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지난 이야기
유능한 사람이 첫 등장에 탈락하는 장면은 언제 봐도 당황스럽다. 흑백요리사2에서 신동민 셰프가 그랬다. 분자요리를 한국에 처음 도입한 셰프로 유명하고, 업계에서도 실력과 이력을 인정받는 사람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의 등장 자체를 기대했고, 동시에 “당연히 잘하겠지”라는 전제가 있었다.
그런데 첫 미션에서 탈락했다. 그 장면은 시청자들에게 꽤 큰 충격이었다. 실력이 없는 사람이 떨어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너무 유명하고 대단한 사람이 예상보다 빨리 무너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는 사람들조차 묘한 대리 수치와 난처함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본질은 단순했다. 그 요리가 심사위원들에게 맛이 없었다는 것이다.
물론 그에게도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그는 이 미션을 하나의 완결된 시험처럼 보기보다, 앞으로 보여줄 여러 요리 중 첫 장면, 일종의 에피타이저 정도로 생각했던 것 같다. 자신의 머릿속에는 전체적인 흐름과 계획이 있었고, 그중 첫 번째 조각을 꺼내 보여준 셈이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착각이 하나 생긴다. 그 사람이 참여한 것은 자신의 요리 철학을 천천히 보여주는 전시가 아니라, 이미 규칙이 정해진 미션이었다는 것이다. 아무리 훌륭한 계획과 철학이 있어도,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규칙 안에 들어가는 순간 전략은 달라져야 한다. 그 공간에서는 내가 무엇을 보여주고 싶은지가 아니라, 그 규칙 안에서 어떻게 가장 잘 해내는지가 먼저가 된다.
이 장면이 묘하게 현실과 닮았다고 느껴졌다. 우리도 인생에서 종종 비슷한 착각을 한다. 머릿속에는 긴 계획이 있고, 언젠가 보여줄 능력도 있고, 스스로 생각하는 큰 그림도 있다. 하지만 사회는 그걸 기다려주지 않는다. 회사든 시험이든 관계든, 대부분은 지금 주어진 미션으로 평가한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미션의 규칙을 잘못 읽어서 무너진다. 그리고 그 장면은 때때로 생각보다 훨씬 난처하게 드러난다.
결국 중요한 질문은 이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가진 생각과 계획이 무엇인가가 아니라, 지금 내가 들어와 있는 규칙 안에서 나는 어떤 전략을 쓰고 있는가라는 것. 아무리 좋은 계획도, 그 무대의 규칙을 이해하지 못하면 제대로 보여지지 않는다. 그리고 인생은 생각보다 자주 우리의 계획보다 미션을 먼저 요구하는 방식으로 흘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