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 자전거 보조 바퀴 떼 줘."
피아노 학원까지 다녀오니 저녁 6시가 넘었는데, 딸은 당장 네발 자전거의 보조바퀴를 떼어 달라고 한다. 결연한 각오가 느껴지는 표정이었다. 집에 연장이 없어 준비해서 내일 해주겠다니, 어떻게 24시간을 기다리냐며 난리가 났다. 보통은 이렇게 떼를 부리는 아이가 아닌데 싶어 가만히 물어보니, 아이는 나에게 말을 안 했을 뿐 혼자서 단단히 마음을 먹고 있었다. 지난 주말에 놀러 온 친구가 아직도 네 발 자전거를 타느냐고 한 말에 자극을 받았나 보다.
딸은 신중하고 조심성이 많은 기질을 지녔다. 한참 물고 빨고 만지며 세상을 익혀나가던 아가 시절에도 찬찬히 둘러보고 충분히 안전하다고 여길 때만 손을 뻗었다. 그래서 어린 딸을 데리고 커피숍이나 식당을 가는 게 그리 어렵지 않았다. 엄마 곁에 꼭 붙어서 주변을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했고, 살금살금 손을 내밀다가도 내가 "안 돼!" 하면 금방 접고는 했다. 걸음마도 또래보다 늦은 편이라 친구들이 뛰어다닐 때쯤 비로소 일어나 한 두 걸음을 옮겼다. 언젠가 걷겠지 하면서도 내심 걱정스러웠는데, 딸은 이제 때가 됐다는 듯 당당하게 일어나 걸었다.
조심스러운 아이라 큰 사건 사고 없이 수월하게 컸지만, 조금만 위험해도 몸을 사리다 보니 운동 능력은 좀 부족해 보였다. 네 발 자전거도 8살 때 생일 선물로 사주었지만, 10살인 지금까지 보조 바퀴를 달고 탔다. 그것도 걷는 속도 이상으로는 가지 않고, 자전거 전용 도로가 아닌 길에서는 내려서 끌고 다녔다. 보도블록이 울퉁불퉁해서 위험하다는 거였다. 자전거보다 내가 빨리 걸으면 뒤에서 왜 자기를 놓고 가냐며 겁을 먹고 아우성을 쳤다. 지난주까지도 이렇게 벌벌 떨며 네 발 자전거를 탔는데, 갑자기 두 발 타기에 도전을 하겠다고?
딸의 실력을 잘 알고 있던 나는 일단 네 발 타기부터 더 연습하자고 아이를 달랬다. 그러나 아이는 완강했고, 심상치 않음을 감지한 나는 아이와 자전거를 끌고 길을 나섰다. 걸어서 20분은 가야 하는 자전거 가게에 들러 기어이 보조 바퀴를 떼고 왔다. 밤 8시가 다 된 시간이었다. 아이는 그날로 연습을 시작했다. 혼자 해보겠다는 딸이 휘청거리는 모습을 한참 바라보았다. 다음 날 아침, 딸은 학교 가기 전에 1시간 일찍 일어나 놀이터에서 혼자 자전거 타기 연습을 하고 들어왔다. 저녁에도 혼자 자전거를 끌고 집 앞으로 나갔다.
드디어 토요일 오전, 딸은 의기양양하게 엄마를 불러 냈다. 자전거 타기에 성공했다는 거였다. 3일 전에 비틀거리던 딸의 모습을 실컷 봤기에, 아마 중심을 좀 잡게 되었나 보다 했다. 별 기대 없이 따라 나갔다가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딸이 순식간에 자전거를 타고 내 앞에서 멀어진 것이다. 엄마를 향해 환하게 웃으며 기뻐하는 딸의 얼굴을 보며 나는 물개 박수를 쳤다.
"우리 딸 대단하다! 정말 멋지다!!"
비틀거리고 넘어지는 모습은 감추고 잘 해내는 모습을 엄마에게 보여주고 싶어 노력했을 딸을 보니 뭉클했다. 인생에서 두 발 자전거를 타는 게 얼마나 대단한 업적인지 잘 알고 있었다. 나 역시 10살 때 국민학교 운동장에서 엄마에게 자전거 타는 법을 배웠다. 수없이 넘어지고 다치면서도 잘 타고 싶어서 꾹 참고 일어났다. 흔들리는 자전거의 뒤를 붙잡아 줄 사람이 꼭 있어야 하는 줄 알았는데, 내 딸은 나보다 훨씬 강한 아이였다.
내 아이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는 착각을 반성하게 되는 날이었다. 신중하고 느린 아이, 운동 신경이 부족한 아이라는 엄마의 판단을 부끄럽게 만들었다. 인간은 얼마든지 어제의 자기 자신을 뛰어넘을 수 있다. 엄마인 내가 할 일은 그저 뒤에서 "잘했어! 넌 할 수 있어!"를 외치는 것뿐이다. 내 딸의 속도를 존중하고 응원하는 엄마가 되자고 마음먹는다. 오늘도 내 딸은 나를 성장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