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모두를 품는 자리, 그 곳은 도서관

나는 오늘도 도서관에 간다

by Rani Ko

도서관은 아이들과 함께 갈 때도 좋지만 혼자 갈 때 더 좋다. 읽고 싶은 책을 골라 그 세계에 깊이 빠져들다 보면 시간의 흐름을 잊곤 한다. 올해 휴직을 하고 가장 잘한 일도 바로 이 점에 있다. 아이들이 모두 학교에 간 오전 시간, 가벼운 짐을 챙겨 거의 매일 도서관으로 향한 일. 특별한 약속이 있거나 진료 일정이 있는 날을 제외하고는 늘 도서관을 찾았다.



츄리닝에 크록스, 기온이 내려가면 운동화로 바뀌는 정도의 단출한 차림. 옷장에 가지런히 놓아둔 색깔별 티셔츠와 츄리닝 바지는 준비 시간을 최소화해준다. 평일 오전의 자료실은 한산하다. 얼마 전, 책상 한켠에 자리를 잡고 책을 펼치려다 문득 눈을 감은 적이 있다. 그리고 조용히 주변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사륵사륵 신문을 넘기는 소리, 덜컹거리며 지나가는 책수레, 드르륵 의자를 끄는 움직임, 자료 검색을 위해 탁탁탁 두드리는 키보드 소리…. 이 모든 소리가 ‘도서관의 상경(常景)’을 이룬다. 한동안 그 소리를 듣다가 조용히 눈을 떴다. 마치 방전된 휴대전화가 서서히 충전되듯, 도서관의 조용한 힐링 소리에 다시 힘을 얻어 책 속으로 집중해 들어갔다.




평일 오전의 도서관에는 각자의 사연을 품은 발걸음들이 묵묵히 오간다. 문이 열릴 때마다 가장 먼저 보이는 이들은 아이들 책을 가득 담은 장바구니를 든 주부들이다. 지친 얼굴로 반납기를 지나지만, 아이들 책 한두 권을 교체하는 짧은 순간 사이로 자신을 위한 책을 조심스레 고르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그 작은 선택이, 하루를 버티게 하는 호흡이 되어주는 듯하다.



책상 사이를 천천히 거니는 은퇴자들은 늘 같은 자리로 향한다. 큰 지출 없이 머무를 수 있는 이 공간은 그들에게 오랜 벗과도 같다. 복도 한쪽의 신문대 앞에서 사회면을 넘기고, 국제면을 꼼꼼하게 살피고, 작은 글씨의 경제 지면까지 읽어 내려간다. 손끝은 느리지만 시선은 여전히 단단하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brunch membership
Rani Ko작가님의 멤버십을 시작해 보세요!

19년 차 현직 초등교사이자 두 아이의 엄마. 글쓰기를 통해 또 한 번의 성장을 꿈꿉니다. 교육대학교 졸업 및 동 대학원 수료. 2025 브런치 "작가의 꿈 100인"에 선정.

269 구독자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

  • 최근 30일간 7개의 멤버십 콘텐츠 발행
  • 총 35개의 혜택 콘텐츠
최신 발행글 더보기
이전 12화11월, 그 고독하고 쓸쓸한 계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