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날의 여유, 보타닉 가든

가장 행복했던, 브리즈번 2

by 끌라라

열 시간이 넘는 비행 후, 브리즈번 공항에 도착했다. 엄마, 여동생, 나, 남편 이렇게 성인이 네 명이지만 그중에 영어는 내가 그나마 가장 나았다. 영어권으로 어학연수 한 번 다녀온 적 없지만 나는 영어를 좋아하기에 앞으로의 대부분의 영어 의사소통은 자연스레 내가 맡게 되었다. 당당한 걸음으로 미리 알아놓은 공항 셔틀 conxion 티켓 부스로 가서 성인 4명, 아이 2명의 티켓을 구매했다. 커넥션은 미니버스 같은 것인데 몇 명의 사람들을 모아 목적지까지 데려다준다. 택시와 버스의 중간 어드메쯤 있는 교통수단이랄까, 가격도 택시보다는 조금 싸고 대중교통보다는 비쌌다.


커넥션을 기다리기 위해 밖으로 나갔을 때의 열기가 생생하다. 뜨겁고 따가웠다. 공항 밖을 내리는 순간 그 나라의 향기가 난다. 브리즈번의 향기는 느껴지지 않았다. 향수를 뿌리고 내 옆을 지나가는 외국인들의 낯선 향기와 뜨겁고 건조한 공기가 느껴졌다. 하늘이 무척 푸르른 맑은 날이었고 눈 앞의 커다랗고 이국적인 나무에 매달려 있는 커다란 하얀 꽃이 외국에 와 있음을 더욱 실감케 했다.


여행 목적지 공항에 도착했으나 아직 숙소에는 닿지 않았을 때, 그 사이의 묘한 안도감과 설렘이 있다. 비행은 무사히 끝났구나, 도착했구나 하는 안도감이지만, 숙소에는 짐을 풀지 못한 미완의 안도감이 주는 긴장감은, 그러나 딱 기분 좋을 정도의 긴장감이기 때문에 설렘이라는 단어로 대체될 수 있다. 커넥션을 기다릴 때가 딱 그랬다. 다시 생각해 보니 외국인의 향수와 담배 냄새와 버스 매연 사이에서 나는 브리즈번의 향기는 마른 햇볕 냄새였다. 코로 맡는 게 아니라 피부로 맡는 푸석푸석한 햇볕 냄새였다.


잠시의 기다림을 만끽하고 시내 한복판에 있는 숙소에 짐을 맡기고, 숙소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 보타닉 가든에 갔다. 며칠째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는 동생은 놀이터 옆 벤치에서 잠을 청했고, 꽃과 나무를 좋아하는 엄마는 보타닉 가든의 위용 넘치는 식물들을 보며 감탄하며 산책길에 나섰고, 두 아들은 물론 놀이터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으며, 남편은 아이들과 함께 놀아주고, 나는 이 아름다운 광경을 눈에 마음에 담느라 분주했다. 너무나, 너무나, 완벽한 순간이었다.


한동안 이 그림 같은 순간을 만끽하고 더 완벽한 순간을 완성하기 위해 커피를 사러 나섰다. 낯선 신호등, 우측 운전하는 차들, 다양한 인종의 외국인들을 보며 호주에 왔구나를 실감하고 커피숍 하나를 찾았다. 메뉴판을 한참 보다가 '오늘의 더치커피'와 그토록 많이 들었던 '플랫 화이트'를 주문했는데 그다음 말을 알아듣지 못해 '쏘리?'를 외쳤다. 어렵게 알아들은 말인즉슨, 이름을 알려달라고?! 상식 기준 상황과 맥락에 맞는 말이 아닌 엉뚱한 질문이었기에 못 알아들었다고 핑계를 대본다. 이후에도 많은 카페에서 주문을 했는데 대부분의 카페가 이름을 묻고 내 이름과 메뉴를 빈 컵에 적어 옆 사람에게 넘기는 방식이었다. 번호로 주문을 받는 것이 훨씬 편할 텐데 일일이 이름을 물어보고, 주문한 음료가 나왔을 때도 이름을 불러주는 것이 꽤나 아날로그적이면서도 따뜻하게 느껴졌다.


내가 사 온 더치커피는 신맛이 상상 이상으로 강한 커피였고, 그것이 좋은 원두의 좋은 커피임은 알겠으나 앞으로 더치는 도전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평범한 나의 입맛엔 너무 자극적이었다. 플랫 화이트는 소문대로 부드럽고 고소하여 우리 식구 모두 만족해했다.


첫날 오후 2시가 넘어 숙소에 들어가 짐을 풀며 쉴 수가 있었지만, 그 날 오전의 보타닉 가든만으로 나의 첫날은 이미 풍성하였다. 도시 한가운데 존재하는 광릉수목원 같은 garden. 규모에 비해 이름이 참 소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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