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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끌라라 Nov 28. 2019

난 아이에게 더 이상 미안하지 않다.

처음 어린이집을 보냈을 때를 회상하며.

출산 후 일 년, 나는 중학교 이후 최저 몸무게를 찍었다. 그렇게 팔팔히 뛰어다니던 20살에도 빠지지 않던 몸무게가 잠을 자지 못하니 빠져 있었다. 늘 과체중이었기에 그 정도 빠진 것은 정상체중에 속하여 건강해 보여야 했다. 하지만 내 모습은 퍽 가여웠다. 출산 후 자연스레 찾아오는 탈모에 늘 풍성하던 머리숱은 텅 비어 있었고, 애써 미소 지으며 찍은 사진 속의 나는 매가리가 하나 없었다. 처음 해보는 '엄마'라는 직함에 영혼까지 탈탈 털려 있었던, 우리 첫째 아이의 첫 돌이었다. 


모든 엄마들이 그렇듯, 나는 '미안해'를 달고 살았다. 아이가 빼액 울기만 해도 "어, 엄마가 미안해. 미안 미안."을 외치며 달려가 아이를 안아 들었다. 뭐가 그리 미안했던지, 육아를 처음 해 보는 나도 모든 것이 어렵고 힘들었는데, 스스로를 위로해줄 생각은 하지도 못하고 아이에게 어떤 작은 불편함을 주거나 실수를 하지 않을까 온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나는 모든 것이 불편하였는데.


미안함은 아이를 어린이집에 처음 보냈을 때 정점을 찍었다. 너무너무 힘들어 내가 나를 놓아버릴 것만 같은 시점이었기에, 빨리 보내어 내 시간을 갖고자 하는 마음과, 너무 일찍 엄마와 떨어뜨리는 것 아닌가 하는 죄책감이 동시에 나를 짓눌렀다. '아이는 엄마가 필요할 텐데. 선생님이 아무리 잘해준들 엄마보다 더 잘해줄까.' 하지만 아이에게 미안하였지만 내가 먼저 살고 싶었다. 


처음 보낸 곳은 가정어린이집이었다. 적응기간에는 아이와 함께 어린이집에 한두 시간 있다가 점점 엄마와 떨어지는 시간을 늘려가며 아이도 엄마도 떨어지는 연습을 한다. 원장 선생님이 "어머니, 이제 조금 익숙해졌으니 한 시간만 집에 다녀오세요." 하고 말씀하셨을 때 나의 첫 감정은 걱정도 기쁨도 아니라 어색함이었다. "네?" 하고 털래털래 집으로 혼자 돌아오는 그 길의 어색함, 집에 들어왔는데 나밖에 없는 고요함, 한 시간 동안 아이가 움직이는지 자는지 깨는지 무엇을 쏟고 있는지 신경 쓰지 않고 오롯이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그 시간이 어색했다. 


그리고 한 시간 후, 아이를 데리러 갔는데, 이럴 수가! 아이가 너무 예뻐 보였다. 출산 후 일 년 만에 가장 예뻐 보였던 것 같다. 내 아이가 이렇게 사랑스러웠나, 너무너무 반가워 물고 빨고 끊임없이 뽀뽀를 해주고 싶었다. 멍하니 혼자 노는 아이를 바라보는 시간이 많은 나였기에, 나는 모성이 부족한 사람인가 보다, 나는 엄마가 되기에 부적격한 사람인가 생각한 적이 많았다. 응축된 모성애가 폭발하듯 온몸에서 아이에 대한 사랑이 뿜어져 나왔다. 아이와 떨어져 있는 시간이 한 시간이 되고, 두 시간이 되고, 오전을 보내고, 그리고 마침내 낮잠을 재우고 데리고 왔다. 그 시간에 나는 집안 청소도 하고, 사람답게 밥을 먹고, 아이를 위한 반찬을 했다. 모자란 밤잠도 보충했다. 좀비가 사람이 된 것 같아 행복했다. 떨어진 후의 만남은 늘 이산가족 상봉하듯 반가웠다. 매일매일 아이의 사랑스러움을 흠뻑 느꼈다. 아이가 하원한 후의 나도 변화했다. 예전엔 아이가 뽀로로를 보고 있으면 내버려 뒀다. 무엇인가를 해줄 의욕이 없었다. 그런데 이제는 티브이 앞에 아이를 방치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놀아주었다. 왜? 나는 기운을 차렸고 아이는 사랑스러웠으니까. 뭐 하나라도 더 해주고 싶은 마음이 그제야 들기 시작했다. 나는 그제야 내가 엄마 노릇을 하고 있다고 느꼈고 살아났고 더 이상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게 되었다. 




어린이집, 유치원 설명회 시즌도 어느덧 마무리되고 입시 인양 합격, 불합격 통보가 오는 때이다. 이때 엄마들은 걱정이 많다. 보내고 싶어도 입원 추첨에 탈락하여 못 보내기도 하고, 합격이 났는데도 이걸 진짜 보내야 하나 내 손을 떠나보내야 하나, 내가 아이에게 못할 짓을 하는 것은 아닌가, 하며 하루에도 몇 번씩 고민이 많을 때이다. 가정보육을 하는 어머니들께 존경과 찬사를 보내며, 동시에 보내기로 결심하였다면 선생님을 믿어보시라 권하고 싶다. 전문 교육을 받고 집에서보다 다양한 자극과 프로그램으로 아이들의 발달을 돕는다는 것은 뭐 부수적인 것이고, 엄마를 위해서이다. 열심히 달려오신 엄마들, 일 년 동안 잠 한번 제대로 자지 못하고, 사람답게 밥 한 번 맘 편히 먹지 못하고 서서 마시듯 밥을 먹은 엄마들, 상 펴 놓고 앉아서 편안히 휴대폰을 보든, 드라마를 보든, 아무것도 안 하든 편안히 밥을 먹었으면 좋겠다. 


아이는 그냥 엄마가 아니라 '행복한 엄마'가 필요하다.


행복한 엄마가 되어 아이와 더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엄마는 더 이상 필요 이상의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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