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살이 5년의 기록
갓 입독했을 무렵,
주변에 4-5년쯤 살았다는 분들을 보면서 저 정도 살면 독일어는 잘 하겠구나 싶었다.
낯선 발음은 물론 간단한 숫자 조차 익숙치 않던 내게 그 5년이라는 시간이 무척 부러웠다.
당시 어학원을 다닐 엄두도 나지 않았던 게
어린 아이와 무려 출산을 앞두고 있었고,
코로나 시국이었다.
남편이 회사에 출근하면
홀로 육아와 생존 독일어를 익혀야만 했다.
1(아인스), 2(쯔바이), 3(드라이)... 99(노인운트노인찌히), 100(훈데어트)
A(아), B(베), C(체)... Y(윕실론), Z(체트)
숫자와 아베체데를 공부하는 것만으로도
그야말로 고역이었다.
저걸 입에 붙게 할 수 있다고?
특히나 R(에흐) 발음!
얘는 여전히 내 발음 속의 짐이다.
영어도 학창시절 내내 그렇게 오래 공부했어도
잘 못하는 난데
언제 저걸 다 익혀서 하나?
여기서 내가 살수 있긴 한걸까?
산책할 때, 마트에서,
길가다가 사람들과 눈이 마주치면
헬로가 아닌 할로하고 인사하는 것조차도.
구텐모겐! 그냥 인사일 뿐인데
입으로 내뱉는 내 자신이 왜 매번 쑥스러웠던 건지.
매일 쑥스러움을 견디며
무식하게 생존 독일어를 외우고,
하루 지나면 까먹는 기억력으로
코시국에 출산을 했고,
유치원 선생님들과도 소통을 했다.
그리고 입독 3년만에
학원에 등록해서 드디어 독일어를 공부할 수 있었다.
해보니 내가 그동안 얼마나 아무렇게나 공부를 했는지실감할 수 있었다.
오자마자 학원부터 다녔으면 좋았을껄 하는 아쉬움을 품고,
우여곡절 끝에 어렵게 어렵게 B2시험을 통과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이제 난 독일어를 유창하게 잘하고 있을까?
아니요!
분명 아니긴 아닌데 그래도 할 수는 있다.
그 사이 난 친구들도 사귀었고,
아이 엄마들이랑 만나 얘기도 하고, 하고 싶은 말을 할 수도 있으니 장족의 발전이다.
물론 하고 싶은 말을 다 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좀 복잡한 얘기를 내가 뚝딱 거리고 있으면 상대방이 찰떡같이 정리해서 알아들어준다.
그래! 맞아!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바로 그거야! 하며 감동과 희열을 느낀다.
또 가끔 마음 맞는 엄마들이랑 내 소소한 고민같은 걸 얘기하고 위로를 주고받을 때면
신기한 한편 가슴 한켠이 먹먹해지기도 한다.
아마 앞으로도 나는
독일어를 유창하게 잘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난 토종 한국인이니까!!!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나니 한결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항상 누군가와 얘기를 할 때
미안하지만 나 독일어 못해요.
하고 시작하면 의외로 거의 모두가
친절하게 경청해주고
친절하게 얘기해주며
어떨 때는 나보고 독일어를 잘한다고 까지 얘기해준다.
또 어떤 이는
괜찮아 나도 한국어 전혀 못하는 걸?하며
위로 아닌 위로도 해준다.
한국에 살았으면 숨쉬듯 편안하게 느껴졌을 언어가
여기서는 아주 기본적인 말 조차
어떨때는 이해가 되지 않을때도 있다.
다시 얘기해줄래?
번거로운 질문을 하는 내가
언제쯤 편안해질 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여전히 낯설고 불편한 사람과 얘기할 때면
아주 쉬운 문장도 이상하게 말하거나
간단한 단어 조차 까먹을 때도 있다.
뭐 생각해보면 한국말도 그럴때가 있지 않은가.
5년 살아보니, 너 독일에 몇년 살았어? 물으면
한 1-2년쯤 살았다고 얘기하고 싶어진다.
그러면 내 독일어에 대한 기대감을 좀 낮출까 싶어서다.
아마 평생 독일어는 유창하게 못할것이다.
인정하고나니 마음이 편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