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처럼 안 살려고 했는데

by 난화

난 엄마처럼 안 살아.


행복하지 못한 엄마의 뒷모습을 지켜본 딸들의 가슴에 박힌 맹세의 말이다. 남편의 무능과 무책임 때문에 죽어라 먹고사는 일에만 매달린 엄마, 남편의 술주정을 받아내면서 시들어가는 엄마, 남편의 주먹질과 발길질에 짓이겨진 엄마, 딴 여자들과 놀아나는 주제에 당당하기까지 한 남편 놈과 헤어지지 못하고 사는 엄마, 시가족의 횡포에 가슴앓이를 하다 병들어버린 엄마, 그리하여 한없는 외로움 속에 갇혀버린 엄마. 딸은 그런 엄마의 생에서 철저히 달아날 준비를 한다.


지긋지긋한 내 가족에게서 도망치려고 선택한 사람, 내게 열렬한 호의를 보여준 사람, 나 없이는 살 수 없을 것 같이 절박해 보이는 사람, 내 어머니를 괴롭히던 아버지의 용모를 전혀 닮지 않은 사람, 그래서 이 결혼은 완전히 성공이라 믿었을 것이다. 부모를 선택할 수는 없지만, 남자는 자기 의지로 선택할 수 있으니까 실패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을 것이다. 나쁜 놈과 좋은 놈을 구별할 수 있으리라 했지만, 자신에게 익숙한 사람은 나쁜 놈이고, 돌고 돌아 결국 익숙한 사람과 함께하게 되리라는 것을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연애할 때 보여준 열정이 집착으로 변하고, 툭하면 직장을 그만두고, 컴퓨터 앞에 앉아 밤새 게임이나 해대고, 뭐라고 한 마디 하면 눈이 돌아서 욕지거리를 해대고, 그러다 술 먹으면 손이 올라가고, 다음 날은 미안해 죽겠다는 시늉을 하지만 곧 텔레비전이 박살 나는 광경이 펼쳐지고, 밖에 나가면 연락 두절에 낯선 여자의 냄새를 묻히고 들어와 어린 자식을 안은 여자에게 매몰차게 대할 때, 비로소 단단히 잘못되었음을 깨닫는다. 엄마의 인생을 그대로 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몸서리치지만, 이내 무력해진다. 너무 익숙한 고통, 익숙한 불행이기 때문일까. 박차고 나갈 엄두도 못 내고, 멍청하게 당하고만 있다.


대체 왜 이런 일이?


폭력의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는 일은 흔하게 일어난다. 왕따를 당한 아이는 따돌림의 주동자가 되고, 지독한 신고식의 모멸감을 경험한 후배는 그보다 더 독한 선배가 되고, 아버지처럼은 되지 않겠노라고 분노가 끓던 소년은 그 옛날 금수 같던 아버지처럼 된다. 이 같은 비인간적인 굴레를 벗어나려면 죽을힘을 다해 저항해야 한다. 무력하게 당할 수밖에 없었던 자기 자신을 따뜻하게 끌어안고 네 잘못이 아니라고, 너는 괜찮은 사람이라고, 수없이 달래 가며 무너진 자존감을 세워 나가야 한다. 서둘러 상처에서 벗어나려고 하다가, 타인에게 기대어 치유받으려고 하다가, 스스로를 충분히 돌보지 못하기 십상이다.


어떤 기술은 어느 정도 숙련되고 노하우가 생기면 편안해진다. 처음 배우는 일이라도 공을 들이면 일정한 수준에 이르게 된다. 그런데 가정생활은 아무리 시간이 쌓이고 몸부림을 쳐봐도 어그러지는 경우가 많다. 아무리 간절해도, 아무리 애를 써도, 참아도 보고 악도 써보고 온갖 수를 다 써도, 처참하게 망가지는 경우가 많다. 부부 두 사람 중 한쪽이라도 심하게 고장 나 있으면 나머지 한 사람이 멀쩡하다 해도 함께 침몰하기 때문이다.


결혼 생활이 시작되면 자기 안에 숨어 있던 상처, 열등감, 두려움이 보란 듯 고개를 쳐든다. 서로 꼭 안고 진정시키면서 조심조심 살아도 괜찮을까 말까인데, 매일 세수하듯 몸에 밴 못된 말들과 습관들이 상대를 마구 찔러댄다. 우리 부모가 보여준 무기력, 회피, 폭력, 중독을 대신할 수 있는 방법이 뭔지 알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사람은 자신이 바라는 대로 살아지지 않고, 경험한 대로 살아진다. 그토록 저주하고 원망하던 내 부모의 모습이 자기 인생의 절대적 교과서였다. 슬프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다.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는 험악한 시대에 살아남기 바빴다 우리 부모는 몹쓸 인습과 책임감 속에서 살았다. 자식만큼은 그렇게 살지 않기를 바랐기에 참고 또 참았다. 딸에게 엄마처럼 살지 말라며, 너는 많이 배우고 좋은 남자 만나서 살아야 된다며, 모든 짐을 엄마 홀로 짊어지려 했다. 엄마들의 애끓는 기원 덕분일까. 원래 사는 게 다 그렇다고, 남들도 다 그러고 산다며 무작정 견디던 시절은 지났다. 그래서 문제가 있으면 상담도 받고, 치료도 받고, 약도 먹고, 그래도 안 되면 이혼을 한다.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이해하려는 이들이 늘어나고,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그러니 앞으로는 건강하고 편안한 가족이 많아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