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져도 되는 날들

점만 남고, 선이 사라진 날들에 대하여

by 랭크작가

요즘 나는 누가 날 괴롭히지도, 해치려 들지도 않는데 자꾸만 숨이 막히고, 가슴이 조여 온다.

위협도 없고, 사건도 없고, 문제도 없는데 마치 폭풍 한가운데 서 있는 사람처럼 몸과 마음이 동시에 굳어버린다.

사람들이 말하는 우울이란 게 이런 걸까. 바깥은 멀쩡한데, 안쪽에서는 천천히 깨어진 유리조각들이 굴러다니는 느낌. 나는 그 조각들 사이를 맨발로 걸어간다.


예전의 내 인생은 점과 선으로 이어져 있었다. 비록 완벽한 선은 아니었어도 점과 점은 이어졌고 일상의 사건들은 의미라는 이름의 실로 연결되었다.

“지금 여기까지 온 이유가 있다.”그런 믿음 비슷한 게 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선들이 모두 사라졌다.

연결이 끊어지고 구조도 흐릿해지고 점들은 허공을 떠다녔다.

마치 우주 한가운데 던져진 작은 먼지 입자처럼 나라는 존재가 어딘가를 향하지도 못한 채 흩어지고, 흩어지고, 또 흩어졌다.


우울은 나를 쓰러뜨리거나, 공격하지 않는다. 대신 이렇게 한다. “모든 의미를 빼앗아 간다.” 누군가가 해친 것도 아닌데 삶이 덩그러니 비어 있는 느낌. 상처가 난 것도 아닌데 아무 이유 없이 아픈 마음.

태어나서 처음으로 “내가 왜 여기 있는지 모르겠다”는 문장이 실제로 내 가슴에서 울렸다.

그 순간 나는 알았다. 이 감정은 게으름도 아니고 성격의 문제도 아니고 단순한 슬픔도 아니고

그냥…
우울이라는 이름의 안개가 내 안에 내려앉은 것이라고.

우울 속에 있으면 점들이 서로 이어지지 않는다.


과거의 나는 점과 선이 모여 하나의 나를 만들었고 그 선은 미래로 뻗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선이 없다.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길도 누군가와 이어지는 관계도 나 스스로와 연결되는 실도 모두 희미해졌다.

그래서 점만 남았다. 제자리에서 허둥대며 떠다니는 점 하나. 어디에도 닿지 못하는 점 하나. 이유도 목적도 잃어버린 점 하나. 그리고 그 점이 바로 지금의 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을 쓰고 있는 이유는 아주 단순하다. 떠다니는 점이라도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어딘가에 기록해두고 싶었다. 사라지지 않았다. 무너지긴 했지만, 없어진 것은 아니다.

선이 다시 생기기 전까지 나는 점으로 잠시 머무를 것이다.

점은 결국 또 다른 점을 만나 언젠가 선이 된다. 그 사실만은 나도 알고 있다. 그걸 믿기엔 조금 아픈 하루들이지만 그래도 오늘, 나는 여기에 이렇게 점 하나로서 존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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