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내 생일 무슨 요일인지 알아?"
"엄마, 내 생일 몇 달 남았는지 알아?"
"엄마, 내 생일 선물은 뭐 해줄 거야?"
우리 딸의 생일 토크는 1년 내내 계속된다. 새해가 되면 달력에 가족들 생일을 전부 표시해 놓고 작년과 뭐가 달라졌는지 살핀다. 작년에는 엄마 생일이 월요일이었는데 올해는 화요일이라는 놀라운 뉴스를 전해주기도 한다. 가족 중에 생일이 가장 빠른 엄마가 제일 먼저 하늘나라로 갈 거라는 서글픈 예측을 내놓기도 하고 말이다. 오는 데는 순서가 있지만 가는 데 순서는 없다는 진실을 차마 10살 딸에게 밝힐 수가 없다.
4월에 접어들자 딸은 엄마 생일의 D-day를 세면서 몹시 분주해졌다. 케이크는 어떤 걸로 고를지 묻고 초코맛이 좋지 않겠느냐며 은근한 바람을 끼워 전한다. 1학년 동생에게도 엄마를 위한 선물을 준비해야 한다고 신신당부를 한다. 만약 엄마 선물을 안 챙기면 너도 받을 수 없다고 으름장을 놓으면서 말이다. 용돈이 없는 아들이 엄마 어깨를 안마하고 100원씩 받았는데, 몇 번 하더니 이놈이 어차피 껌 밖에 못 산다며 선물 보이콧을 선언했다. 대신 생일 카드를 써주겠다더니 호기롭게 편지지를 챙겨 와 나한테 글씨를 적어 보여 달라고 한다. 내가 불러주고 적어준 편지를 그대로 다 따라 쓰더니, 아주 뿌듯한 표정으로 당당하게 말한다.
"엄마, 오늘 쓴 거 다 잊어버려야 돼. 내일 파티할 때 읽어줄 거니까!"
엄마의 생일을 하루 앞두고 딸은 마음이 급해졌다. 엄마 선물을 꼭 사주고 싶은데, 용돈 모으기를 깜박한 것이다. 우리 집은 공짜 용돈이 없다. 성경 필사 노트 1쪽에 200원을 준다. 딸의 지갑에는 겨우 600원밖에 없었다. 당장 하루 앞으로 다가온 엄마 생일을 위해 딸은 특별 제안을 했다. 자기가 집안일을 할 테니 이번만 특별 용돈을 달라는 거였다. 꼬맹이의 갸륵한 효성에 감복하여 오케이를 했다. 신발 정리 100원, 책상 정리 100원, 방정리 100원으로 소소하게 시작해서 화장실 청소 500원, 바닥 얼룩 제거 500원, 베란다 유리 청소 500원까지 받더니 어느새 5000원을 모았다. 그러더니 수첩을 가져와서 엄마가 받고 싶은 선물을 1번부터 8번까지 적으란다. 아이에게 5천 원은 500만 원 같은 거금이었나 보다. 나는 아이가 문방구에서 살 수 있는 수정테이프, 볼펜 등의 리스트를 적어 주었다. 그랬더니 아이는 활짝 웃으며 이 중에서 서너 가지는 사줄 수 있단다.
생일에 진심인 딸을 보면서 자꾸 웃음이 새어 나왔다. 어릴 적 내 생일만 되면 유난을 떨며 엄마를 들들 볶았던 기억이 났다. 스무 살 넘어서도 동생이 내 생일 안 챙겼다고 아침 밥상 앞에서 엉엉 울었던 나였다. 그날만큼은 주인공이 되고 싶고, 나를 향한 사랑을 담뿍 느끼고 싶고, 마음껏 내 주장을 하고 싶었다. 그런데 이런 것도 유전이 되는 걸까? 내 어린 날을 본 적도 없는 딸이 이토록 생일에 진심이라니. 그래도 우리 딸은 엄마 생일까지 이리 각별하게 챙기니 더 나은 것 같기도 하다.
어느새 품에 넘치도록 자라나 엄마를 챙기는 딸을 보니 감개무량하다. 딸의 사랑으로 반짝반짝 윤이 나는 집안을 둘러보면서 맞이하는 행복한 생일날이다.
잘 자라줘서, 엄마를 사랑해 줘서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