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요새 허리 몇이야?

얼굴 44반, 몸 66반. 그녀는 어떻게 되었나!

by 라니


만약 내가 죽을 때 눈을 감는다면,

딱 떠오를 장면이 있다.


매일 밤 남편과 함께하는 그 시간.

맛있는 밀키트 음식을 사 오거나, 직접 만들어서 그것들을 먹음직스럽게 세팅한 후 다락방으로 올라가 재미있는TV를 보며 먹는 그 순간들.


신혼 때나 하던 일이라고? 천만의 말씀이었다.

결혼 8년 차인 지금이 오히려 더 강렬하다. 주 5일제

근무로 바뀌게 되면서 목요일부터 금요일, 토요일, 일요일 먹을 생각에 온 세상이 다 즐거워 보인다.


사실 내가 61kg까지 찐 데에는 남편의 '공'이 크다.

취미가 요리인 남편은 너무도 손쉽게 온갖 것을 뚝딱뚝딱 만들어낸다. 집에서 삼겹살 구워 먹는 건 기본이고, 산해진미 갈비찜, 꽃게탕, 생선조림, 파스타, 심지어 김치까지 담군다.


평생 생라면이 주식이고 거의 다 사 먹기만 했던 나에게는 충격 그 자체였다. 엄마는 엄마니까 해주시는 거고, 자취 생활을 하면서 더욱 확신했던 나의 고정관념이 완전히 깨졌다.


남편과 나는 딱 세 가지가 잘 맞는다.

먹는 것

캠핑 가는 것

음악 듣는 것


땅을 사고 주택을 짓고 나니 마당에서도 온갖 것을 해 먹을 수 있게 되었고, 즐기는 공간이 확보된 만큼 내 입은 더 맛있고 더 즐기려는 마음으로 가득 찼다. 물론 음식에는 무조건 맥주와 와인이 곁들여져야 하는 것이 기본이었다.


금토일 폭식의 밤 루틴은 나를 점점 더 행복하게 만들었고, 인생이 풍요롭고 풍성하다 느꼈다. 동시에 푸석하게 만들었다. 살이 찐 것과는 별개로 또 다른 개념이 있었는데, 그것은 '붓는 것'이었다. 원래 작은 눈은 더 작아 보였다. 팔다리가 땡땡 부었지만 그럴 때마다 맥주 하루 이틀 패스하고 다시 또 마시면서 삶을 이어갔다.


참새를 보면 보통 상체는 뚱뚱하고 팔다리는 얇은데,

내 모습이 딱 그랬다.


샤워 후 전신거울 앞에서 팬티를 입으면... 일본 스모 선수 같기도 했다.


나를 참새 또는 스모선수라 생각했지만 먹는 즐거움을 포기할 순 없었다. 이건 인생의 참된 기쁨이었기 때문이다. 단순한 나는 모든 기분전환을 먹는 것으로 해결했고 우울함이 오다가도 맛있는 걸 넣어주면 ‘인생 뭐있냐! 다 이러고 사는거지!’를 주문처럼 말했다.


진정으로 부끄러운 추악한 몸을 나도 알았지만, 늘 나를 보며 "예쁜이"라고 불러주는 남편 덕분에 그렇게 그렇게 시간은 잘도 지나갔다.


그런데 그날이 왔다.

동네 산책을 하고 집으로 들어왔다. 너무 더워서 우리 부부는 함께 씻기로 했다. 빨리 씻고 올라가서 맥주 마실 생각에 들떠서 누가 더 빨리 씻고 나가나 하며 서로 샤워기 앞에서 서성였다.

그때였다.

"자기야, 요새 허리 몇이야?"

"어?"

순간 너무 깜짝 놀랐다. 맨 몸으로 전방 1미터 사이를 두고 나를 훑어본 남편의 나지막한 음성이 그대로 나를 얼어붙게 했다.

"아, 조금 쪘지? 뺄 거야~"

"아니. 몇인데?"

"헐, 나도 모르는데..."

"자기야. 관리 좀 해야겠다, 이젠."

와.

같이 먹었는데. 순간 그 창피함은 죽을 때까지 못 잊을 것 같다. 장난기 하나 없이 심각해진 ‘이건 진짜 아니지 않니?’하는 그의 표정.

그날 밤, 나는 맥주를 마시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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