 것만큼이나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하는 것'이 중요했다. 내가 먹고 싶은 점심 메뉴나 혁신적인 아이디어는 절대 어필하지 않는다. 분위기 좋은 날, 슬그머니, 아주 슬그머니 아닌 척 꺼내 볼 수는 있지만 그마저도 반응이 안 좋으면 농담처럼 넘겨버린다.
난 괜찮아요.
도도한 여자들의 눈치를 보며 연애를 해야 하는 21세기 남자들은 배려 넘치는 나라는 여자친구를 만나 고마워하고 행복해했다. 직장 생활에 지친 남자친구가 피곤해할까 봐 맨날 만나자고 조르지도 않고, 집까지 데려다 달라는 요구도 없었다. 비용은 언제나 더치페이를 하고, 매 번 파스타와 피자만 먹을 필요도 없었다. 놀러 갈 때 가성비의 싸구려 숙소를 잡아도 상관없었다. 기념일이라고 좋은 곳에 가거나 비싼 선물을 준비하지 않아도 되었다. 나는 아주 합리적이고 배려 넘치는 연인이었다. 그래서 내가 헤어지자고 할 때, 내 남자친구는 도대체 뭐가 잘못된 것인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눈치가 없는 게 이별의 이유라면 이유였을까.
내 남편이 된 남자에게 나는 평생 갈고닦은 눈치의 기술을 총동원했다. 나보다 학벌이나 직장이 별로라고 남들이 쑥덕거릴까 봐, 와이프 잘 만났다는 소리에 괜히 주눅이 들까 봐, 스트레스에 약한 사람이 직장을 그만두고 나올까 봐, 돈 씀씀이에 예민한 사람이 나를 사치스러운 여편네로 볼까 봐, 아기랑 집에 있을 때 내가 논다고 생각할까 봐, 나는 온 힘을 다해서 바보처럼 웃고 떠들고 억척을 부렸다. 그러면 그 사람이 나를 귀하게 여길 줄 알았다. 이런 사람 없다며 소중히 아낄 줄 알았다. 나의 헌신이 헌신짝보다 못해 구정물에 버려질 줄은 전혀 알지 못했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여자를 사랑해 줄 남자는 없다.
눈치 보며 남을 아껴 주느라, 정작 돌보지 못한 내 마음은 뭉개질 대로 뭉개져버렸다. 남에게 사랑받아야 숨이 쉬어지던 숱한 날들을 뒤로하고, 나는 당당하게 어깨를 펴 본다. 니 사랑 따위는 필요 없다고, 내가 나를 사랑하면 그만이라고. 내 딸이 엄마의 건강하고 아름다운 인생을 보며 자라기를 바라본다. 자기 자신과 남을 함께 사랑할 수 있는 건강한 사람으로 크기를 바란다. 그래서 이제 연습해 보려고 한다.
난 괜찮지 않아요. 못해요. 힘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