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윤정이 다시 태어나도 도경완과 결혼할거냐는 질문을 들었다. 그녀는 '나는 그냥 안태어나고 싶다.'고 대답했다. 나의 편견일수도 있지만, 부모같지 않은 부모 밑에서 자란 사람들에겐 으레 드는 생각같다. 내가 안정적인 부모 밑에서 자란 유년기라도 있어야, 그 다음 거친 풍파와 시련도 당당하게 맞이할 수 있는 것이다. 불안정하고 보호받지 못하는 가정에서 자랐다는 느낌이 들면 (물론 강인한 사람은 극복해낼 것이고, 마음이 조금 유약한 사람은 평생 극복하면서 살아낼 것이다) 거친 풍파는 살을 파고들어 아리고 쓰리게 다가와 더 쉽게 무너지게 된다.
그렇게 자란 사람에게 삶은 누릴 대상이 아니라 관리해야 할 문제가 된다. 살아가는 기쁨보다 살아내야 할 의무를 먼저 배운다. 그래서 성인이 되어서도 삶에 깊이 붙지 못한다. 무언가를 이뤄도 기쁨이 오래가지 않고, 꿈을 가져도 끝까지 붙들 힘이 없다. 삶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삶과 정서적으로 연결된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삶은 늘 멀리 있고, 나는 그 주변을 맴도는 사람처럼 느껴진다.
반대로 삶에 애착이 강한 사람들은 다른 기억을 가지고 있다. 부모가 완벽해서가 아니다. 적어도 한 번쯤은 삶을 살아보려는 어른의 등을 보았기 때문이다. 힘들어도 일상을 포기하지 않는 모습, 문제 앞에서도 삶을 미루지 않는 태도, 기쁨을 죄책감 없이 누리는 얼굴. 그런 장면들이 아이에게는 이렇게 남는다. 살아도 되는구나, 살아보는 게 나쁜 일이 아니구나. 그래서 그들은 삶을 붙잡는다. 하루를 붙잡고, 사람을 붙잡고, 미래를 붙잡는다. 삶에 애착이 있다는 건 특별히 긍정적인 성격을 타고났다는 뜻이 아니다. 삶을 좋아해도 된다는 허락을 받은 기억이 있다는 뜻에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