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하는 저주가 먹힐까?

엄마를 키우는 중입니다 中

by 랭크작가

나는 회사생활 및 그 외 인간관계에서 정말 손에 꼽을 정도로 저주하는 한 사람이 있다. 먼 미래의 내 꿈은 그 사람이 아프게 한 기억을 토대로 소설을 만들거나, 영상을 만들어서, 그사람의 잘못과 추악한 인생이 영원히 세상에 박제되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그 사람은 나보다 직급도 높고, 경제적으로 부유하며, 사회가 성장하던 시기의 흐름을 탔으며, 회사에서도 인정받는 사람이다. 그럼 그렇지. 내가 하는 소심한 저주와 복수가 그 사람에게 먹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저주'는 그렇게 간단하고 명료한 힘만 갖고 있는 습성이 아니라고 느꼈다. '저주'는 타인에게 정말 진심으로 상처주고, 타인의 영혼을 갉아먹어야 얻을 수 있는 영역이다. 우리 엄마는 학창시절 공부 욕심이 아주 많았다. 친구들과 어울리기보다 너무 과욕이 앞서서, 그렇게 살다가 얼마나 잘되는지 보자는 저주를 들었다고 한다. 엄마의 첫 단추가 어디서 잘못꿰어졌는지, 어디서 다시 꼬매면 원상복귀될 수 있었을진 모르겠다. 하지만, 그 친구가 지금 엄마의 인생을 본다면 아주 꼬시겠다는 생각이 들 것 같다.


엄마랑 함께 사주를 보러가면, 엄마의 사주가 굉장히 안좋게 나올까봐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실제 사주 결과나 재미로 보는 모바일 어플 사주로 엄마의 사주는 특별하게 나쁠 것이 없었다. 모두에게 사주적으로 좋은 부분도 있고, 경계해야할 부분도 있는 그런 평범한 범위 안에 있었다. 결국 사주를 뛰어넘는 것이 자기 자신의 의지 (바르게 살려는 의지, 남에게 상처주지 않으려는 의지, 부족한 것을 개선해나가려는 의지) 라고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올곧은 의지만 있다면 사주는 중요하지 않은 것이다. 좋은 사주를 더 좋게 할 수도 있고, 나쁜 사주를 전복시킬 수도 있는 것이다.


엄마에게 과거 그 친구의 저주가 먹혔다기 보단, 엄마가 인생을 살면서 바삐 사는 데에 집중하느라 놓친 의지들. 건강한 의지들을 놓치면서 파생된 안좋은 선택들. 그 선택들이 타인과 주고받은 상호작용들 속에서 저주는 자연히 발현됐다고 표현하는게 맞을 것 같다. 그러니, 저주라는 것은 허무하게도 내가 올곧은 의지로 생기지 않게 할 수도 있으며, 중간에 변화해서 저주를 무력화할 수도 있으며, 내가 안좋은 의지대로 계속 살아가면 필연적으로 나오는 결과값이라고 볼 수 있는 개념같다.


나는 엄마의 저주를 풀어주기 위해 부단히 고민하고 있다. 사실, 도화지같은 아이를 키우는 것이 이미 다 성정이 굳어진 어른을 바꾸는 것보다 1만배정도 더 쉬울 것이다. 내가 엄마를 바꾸리란 욕심은 없다. 다만, 엄마가 미처 자라지 못한 부분을 내가 키워줄 수 있다면 도움을 주고 싶다. 더욱이 그런 사람의 자식으로 자란다는건 나에게도 꽤나 아픈 화살이 박혀있다는 것이니, 내가 살고자 결정한 일일 수도 있겠다. 그러니 우리 모두 절대로 저주받을 행동을 하며, 그런 습성을 지니며 살아가지 말아야 할 것이다. 자기 자신의 인생으로 절대 쉽게 받아선 안될 흉물이 바로 저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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