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에 사람이 많은 사람들

엄마를 키우는 중입니다 中

by 랭크작가

나는 엄마에게 진솔함을 배우지 못했다. 나는 내가 스스로 배워나가야 했다. 나라는 사람에게 '진솔함'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20대 후반이었다. 한 친구의 결혼식장에 갔는데, 신부대기실에 인사오는 사람들의 반응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두세명씩의 여러 그룹, 여러 친구들이 대거 와서 정말 진심으로 축하해주고 아껴줬다. 그 사람들의 표정과 표현에는 분명한 '진심'이 있었다. 30대까지 수많은 결혼식을 갔지만, 그렇게 아름다워 보이는 결혼식은 그때가 제일이었다.


나는 보통 친한 친구 두세명정도 있으면 적당하다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게 많은 사람한테 사랑받고 축하받는 결혼식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서로가 서로에게 주고받는 찰나의 느낌은 '진솔함'이었다. 나에게 꿈꾸던 으레 하는 결혼식이란, 부모님 은퇴 전, 최대한 많은 하객들을 불러서, 가급적이면 호텔이나 준호텔급의 좋은 예식장에서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결혼하는 것이었다. 택시에서 전세냐고 물었다고 혼났던 나는 남들에게 어떻게 보여지는지가 행복의 척도인 것마냥, 애매모호한 것을 추구하며 살았다. 어쩌면 추구하는 것이 없는데도 무언가를 추구하는 줄 알며 살아가는 애매한 인생 말이다.


내가 봤던 그 결혼식은 나의 인생과는 많이 달랐다. 매순간 사람에게 진심이고, 진솔하고, 다정한 친구에게 돌아오는 진짜 축하. 시기질투를 숨긴 뾰족한 축하가 아닌, 진짜 축하. 그런 것들은 어떻게하면 배울 수 있는건지 난감했다. 어쩌면 내가 가장 원하던 삶의 가치와 가장 가까운 부분이었다. 하지만 나는 마음을 내어주는 일에는 무지하게 자랐다. 그냥 나 자체로 자라고, 내 효용과 실용과 매력을 제공하며 살아갈 뿐이었다. 내 마음을 내어주는 법을 인지하지 못하고 살아왔다.


사실 그런 부분을 부모 탓, 환경 탓 하는건 너무 무책임한 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이제서야 소수의 인원과 진솔함을 최대한 유지하려고 아등바등 살아가고 있고, 지금의 우리 엄마에겐 진솔함이라는걸 주고받는 관계가 없다는걸 안다. 엄마의 실패가 자꾸 내 눈 앞에서 아른거리니, 나의 노력중인 정체성에도 침해가 되어 슬프다. 아무 존재도, 어떤 관계도 없이 텅 빈 우리엄마는 정말 혼자가 편해서 그렇게 된걸까, 아님 정반대를 원했는데 방법과 방향을 잘못 알았던 것일까.


최근에 엄마가 '어떤사람 결혼식에, 형식적으로 해야하는 축의금을 얼마 해야하냐.'고 묻는 일이 있다. 나에겐 그런 질문이 너무 벅차고 어렵게 느껴진다. 키오스크 이용법, 카카오톡 이용법 이런 내가 더 잘알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 '시간'과 '세월'을 무기로 엄마가 나보다 좀 더 알았으면 하는 영역에 대한 질문이 들어오면, 자연히 버거움을 느끼게 된다. 주변에 사람이 없는 사람들은 결국에 자식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 같다. 자식이라도 있어서 다행인 것일 수도 있지만, 이것이 엄마가 바래왔던 것은 아니었을 것 같기에 참 많이 씁쓸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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