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이렇게 쉽게 화를 낼까

by 랭크작가

사람들을 보다 보면 두 부류가 눈에 띈다. 사사건건 예민하게 반응하고 쉽게 분노하는 사람, 그리고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축 처져 있는 사람.


겉으로는 전혀 다른 유형처럼 보이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묘하게 닮아 있다. 둘 다 감정에 휘둘린다. 단지 한쪽은 밖으로 터뜨리고, 다른 한쪽은 안으로 가라앉힐 뿐이다.


나는 가끔 이 모습을 보며 이상한 생각을 한다. 이 사람들은 감정 훈련을 한 번도 받아보지 못한 건 아닐까.


이 생각은 의외의 곳에서 시작됐다. 강아지였다.

훈련되지 않은 강아지는 생각보다 쉽게 흥분한다. 작은 자극에도 짖고, 낯선 사람에게 과하게 반응하고, 통제되지 않은 에너지로 주변을 어지럽힌다. 사람들은 그런 강아지를 흔히 지랄견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신기한 건, 그런 강아지도 훈련사를 만나면 완전히 달라진다는 점이다. 처음에는 짖고, 물고, 통제되지 않던 행동들이 점점 정리된다. 앉아, 기다려, 멈춰 같은 단순한 명령을 배우면서 자극과 반응 사이에 멈춤이 생긴다.


그리고 그 이후의 삶은 오히려 더 넓어진다. 이전에는 통제되지 않는 행동 때문에 갈 수 없었던 공간에 들어갈 수 있게 되고, 더 많은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고, 가족과의 관계도 훨씬 안정된다.


흥미로운 건 이 과정이 강아지를 불행하게 만들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그 반대다. 훈련된 강아지는 덜 불안하고 덜 예민하며 훨씬 안정된 상태로 살아간다.


나는 여기서 인간을 떠올렸다.

우리는 강아지보다 훨씬 복잡한 존재라고 믿지만 감정 앞에서는 생각보다 크게 다르지 않다. 작은 자극에도 화가 나고 예상과 어긋나면 예민해지고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하루 기분이 무너진다.


그리고 그 반대편에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무기력이 있다. 해야 할 일을 알면서도 움직이지 못하고 감정이 가라앉은 채로 계속 미루기만 하는 상태.


이 두 모습은 사실 하나의 질문으로 연결된다. 나는 내 감정을 다룰 줄 아는가.

강아지는 훈련을 통해 배운다. 앉아, 기다려, 멈춰. 즉각 반응하지 않고 한 박자 멈추는 법을 배운다. 그 멈춤이 생기면서 행동이 달라지고 행동이 달라지면서 삶의 범위가 넓어진다.


그런데 인간은 이상하게도 이 과정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다.

우리는 어릴 때 이렇게 배운다. 화내지 마라, 참아라, 착하게 굴어라. 하지만 정작 중요한 건 배우지 못한다. 지금 화가 나는 이유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그 감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어디까지가 적절한 반응인지.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감정 앞에서 두 가지 방식 중 하나를 선택한다. 그냥 터뜨리거나 아예 꺼버리거나.

분노에 찬 사람은 계속 외부를 공격하고 무기력한 사람은 점점 자기 안으로 무너진다. 둘 다 훈련되지 않은 상태다.


여기서 한 가지 오해가 생긴다. 그럼 사람도 강하게 혼내서라도 잡아야 하는 거 아닐까.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다. 경계는 필요하다. 무엇이 허용되고 무엇이 허용되지 않는지에 대한 기준은 분명해야 한다.


하지만 인간은 강아지와 다르게 단순한 통제로는 바뀌지 않는다.

강아지가 명령에 반응하는 존재라면 인간은 의미에 반응하는 존재다. 납득되지 않는 통제는 겉으로만 눌릴 뿐 결국 더 큰 분노나 무기력으로 돌아온다.


그래서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한 훈련이 아니라 이해를 포함한 훈련이다.

지금 내가 화가 난 이유를 알아차리고 이 감정이 어디서 시작됐는지 이해하고 그걸 어떻게 표현할지 연습하는 과정.


말하자면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앉아 기다려가 아니라 지금 멈추고 이해하고 선택하라는 훈련이다.

이 훈련을 받은 사람은 달라진다.

같은 상황에서도 바로 반응하지 않고 감정과 행동 사이에 공간을 만든다. 그 공간 안에서 선택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 선택이 쌓이면서 그 사람의 삶은 점점 안정된다.

흥미롭게도 이런 사람들은 더 많은 기회를 가진다. 관계가 안정되고 신뢰가 쌓이고 불필요한 감정 소모가 줄어든다.

마치 훈련된 강아지가 더 넓은 세상을 살아가듯이.


그래서 어쩌면 우리가 사는 이 사회에서 필요한 것은 더 많은 경쟁이나 더 강한 의지가 아니라 감정을 다루는 방법을 배우는 경험일지도 모른다.

분노를 억누르는 것도 아니고 무기력하게 포기하는 것도 아닌 그 사이에서 감정을 다루는 힘.


우리는 이미 충분히 많은 것을 배우며 살아왔다. 하지만 정작 가장 자주 사용하는 도구인 감정에 대해서는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다.

그래서 오늘 한 번쯤은 스스로에게 물어볼 수 있다.

나는 지금 훈련되지 않은 상태로 반응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그리고 아주 짧게라도 반응하기 전에 한 번 멈춰볼 수 있다.

어쩌면 그 한 번의 멈춤이 우리 삶을 조금 더 편안하게 만들어줄지도 모른다.







매거진의 이전글흑백요리사2 신동민 셰프의 탈락을 보며 든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