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운 일은 없다, 하지만 쉬운 마음은 있다

'약아 빠지지 못해 큰일이다.'라는 말을 듣고 자란 최후

by 랭크작가

어릴 때 엄마는 늘 말했다.
“너는 약아 빠지지 못해서 큰일이다.”
그 말은 칭찬도, 위로도 아니었다.
세상을 살아가려면 영리해야 하고, 빈틈 없어야 하고, 손해 보지 말아야 한다는 일종의 생존 지침처럼 들렸다.
나는 그 말을 믿었고, 그래서 노력했고, 더 예민하게 세상을 읽으려 애썼다.

성인이 되고 나니, 엄마 말이 어느 정도 맞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약아 빠지고, 영리하고, 머리 좋고, 욕심 있는 사람들은 정말 많은 걸 얻는다.
돈, 재산, 사회적 위치, 인정…
세상은 확실히 똑똑하고 빠른 사람들에게 좀 더 빠르게 보상을 준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런 사람들 모두가 행복해 보이지는 않았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약아지고, 빠르고, 날카로워질수록…
내 안의 목소리와는 점점 멀어지는 건 아닐까?’

나는 어릴 때부터 마음이 예민한 아이였다.
조그만 것에도 크게 기뻐하고, 사소한 것에도 크게 상처받았다.
사람의 표정과 말 사이의 미세한 떨림도 느껴지고,
누군가의 슬픔이 내 안으로 스며드는 것을 막지 못했다.

그런데 세상은 그런 나에게 늘 말했다.
“그렇게 예민하면 힘들다. 단단해져라. 약아져라.”

그래서 나는 마음을 채찍질하며 살아왔다.
더 똑똑해지려고, 더 완벽해지려고,
내가 사랑하는 모든 존재를,
내 힘으로라도 더 나은 방향으로 끌어올리고 싶었다.

하지만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그건 사랑이 아니라 욕심이었다는 걸.
지켜주고 싶은 마음과 통제하고 싶은 욕구는
한 끗 차이였다는 걸.
그리고 그 욕심이 나를 파괴하고 있었다는 걸.

나는 너무 많은 것을 ‘잘하려’ 했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나’는 없었다.
내가 쉬는 자리도, 내가 숨 쉬는 여유도 없었다.

그때 알았다.
세상에는 쉬운 일이 없지만,
쉬운 마음은 있다는 것을.

쉬운 마음이란
완벽을 내려놓는 마음이다.
누군가를 고쳐주겠다는 욕심을 내려놓는 마음이다.
“지금 있는 그대로의 인간”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주는 마음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
나 역시 완벽할 필요 없다는 마음이다.

엄마는 나에게 약아지라고 말했지만
나는 이제야 안다.
인생을 건너가는 데 필요한 건
약아짐이 아니라
나에게 쉬운 마음을 허락하는 용기였다는 것을.

지금 나는 느릿하게라도 내 마음의 속도를 따라가 보려고 한다.
빠릿하게 굴지 않아도 좋고,
한 번에 다 해내지 않아도 좋다.

세상에는 여전히 쉬운 일이 없을지 몰라도
마음을 쉬게 하는 선택은
내가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쉬운 마음 위에서야
비로소 나는
내가 사랑하려 했던 사람들을
진짜로 사랑할 수 있다는 걸
조금씩 배워가는 중이다.

이전 03화무너져도 되는 날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