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반지하에서 카페 같은 집까지
동사무소에서 초본을 떼면, 내 인생의 이력서가 펼쳐진다. 최근에 받은 초본에는 3장에 걸쳐 빼곡히 적힌 과거 집 주소들이 나를 반겼다. 여덟 살까지 열 번의 이사. 거쳐 간 동네와 집의 주소란에는 복붙(복사 붙이기)을 한 듯이 ‘산 몇 번지’가 기록되어 있다. 오랜만에 주소들을 보며, 영화관에서 두 번이나 본 영화 ‘기생충’의 반지하 집이 떠올랐다. 영화 속 높다란 변기를 보며, 과거의 집 화장실도 오물이 역류하지 않으려고 평지보다 높게 설치됐던 것이 생각났다.
우리 집에는 항상 ‘주인집’이 있었고, 집 형태는 대부분 단칸방 반지하 또는 지하였다. 반지하는 창문이 있어 바람이라도 들어왔지만, 지하는 아예 토굴 같았다. 해를 본 기억이 드물었고, 집 안은 늘 어둡고 축축했다.
사계절을 알기 어려운 집. 그 집들은 지금 어떻게 변했을지 문득문득 궁금해진다. 그 시절, 우리 동네는 가난의 상징과도 같았다. 이사할 때마다 낯선 벽지와 창문, 좁은 방, 삐걱거리는 바닥, 그리고 개미와 바퀴벌레가 나를 맞이했다. 어느 날, 낮잠을 자다가 방바닥에서 미세한 움직임의 소리가 일사분란하게 흘러들었다. 그때는 여섯 살이었으니 ‘일사분란하다’는 표현을 쓸 수 없었지만, 어린 나도 집중하면 들을 수 있는 소리였다.
‘뭐지?’하고 장판을 뒤집었더니, 그 아래 우글거리는 아주 작은 개미 떼들을 보고 놀라 울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내가 개미들 위에서 자고 있다니.’ 그땐 왜 개미가 거기서 살았을까 궁금했지만, 지나고 보니 지하가 너무 습해서였던 것 같다.
엄마와 아빠는 스물두 살에 나를 낳으셨다. 또래 친구들의 부모님보다 훨씬 젊으셨다. 당시에는 부모님이 어리다는 생각을 못 했는데, 자라면서 보니 주변 친구 부모님들보다 결혼이 이른 편에 속했음을 알게 됐다. 내 나이 스물두 살에는 대학교 휴학하고 빙수집 알바했던 기억이 있다. 그때를 떠올리면, 어떻게 부모님이 출산과 양육을 하셨을까 싶다. 그들이 원해서 그렇게 된 것은 아니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여덟 살이 될 때까지 열 번의 이사, 일 년도 채 안 되는 짧은 기간 동안 여러 번 집을 옮기며 새로운 공간을 맞이했다. 공간은 바뀌었지만 집의 느낌은 신선하지 못했다. 남들도 다 그렇게 사는 줄 알았다.
마흔을 훌쩍 넘긴 지금, 나는 ‘카페 같은 집’에 산다. 부드러운 햇살이 거실을 감싸고, 좋아하는 커피잔과 책들이 가지런히 놓인 공간. 누군가 집에 오면 “여기 정말 카페 같다”며 감탄한다. 집 인테리어 관련 책을 두 권 펴냈고, SNS에 올린 사진에는 ‘이런 집에서 살고 싶다’, ‘향기가 날 것 같다’는 댓글이 종종 달린다. 감사한 마음과 동시에, 한편으로는 낯설다. ‘향기가 난다’라니. 어쩌면 누군가는 내가 태어날 때부터 이렇게 예쁜 공간에서 여유롭게 살아온 사람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집은, 그리고 지금의 나는, 결코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어둡고 습했던 반지하, 국민학교 1학년에 도시 외곽의 14평짜리 첫 번듯한 빌라, 서른 살 인생 첫 독립한 원룸. 공간의 변화가 생생히 그려진다. 결핍을 통과하여 새로움으로 향하는 시간들이 나를 단단하게 빚어냈다. ‘결핍’이라는 단어는 ‘있어야 할 것이 없어지거나 모자람’을 뜻하지만, 내게 소소한 결핍들은 오히려 성장의 불씨가 되었다. 부족함 속에서 꿈꿨던, 작은 새싹 같은 소망들이 오늘의 나를 이끌었다.
이제, 그 지난한 시간과 공간을 지나오며 내가 어떻게 성장했고, 어떤 마음으로 지금의 집을 만들어왔는지,
그 모든 여정을 솔직하게 풀어내려 한다.
반지하의 어둠에서,
햇살 가득한 '카페 같은 집'에 이르기까지-
이제, 나의 이야기가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