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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끌라라 Mar 04. 2020

나도 해봤다 호캉스.

코로나 탈출기

호텔을 알아보게 된 연유는 우스웠다.


지난 호주 여행 대부분의 일정을 아파트먼트 숙소에서 지냈는데 며칠 무려 이성급 호텔에서 묵었다. 그 호텔에서 가벼운 조식이 나와 5일을 똑같은 조식을 먹게 되었는데 여섯 살 된 둘째의 입맛에 딱 맞았나 보다. 집에서도 아침엔 시리얼이나 스트링치즈를 얹은 토스트를 즐겨하시는 둘째 상전이기에 요플레와 시리얼, 빵이 종류별로 가득한 조식은 바로 그를 위한 식단이었다.


둘째가 조식 먹으러 호주에 가자고 졸라댄다. 이게 무슨 말이야? 피자 먹으러 이태리 가고 초밥 먹으러 일본 간다는 말은 들어 봤어도 조식 먹으러 호주를 가자니! 호주 여행에서 뭐가 가장 좋았어?라는 물음에도 행복한 미소를 띠며 "조식!"을 외쳤던 둘째였다.


남편이 말했다.

"까짓 거, 조식, 먹으러 호텔 가자.  호주 가는 것보다는 싸잖아!"

호탕하게 외쳐놓고 우리가 알아본 호텔의 조식이 삼만 원을 훌쩍 넘는다는 것에 흠칫 놀라긴 했다.

"그.. 그렇게 비싸? 그.. 그래도 가자! 대신 다른 식비를 좀 줄이고..."


이렇게 우리 식구는 처음으로 호캉스라는 것을 해보았다. 호텔 뷔페식 조식 찾는 둘째 덕분에. 아이들이 어렸을 때 갔던 부산 여행에서도 온돌식 모텔을 찾아갔는데 호텔이라니, 수준이 매우 격상되었다.


두 아이들은 코로나 19 때문에 집 밖을 나가지도 못하고, 중국도 안 다녀왔고 확진자 접촉도 없지만 자체 자가격리 상태였다. 요즘 대부분의 아이 있는 집이 그렇듯이. 유치원도 학교도 학원도 안 가고 좁은 집에서 비슷한 놀이만 계속하는데 아이들이라고 지치지 않았을 리가 있나. 호텔 가는 길에 잠시 들린 바닷가 모래에서 아이들은 행복해했다. 둘째는 호텔 가기 싫다고 계속 모래 놀이하겠다고 울음을 터뜨렸지만 조식으로 꾀니 이내 울음을 멈추고 차에 올라탔다.


천장이 뻥 뚫린 로비와, 친절한 직원들, 퀴퀴한 곰팡이 냄새가 아닌 향긋한 냄새로 가득 채워진 복도. 깨끗하고 푹신한 침대, 흠없이 깨끗한 욕실. 처음 가 본 오성급 호텔이었다. 아이들보다 내가 더 신나 했다. 신혼여행도 돈 아끼느라 저렴한 숙소를 잡았었던 게 생각났다.


자기야, 자기야, 여기 사우나에 가봤는데 사람 하나도 없는데, 샴푸, 린스랑 폼 클렌저도 다 있어. 탈의실엔 화장품 대용량이 아니라 이름 있는 거 정품이 있고, 헤어로션도 있어. 노천탕을 나 혼자 쓰는데 나 무슨 선녀 된 줄ㅋㅋㅋㅋㅋ


아이들이랑 집에 일주일 있어도 화를 안 낼 수 있을 만큼 긍정 에너지가 쌓였다. 푹신한 침대에 누워 바다를 바라보니 또다시 일주일치 에너지가 쌓이는 느낌이었다.


조식은 맛있었다. 이 날의 주인공인 둘째는 신중하게 요플레 두 종류와 초코쨈, 식빵, 그리고 초콜릿을 선택했다. 많이 먹지는 않았지만 아주 흡족한 아침이었다고 후기를 전했다. 한식 파인 남편과 첫째에게는 뭔가 미흡한 아침이었고, 난 크로와상을 맛있게 먹었다. 남편은 호텔을 또 오더라고 자기는 조식을 먹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돈 아까웠다는 말이다.


조식 뷔페를 안 가도 좋다. 그 돈으로 더 알차게 우리 식구가 좋아하는 것을 먹을 수 있다는 것에 동의한다. 하지만 호텔에서 충분히 쉬고 깨끗하고 좋은 시설을 누리고 친절한 직원의 서비스를 받는다는 것은 나의 생각 이상으로 나에게 만족감을 주었다. 아, 이래서 호캉스 호캉스 하는구나.


나도 해봤다, 호캉스! 돈 모아서 또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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