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이나 사유, 인문학에 가까워질수록 이상하게 걱정되는 순간이 있다. 혹시 내가 현실 감각을 잃어가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사람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가끔 대화가 겉도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누군가는 아주 단순하게 묻는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되는 거야?” 그런데 머릿속에서는 이미 질문이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왜 우리는 그렇게 살아야 할까, 사람이 원하는 건 정말 그걸까, 그 선택은 누구의 기준일까. 생각은 점점 깊어지는데 대화는 점점 얕아진다.
예술가나 철학하는 사람들에게 종종 이런 이미지가 따라붙는다. 대답이 엉뚱하다, 대화가 어렵다, 사람이 듣기 지친다, 현실감이 없다. 실제로 어떤 예술가들의 인터뷰를 보면 질문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는 답변이 많다. 질문은 “어떻게 하셨나요”인데 대답은 “존재의 의미”로 흘러간다. 그러면 듣는 사람은 살짝 피곤해진다. 그래서 가끔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사유가 깊어질수록 현실 속 사회성과 멀어지는 건 아닐까. 생각이 깊어질수록 센스와 시의성을 잃어버리는 건 아닐까.
사실 이 두 세계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작동한다. 철학의 세계는 느리고 깊다. 하나의 질문을 오래 붙잡고 답보다 질문을 더 오래 바라본다. 반대로 현실의 세계는 빠르고 직관적이다. 지금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지금 어떤 반응이 센스 있는지, 지금 무엇이 필요한지. 그래서 두 세계 사이에는 가끔 온도차가 생긴다. 생각이 깊은 사람은 말을 하기 전에 생각이 너무 많아지고, 현실 감각이 빠른 사람은 생각하기 전에 먼저 말이 나온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철학을 멀리한다. 현실과 멀어질까 봐.
하지만 사실 사유와 현실은 서로 멀어질 필요가 없는 관계다. 생각이 깊다는 건 현실을 버린다는 뜻이 아니라 현실을 더 오래 바라본다는 뜻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중요한 건 깊이와 속도를 함께 다루는 능력일지도 모른다. 혼자 있을 때는 마음껏 깊어지고, 사람들과 있을 때는 조금 더 가볍게 말할 수 있는 것. 생각의 깊이는 말의 무게와 꼭 같을 필요는 없다.
어떤 생각들은 내 안에서 오래 머물러도 되고, 어떤 대화는 가볍게 흘러가도 괜찮다. 그래서 사유가 깊어질수록 굳이 모든 생각을 다 말하려 하지 않아도 된다. 때로는 센스 있는 한마디가 깊은 생각보다 더 사람을 편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리고 그건 생각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생각이 충분하기 때문에 가능한 태도일지도 모른다.
철학이 사람을 멀어지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생각을 다루는 방식이 사람을 멀어지게 만들 뿐이다. 그래서 사유와 현실 사이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건 아마 이것일 것이다.
깊이 생각하되 가볍게 말하는 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