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악스러운 우리 엄마를 보면서 나보다 낫다고 인정하게 되는 지점이 딱 하나 있다. 누가 봐도 돈 없고 우울한 상황인데도 엄마는 꿋꿋이 운동을 한다. 돈을 쓴다. 식재료를 사고 한 끼를 대충 때우지 않는다. 고봉밥에 나물 몇 가지를 해서 먹는다. 건강식에 관심이 많고 몸을 챙기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
그 모습이 항상 좋아 보였던 건 아니다. 때로는 현실을 외면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저렇게 밥을 차려 먹을 정신이 있나 싶었고 바보 같고 돈도 못벌면서 어리석어 보일 때도 많았다. 저 상황에서 밥이 넘어가냐는 말이 목 끝까지 올라온 적도 있다. 삶이 이렇게 팍팍한데 운동을 하고 장을 보고 건강을 이야기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다.
나는 그런 엄마를 보며 마음속으로 판단했다. 저건 회피라고 생각했다. 상황을 직면하지 않고 자기 방식으로 덮어두는 거라고 여겼다. 그래서 나는 더 냉정해지려고 했다. 우울하면 우울한 상태를 그대로 인정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쪽이 더 솔직하다고 믿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내가 어떤 방식으로 우울해지는 사람인지 분명해졌다. 나는 우울해지면 무기력해진다. 정말 아무것도 안 한다. 움직이지 않고 먹지 않고 내 몸에 좋은 기운을 하나도 넣어주지 못한다. 머릿속에서는 생각만 계속 돌고 몸은 완전히 방치된다. 스스로를 돌보지 못한 채 가라앉는다.
그 지점에서 엄마와 내가 갈린다. 엄마는 우울해도 몸을 놓지 않는다. 돈이 없어도 운동을 하고 장을 보고 한 끼를 챙긴다. 그게 때로는 무모해 보이고 상황을 모르는 사람처럼 보일 수 있지만 적어도 자기 몸을 버리지는 않는다. 반면 나는 우울해질수록 몸을 가장 먼저 포기한다.
바보 같아 보여도 엄마 같은 방식이 더 나은 선택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현실을 직시하지 않는 것처럼 보여도 계속 살아 있는 쪽에 가까운 태도라는 생각이 든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가라앉는 것보다는 의미 없어 보여도 몸에 밥을 넣고 움직이는 쪽이 낫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