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키우는 중입니다 中
어려서부터 우리 엄마는 조금만 기분 나빠도 다 티를 내는 성격이었다. 문제는 '조금만 기분 나쁜' 상황이 너무나 많았다는 것이다. 급한 일정이 아니어도 상대가 조금 늦어서 기다리게 해도 화가 나고, 갑자기 TV가 안된다거나 리모컨이 안돼도 화가 나고, 가족들이 사 논지 얼마 안 된 음료수를 금방 먹어버려도 화가 났다. 당연히 누구에게든 짜증 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짜증이라는 기분이 분노하는 태도로 발현되는 데에는 굉장히 즉각적이었다. 기분이 태도가 되는 엄마는 '수고스러움'을 굉장히 싫어했던 것 같다. 내가 기다려야 해서 수고스러운 것, 내가 고쳐야 해서 수고스러운 것, 내가 모르는 것을 알아봐야 하는 수고스러운 것 등등.
수고스러운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어딨겠는가. 하지만, 적당한 수고스러움을 참는 것에서, 짜증을 참아내는 인내에서, 화를 내지 않는 배려에서 인간 간에 훈기라는 게 싹트는 것 같다. 너무나 작은 일에도 수고스러움에 대한 경멸을 느끼다 보면, '작은 일, 보통일, 큰일' 관계없이, 상대에게 증오를 뿜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독한 연기를 맡는 상대방은 어떻게 될까. 나로 말하자면, 처음엔 기가 죽고, 그다음엔 짜증이 전염되고, 그다음엔 똑같이 분노를 뿜게 된다. 나도 엄마로부터 쉽게 분노와 자기 방어를 느끼는 법을 배운 것 같다. 하지만 여기부터는 맨 처음 글에서 언급한, [2. 엄마로부터 닮은 단점]과 [3. 내가 닮았다고 착각한 것]의 영역 사이의 것이라, 엄마의 영향을 받은 것이지 선택은 나의 책임이라는 것을 안다.
쉽게 증오를 느끼고, 수고스러운 일에 경멸을 느끼는 기본적인 심리는 자기 방어 같다. 타인으로 인해 예상치 못한 상황이 일어나는 것들에 대해 자기 자신을 지키고 싶은 마음 말이다. 하지만 이 마음은 원초적으로 잘못되었다. 타인이 잘못을 저질렀을 때는 당연히 자기 방어가 나와야 한다. 그것이 사회 속에서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시도 때도 없이 내 기분과 감정에 따라 자기 방어를 발휘하면, 내가 언제 진짜로 화내야 하고 언제는 화내면 안 되는지 구분이 안 가기 시작한다. 주변 사람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언제 선 그어야 할지, 언제 선 긋지 말아야 할지도 모르게 된다.
정말 즐거워야 할 때 즐거워할 수 없고, 즐거워하면 안 될 때 즐거워하며, 분노해야 할 때 분노하지 않고, 분노해야 하지 않을 때 분노하는 삶이란 얼마나 카오스인가. 그러한 엉망진창의 멘탈 속에서 고통받는 것은 자기 자신만이 아니다. 그와 함께하는 상대들도 자연히 멀어지게 된다. 내가 잘못하지지도 않았는데 상대방이 자꾸 자기 방어 기제를 부리고, 나를 자신의 감정의 쓰레기통처럼 여긴다면 누구도 옆에 남아줄 수 없다. 그런 시간이 길어지면 그리고 세월이 굳어지면, 나는 그러한 멘탈을 '가난한 멘탈'이라 생각한다. 더 이상 바꿀 수도, 바뀔 의지도 여력도 없는 엉망진창의 멘탈. 나 자신과도 친하지 않고 타인과도 친할 수 없는 '가난한 멘탈'은 인생을 살면서 가장 경계해야 할, 하지만 내 삶에 아주 조금 스며들어 있는 무서운 존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