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물딱진 사람을 보면 외로워진다

by 랭크작가

주변에서 일도 잘하고 육아도 야무지게 해내는 사람을 보면 이상하게 마음이 조용히 흔들린다. 처음에는 그냥 감탄이다. “와, 진짜 대단하다.” 그런데 그 감탄은 오래 가지 않는다. 어느 순간 비교가 시작되고, 비교는 곧 외로움으로 바뀐다. 같은 하루를 살았는데 누군가는 단단하게 살아가는 것 같고 나는 계속 허덕이는 느낌이 들 때, 세상에 나만 뒤처진 사람처럼 느껴진다.


이 감정은 질투와는 조금 다르다. 미워서가 아니라, 오히려 좋아 보이고 닮고 싶어서 더 아프다. 그래서 더 헷갈린다. 지금 내가 느끼는 이 감정이 내 안의 결핍이 따라 하고 싶은 신호인지, 아니면 나 자신을 몰아붙이는 자책인지 구분이 잘 되지 않는다.


가만히 보면 두 감정은 아주 비슷하게 생겼지만 방향이 다르다. 결핍에서 오는 ‘따라 하고 싶음’은 약간의 설렘이 섞여 있다. 저렇게 살면 나도 조금 안정될 것 같고, 나도 저런 하루를 만들 수 있을 것 같다는 가능성의 감정이다. 반면 자책은 몸을 작게 만든다. 나는 왜 이것도 못 하지, 나는 왜 늘 부족하지 같은 문장이 마음속에서 반복된다. 같은 비교인데 하나는 앞으로 끌고 가고, 다른 하나는 제자리에 묶어 둔다.


문제는 우리는 대부분 이 둘을 구분하지 못한 채 스스로를 공격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사실은 ‘저 모습이 부럽다’는 단순한 욕구일 뿐인데, 그것을 곧바로 ‘나는 부족하다’는 결론으로 번역해버린다. 비교의 순간에 내 마음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듣기도 전에 판결부터 내려버리는 셈이다.


우리는 결과만 본다. 정리된 집, 안정적인 태도, 아이와 여유 있게 웃는 모습. 하지만 그 사람의 체력, 기질, 환경, 도움받는 정도, 보이지 않는 시행착오는 보지 못한다. 비교는 언제나 상대의 완성된 장면과 나의 과정 한가운데를 붙여놓는다. 당연히 마음이 무너질 수밖에 없다.


어쩌면 그 외로움은 실패의 감정이 아니라 ‘나도 잘 살아보고 싶다’는 마음이 깨어나는 순간일지도 모른다. 잘하고 싶은 사람만 비교에 아프다. 아무 기대가 없다면 애초에 흔들리지 않는다. 그래서 그 감정이 올라올 때마다 이렇게 물어보려고 한다. 나는 지금 나를 비난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내가 진짜 원하는 삶의 힌트를 발견한 걸까.


신기하게도 질문을 바꾸면 감정의 온도도 달라진다. 자책은 나를 고립시키지만, 욕구를 알아차리는 순간 비교는 방향이 된다. 저 사람처럼 완벽해져야 한다는 압박이 아니라, 나는 어떤 방식으로 안정감을 만들고 싶은지 고민하게 된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속도로 살아간다. 어떤 사람은 많은 일을 동시에 해내며 균형을 잡고, 어떤 사람은 한 가지를 붙잡고 깊이 버텨내며 균형을 만든다. 겉으로 보이는 ‘야무짐’이 삶의 정답은 아닐지도 모른다. 다만 그 모습을 보며 마음이 흔들렸다는 사실 자체가, 내 안에도 아직 살아보고 싶은 방향이 있다는 증거일 뿐이다.


그래서 이제는 외로움이 올라오는 순간을 조금 다르게 받아들이고 싶다. 비교가 시작된 날은 내가 부족한 날이 아니라, 내 마음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려주는 날일지도 모른다고. 어쩌면 우리는 누군가를 따라가고 싶은 게 아니라, 아직 충분히 돌보지 못한 나 자신에게 가까워지고 싶은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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