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는 존중욕구가 높은 사람이 되었을까

by 랭크작가

나는 한동안 내가 유난한 사람(hsp같은)이라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들은 그냥 넘기는 표정 하나, 답장 하나에 왜 이렇게 마음이 크게 요동치는지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어린이집 선생의 미묘한 표정,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몇 초, 카톡을 보냈는데 바로 오지 않는 답장 같은 사소한 장면들이 내 하루의 기분을 망가뜨릴 때마다, 차라리 둔감했으면 좋았을 텐데라는 생각을 수없이 했다. 존중 같은 걸 이렇게까지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이었으면 훨씬 편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곰곰이 돌아보면, 존중은 내게 있으면 좋은 옵션 같은 것이 아니었다. 존중은 관계 안에서 숨을 쉴 수 있게 해주는 최소 조건이었고, 내가 이 자리에 있어도 되는 사람이라는 확인이었다. 존중이 느껴지지 않는 순간, 관계는 곧바로 불안해졌고 마음은 자동으로 경계 태세에 들어갔다. 그래서 나는 아주 일찍부터 사람의 표정, 말투, 반응 속도 같은 정서적 신호를 빠르게 읽는 사람이 되었다. 이건 예민함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 몸이 배운 방식이었다.


존중받지 못한 경험은 사람을 둔하게 만들지 않는다. 오히려 더 예민하게 만든다. 무례함은 예고 없이 찾아왔고, 서운함을 말해도 상황이 좋아진 경험은 많지 않았다. 참는 것이 안전했고, 미리 알아차리는 것이 상처를 줄이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렇게 나는 점점 더 빨리 감지하는 사람이 되었고, 동시에 더 쉽게 분노하는 사람이 되었다. 분노는 성격이 아니라, 오래 눌러온 서운함이 더 이상 갈 곳을 찾지 못했을 때 튀어나온 결과였다.


존중욕구가 높다는 것은 남들보다 더 대접받고 싶다는 뜻이 아니다. 아무렇게나 다뤄지지 않고 싶다는 마음에 가깝다. 관계 안에서 최소한의 성의와 진정성을 기대하는 것, 나를 투명인간처럼 여기지 않기를 바라는 감정이다. 다만 이제는 이 욕구가 분노로만 나오지 않도록, 말로 다룰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존중을 갈구하는 사람이 아니라, 존중을 분명하게 요구할 줄 아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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