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박 겉핥기로 살아도 괜찮을까

by 랭크작가

나는 늘 깊이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 같다고 느낄 때가 있다. 회사 일도, 투자 공부도, 무엇이든 어느 정도까지만 알고 멈춘다. 전문가처럼 파고드는 사람들을 보면 괜히 마음이 작아진다. 저렇게 몰입해야 제대로 사는 건 아닐까 싶어서.


세상은 유독 ‘깊이’를 미덕처럼 말한다. 한 분야를 끝까지 파고든 사람, 모든 것을 꿰뚫고 있는 사람, 확신에 찬 선택을 하는 사람이 더 성실하고 더 진지하게 살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그 앞에서 수박 겉핥기만 하는 삶은 어딘가 성의 없어 보이고, 운에 기대는 태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가끔은 이런 생각도 든다. 정말 모든 사람이 깊게 살아야만 제대로 사는 걸까.

세상에는 깊게 파는 사람만큼 넓게 건너가는 사람도 필요하다. 하나를 끝까지 붙드는 대신 여러 흐름을 가볍게 건드리며 살아가는 방식도 있다. 깊이는 안정감을 주지만, 넓이는 유연함을 만든다. 방향을 빠르게 바꿀 수 있고, 한 번의 실패에 인생 전체가 무너지지 않는다.


우리는 종종 몰입하지 못하는 자신을 게으름이라고 오해한다. 하지만 사실은 아직 ‘끝까지 붙잡고 싶은 것’을 만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사람은 중요하다고 느끼는 것 앞에서는 생각보다 쉽게 깊어진다.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연결의 문제일 때가 많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각보다 깊게 살지 않는다. 다만 깊어 보이려고 말할 뿐이다. 누구나 어느 정도는 감으로 결정하고, 운도 섞이고, 확신 없는 상태로 선택하며 살아간다. 삶은 원래 완벽한 분석보다 불완전한 시도로 굴러간다.


수박 겉핥기처럼 보이는 시간들도 사실은 헛된 게 아니다. 여러 번 얕게 스치며 쌓인 감각은 어느 순간 예상치 못한 곳에서 연결된다. 깊이 파지 않았는데도 이상하게 감이 생기는 순간들이 있다. 그것도 하나의 축적이다.

어쩌면 중요한 건 깊이의 정도가 아니라, 계속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인지 모른다. 완벽히 알지 못해도 움직이고, 확신이 없어도 선택하고, 준비되지 않은 채로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는 것. 대부분의 삶은 그렇게 이어진다.


그러니 너무 자책하지 않아도 된다. 지금의 방식이 틀린 삶이라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아직 깊어지지 않았을 뿐일 수도 있고, 애초에 당신은 넓게 살아가는 사람일 수도 있다.


모든 사람이 전문가처럼 살아야 하는 건 아니다. 어떤 사람은 끝까지 파고들며 길을 만들고, 어떤 사람은 여러 길을 지나며 방향을 알아간다.


수박을 겉만 핥고 있는 것 같아도 괜찮다.
아직 어디를 베어 물지 결정하지 않았을 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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