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건강한 아이 vs 마음이 건강한 아이

by 랭크작가

엄마는 나에게 항상 건강을 강조하고, 건강한 음식을 먹이려고 했다. 계절마다 옷은 맞춰 입었고, 어른들이 보기엔 참 잘 키운 아이였다. 어디 하나 부족해 보이지 않았고, 문제 될 만한 구석도 없었다. 그래서 아무도 묻지 않았다. 이 아이의 마음은 어디에 머물러 있는지.


하지만 나는 마음이 건강하지 않은 아이로 자랐다. 울고 싶을 때 울 수 없었고, 속상해도 이유를 설명해야 했다. 기분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아니라 다듬어야 할 것이었고, 감정은 표현하기보다 관리해야 할 대상이었다. 괜찮지 않아도 괜찮은 척하는 법을 먼저 배웠고, 내 마음보다 엄마의 기준을 먼저 살피는 아이가 되었다.


엄마는 나를 사랑했을 것이다. 다만 그 사랑은 돌봄이라기보다 관리에 가까웠다. 아프지 않게, 삐뚤어지지 않게, 남들 보기 좋은 아이로 키우는 것. 그 안에서 내 감정은 자주 생략되었다. 슬픔은 예민함으로, 두려움은 쓸데없는 걱정으로, 서운함은 철없는 투정으로 바뀌었다. 그렇게 나는 감정을 느끼는 아이가 아니라, 감정을 접어두는 아이가 되었다.


그래서 사랑은 내게 늘 어려운 감정이 되었다. 사랑은 편안히 안기는 것이 아니라, 긴장 속에서 유지해야 하는 것이었다. 잘해야 받을 수 있고, 실수하면 멀어질 수 있는 것. 있는 그대로의 나로 머물러도 괜찮다는 느낌은 좀처럼 오지 않았다. 누군가 곁에 있어도 마음 한편은 늘 혼자였다.


몸은 튼튼했지만 마음은 자주 흔들렸다. 나는 건강했지만 안심하지 못했고, 돌봄 속에 있었지만 보호받는 느낌은 알지 못했다. 그래서 어른이 된 지금도 누군가 나를 좋아해 주면 어딘가 불안하고, 가까워질수록 마음이 먼저 움츠러든다. 사랑은 쉬는 자리가 아니라, 조심해야 할 공간이 되어버렸다.


이제야 나는 안다. 엄마의 양육이 나를 망가뜨린 것은 아니지만, 내가 사랑을 온전히 느끼는 데에는 많은 틈을 남겼다는 것을. 아이는 몸만으로 자라지 않는다. 마음이 머물 수 있는 공간, 감정이 틀리지 않았다고 말해주는 눈빛, 이유를 묻지 않고 안아주는 순간 속에서 비로소 사랑을 배운다.


나는 이제 늦게 배운다. 관리가 아닌 돌봄이 무엇인지, 조건 없는 사랑이 어떤 감각인지. 아직 서툴고 느리지만, 처음으로 내 마음을 들여다보며 배운다. 이제는 누군가의 기준이 아니라, 내 마음이 먼저 안심하는 쪽으로. 이 배움이야말로 내가 지금 다시 자라고 있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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