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을 위한 걱정, 불안에 중독된 사람들

by 랭크작가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큰 불행도 없고, 당장 무너질 이유도 없는데 왜 이렇게 쓸데없는 걱정을 계속 만들어내는 걸까. 가만히 앉아 있으면 불안해지고, 불안을 붙잡고 있으면 그나마 내가 뭔가 열심히 살고 있는 사람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걱정을 핑계 삼아 현실에 몸을 던지지 않는, 교묘한 자위 아닐까. 이 생각은 절반만 맞다. 정말 절반만.


걱정을 위한 걱정은 쾌락도 아니고, 게으름을 미화한 것도 아니다. 그건 “아무도 내 감정을 같이 처리해주지 않으니, 차라리 불안 상태라도 유지해서 나를 붙잡아두려는 시도”에 가깝다. 불안은 괴롭지만 동시에 나를 깨어 있게 만든다. 불안해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내가 아직 살아 있고 상황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증거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가만히 있으면 감정이 더 무서웠던 사람에게, 불안은 마지막 안전장치였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은 종종 욱하거나 과잉사고로 흐른다. 이 두 가지는 공통점이 있다. 즉각적으로 에너지가 생긴다는 점이다. 분노는 나를 단번에 선명하게 만들고, 과잉사고는 내가 무언가를 분석하고 대비하고 있다는 착각을 준다. 이 상태에서는 적어도 텅 빈 느낌은 사라진다. 문제는 이것이 삶의 의욕이 없는 상태라서가 아니라, 안전하게 쉬는 감정 상태를 한 번도 배워본 적이 없어서 생긴 현상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해결책은 “걱정하지 말자”가 아니다. 불안을 끊어내는 것도 답이 아니다. 오히려 해야 할 일은 불안 말고도 나를 붙잡아줄 수 있는 감정 상태를 새로 만드는 것이다. 첫 번째는 감정을 즉시 처리하려 들지 않는 연습이다. 불안하거나 화가 날 때, 해결책을 찾으려 애쓰기 전에 “지금 나는 불안하다”라는 문장을 입 밖으로 내보내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생각이 아니라 감정부터 언어로 꺼내는 훈련이다.


두 번째는 감정을 혼자만의 사건으로 두지 않는 것이다. 꼭 거창한 상담이 아니어도 된다. 단 한 사람이라도, 감정을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안전한 대상이 필요하다. 조언을 해주지 않아도 되고, 해결을 제시하지 않아도 된다. 그저 “그럴 수 있겠다”라는 반응을 몇 번 경험하는 것만으로도 신경계는 다른 선택지를 배우기 시작한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건, 불안을 없애야 할 적으로 보지 않는 태도다. 불안은 나를 망치기 위해 온 게 아니라, 나를 지키기 위해 가장 익숙한 방식으로 나타난 신호다. 이 불안이 필요 없을 정도로 안전한 상태를 조금씩 늘려가는 게 목표지, 불안을 부정하거나 조롱하는 게 목표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