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 값'이 너무 크면 생기는 일

기분나쁨 비용에 너무 많은 지출을 하는 나를 위로하고자 합니다

by 랭크작가

내가 어릴 때 가장 무서웠던 건 엄마의 감정 폭발 비용이었다.
엄마는 기분이 나빠지면 감정이 눈덩이처럼 커져 짜증‧분노‧폭언으로 터졌고, 때로는 술로 마음의 구멍을 막으려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아이였지만 이상하게 속으로 다짐하곤 했다.
“나는 절대 저렇게 되지 말아야지. 나는 절대 내 감정 때문에 누군가를 망가뜨리지 말아야지.”


그런데 어른이 되고 보니, 나는 엄마처럼 화를 내지 않는 대신
엄마와 너무 닮은 다른 방식으로 기분나쁨 비용을 지불하고 있었다.
나는 폭발하지 않았지만, 조용히 나를 무너뜨렸다.
몸에 안좋은 음식으로 마음을 채우고, 의미 없는 소비로 불안을 덮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시간을 흘려보내고, 계획을 망가뜨리고, 잠수타듯 세상에서 나를 지웠다.


엄마는 세상에 화를 냈고, 나는 나에게 화를 냈다.
방법은 달랐지만, 우리는 결국 같은 방식으로 스스로를 잃어버리고 있었다.

기분나쁨 비용이 큰 사람들은 단순히 ‘감정 조절이 서툰 사람’이 아니다.
이들은 마음속에서 감정이 금방 들끓는 게 아니라, 감정을 감당할 그릇이 얇고 찢어져 있는 사람들이다.
조금만 흔들려도 감정이 밖으로 넘치고, 그 넘침을 받아줄 안전한 곳이 없어서 결국 비용을 지불하는 방식으로 버티는 것이다.
누군가는 술, 누군가는 분노, 누군가는 쇼핑, 누군가는 무기력으로.

그리고 나는 내 방식의 파괴를, 오랫동안 ‘나약함’이라고 오해했다.


하지만 이제는 이것이 대물림된 감정의 구조였다는 것을 조금은 알게 되었다.

엄마가 감정에 잠식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었듯
나 역시 내 감정이 흘러나와 어디론가 사라지지 않으면,
그 감정을 나 혼자 감당하기엔 너무 아팠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 대물림을 어떻게 끊어야 할까.


답은 놀랍도록 단순하지만, 실천은 어렵다.
바로 감정을 비용으로 처리하기 전에 나에게 말을 걸어주는 것.

“지금 뭐가 이렇게 아파?”
“뭘 잃어버린 기분이야?”
“누가 널 무시했어?”
“너 지금 인정받고 싶어서 흔들리는 거지?”

이 질문들은 엄마에게 받아본 적 없는 질문이었다.
엄마의 세대는 감정을 들여다볼 여유가 없었고
나는 그 여유가 없던 사람들에게서 자라면서 같은 습관을 배웠다.

그래서 이제야 비로소 나는 나에게 그 질문을 건넨다.
내 감정이 소비로 튀어가기 직전, 아무것도 하기 싫어지는 직전, 이불 속으로 숨어버리기 직전에.
그러면 이상하게도 마음이 아주 조금은 고개를 든다.
감정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그 감정 앞에서 내가 완전히 무력해지지는 않는다.


나는 여전히 기분나쁨 비용이 큰 사람이다.
그건 바뀔 수 없는 내 기질의 일부다.
하지만 이제는 그 비용을 치르기 전에
한 번쯤 걸음을 멈출 수 있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감정을 억누르는 사람도 아니고, 감정에 휘둘리는 사람도 아닌,
감정을 이해하려는 사람으로.

엄마가 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나는 나를 달래고, 안아주고, 용서하는 중이다.
대물림은 그렇게 조금씩 깨지고 틈이 생긴다.
그 틈으로 새로운 내가 자란다.
감정의 무게를 덜어내는 방법을 배우는 삶.
그것이 내가 다음 세대에 물려주고 싶은 유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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