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의 역전에 대한 짧은 연재 시리즈
나는 어려서부터 내 기분보다 엄마의 표정을 먼저 살폈다.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어도, 문을 열자마자 엄마의 얼굴빛이 오늘의 날씨를 정했다.
밥이 식는 건 괜찮았다. 중요한 건 오늘 엄마가 웃는지, 울고 있는지였다.
엄마는 늘 불안했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상처받고, 아버지의 침묵에도 쉽게 무너졌다.
그럴 때마다 나는 어린 손으로 엄마의 어깨를 다독이며 말했다.
“괜찮아, 엄마. 내가 있잖아.”
그 말은 위로라기보다 집을 지탱하기 위한 주문이었다.
그 주문을 잊으면, 우리 가족이 금방 부서질 것만 같았다.
시간이 흘러 나는 어른이 되었지만,
누군가의 표정 하나에 내 하루가 흔들리는 버릇은 여전히 남았다.
회사에서도, 친구 사이에서도 나는 늘 ‘눈치 빠른 사람’으로 통했다.
하지만 그건 성격이 아니라,
엄마의 불안을 통해 배운 생존 방식이었다.
나는 엄마보다 먼저 어른이 되어버렸다.
엄마가 울면 내가 달래야 했고, 엄마가 분노하면 내가 수습해야 했다.
그때마다 마음 한쪽이 서서히 닳아갔다.
그녀는 내 엄마였지만, 동시에 내가 돌봐야 할 아이였다.
이제야 조금씩 배운다.
엄마의 기분을 대신 살아주지 않아도 된다는 걸.
엄마의 불행을 나의 의무처럼 안고 살지 않아도 된다는 걸.
나는 여전히 엄마를 사랑하지만,
그 사랑 속에서 나 자신을 잃지 않기로 했다.
오늘도 나는 조용히 되뇐다.
“이제 내 인생의 날씨는, 내가 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