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은 왜 분노와 욱함으로 변하는가

by 랭크작가

외로움은 대개 조용히 시작된다. 누구도 크게 상처 주지 않았는데 이상하게 서운하고, 괜히 예민해지고, 사소한 말에도 마음이 울컥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 분노로 튀어 오른다. 나는 왜 이렇게 욱하는 사람이 되었을까 생각해보면, 그 밑바닥에는 대개 외로움이 깔려 있다.


나는 에너지가 많은 사람이 아니다. 돈 벌고 기본적인 육아를 하는 것만으로도 하루가 빠듯하다. 그런데 욕심은 많다. 요리도 잘하고 싶고, 집도 깨끗했으면 좋겠고, 사회적으로도 잘나 보이고 싶다. 회사 사람들과도 잘 지내고 싶고, 친구들과의 연결도 놓치고 싶지 않다. 다이어트, 투자 공부, 독서, 신앙생활까지 전부 놓치면 안 될 것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매일같이 생각이 돈다. 오늘은 뭘 먹어야 하지, 재료는 뭘 사야 하지, 운동은 언제 하지, 연락은 해야 하나, 공부는 밀리고 있지 않나. 몸은 지쳐 있는데 머릿속은 쉬지 않는다.


이 상태가 오래 지속되면 마음은 고립된다. 누구도 나에게 이렇게까지 하라고 강요하지 않았지만, 나는 혼자서 모든 층을 동시에 붙들고 있다. 생존을 유지하는 일만으로도 벅찬데, 인정받고 싶고, 잘해내고 싶고, 뒤처지고 싶지 않은 마음까지 얹어둔다. 에너지는 한정되어 있는데 욕망은 분산되어 있으니, 매일 스스로에게 미달인 느낌이 든다. 그 감각은 조용한 외로움으로 쌓인다. 아무도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외로움이 아니라, 나 자신도 나를 감당하지 못하는 외로움이다.


외로움은 오래 머물 곳을 찾지 못하면 방향을 바꾼다. 그때 나타나는 것이 분노다. 아이가 투정할 때, 배우자가 무심한 말을 할 때, 회사에서 사소한 지적을 받을 때 갑자기 욱한다. 실제로 화가 난 이유는 그 사건이 아니다. 이미 바닥까지 내려간 에너지 위에 또 하나의 요구가 얹힌 순간, 버티고 있던 균형이 무너진 것이다. 나는 이미 한계인데, 아무도 그 한계를 모른 채 더 얹는 것 같을 때 사람은 분노로 반응한다. 사실은 “나 좀 봐줘”라는 외로움의 다른 얼굴인데, 겉으로는 공격처럼 보인다.


특히 모든 면을 잘해내고 싶어 하는 사람일수록 그렇다. 돈, 육아, 건강, 집안, 관계, 자기계발까지 한 번에 붙들고 있으면 마음은 늘 긴장 상태다. 선택을 줄이지 못한 채 가능성을 계속 열어두고 있으면, 뇌는 쉬지 않고 계산을 돌린다. 이 과부하 속에서 누군가가 작은 요구라도 던지면 그것이 마지막 한 방울이 된다. 그래서 욱한다. 그 순간만큼은 더 이상 참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외로움이 분노로 바뀌지 않으려면, 감정을 다스리기 전에 구조를 바꿔야 한다. 모든 걸 동시에 잘하려는 마음을 내려놓는 것, 적어도 한 시즌에는 한 가지만 붙드는 것, 지금의 체력과 에너지를 인정하는 것. 욕심이 많아서 문제가 아니라, 한정된 에너지 위에 너무 많은 기대를 얹어둔 것이 문제일 수 있다. 선택을 줄이면 계산도 줄어든다. 계산이 줄어들면 마음의 여유가 생긴다. 여유가 생기면 외로움은 분노로 튀어 오르지 않는다.


어쩌면 내가 화를 잘 내는 사람이 된 것이 아니라, 혼자서 너무 많은 것을 떠안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외로움은 약함이 아니라 신호다. 지금 나에게는 더 많은 성취가 아니라, 덜 쥐고 있어도 괜찮다는 허락이 필요하다는 신호. 그 신호를 무시할수록 마음은 소리를 지른다. 그리고 우리는 그 소리를 분노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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