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력한 날이 하루가 되고, 이틀이 되고, 일주일이 넘어가고 어느덧 한 달이 되었다. 처음에는 감기를 핑계대었다. 코가 막혀서 머리가 아파. 머리가 아프니 자꾸 잠이 와. 누워 있으니 기력이 없어. 감기는 낫지를 않고 나는 계속 나가지 않았다.
남편이 웬 일로 맛있는 것을 먹고 싶단다. 평소 자신의 취향을 잘 주장하지 않는 사람이. 그래, 무엇이든 당신 원하는 것을 먹자, 하고 물어보니 초밥을 먹으러 가잔다. 나보고 초밥이 땡기지 않냐며. 나는 요새 쌀밥이 싫어 초밥도 그리 땡기지 않는다 대답하였지만 그래도 초밥을 먹으러 갔다. 쌀밥이 싫다고 내뱉은 말이 무색하게도 푸짐하게 먹었다.
드라이브를 하잔다. 조수석에 내가 타고 뒷좌석에 아들이 타고 동네 한바퀴를 괜시리 돌았다. 기름값 저렴한 주유소를 찾아가 기름도 넣고, 자그마한 동네 공원 옆에 차를 세우고 짧은 산책을 하고, 르꼬르동 블루를 졸업한 제빵사가 빵을 만든다는 빵집에 가서 보기에도 흐뭇한 크로와상을 샀다. 춥지 않던 이번 겨울 들어 가장 추운 날이라 코끝이 시렸지만 하늘도 시리도록 파란 날이었다. 근래 보던 회색 하늘이 아니라 시퍼런 겨울 하늘이라 마음도 얼음처럼 쨍해졌다.
집에 돌아와 남편은 배불러 피곤하다며 누웠다. 나는 잠 많은 남편을 흘깃 쳐다보고는 이 방 저 방 돌아다니며 버릴 것들을 모았다. 아이에게 공부책상을 정비해주고 싶어 오랫동안 쳐다만 보고 있던 잡동사니 쌓인 책상을 정리하였다. 먼지를 털어내었다. 머리는 아프지 않았다.
한 숨 늘어지게 잔 남편은 출근하였다. 오늘따라 남편의 나이듦이 보였다. 미간의 주름을 한번 쓰다듬어주고 어느새 또 자란 흰머리를 바라보며 남편을 배웅하였다. 나도 같이 나이 들고 있겠지. 나이든 나를 어여삐 여겨 주는 남편이 고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남편은 초밥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남편이 가장 좋아하는 것은 낙지이다. 늘 밖으로 나가자고 하는 것은 나였다. 남편은 쉬는 날 집에 있기를 좋아한다. 남편은 빵을 좋아하지 않지만 내가 맛있다는 빵집에 들려 빵봉지를 쥐고 행복해하고 있으면 나를 ‘빵순이’ 라고 부르며 흐뭇이 웃는다.
오늘 모든 것은 남편이 하자고 한 것이었지만 모두 나를 위한 것이었다. 고마운 마음에 남편이 더 어여뻐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