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들이여,
발칙한 연애편지를 써봅시다

연애편지, 그 감정의 충만함


여러분은 연애편지를 써 본 때가 언제인지, 혹 떠오르십니까? 대개 10대 혹 군복무 기간인 20대 때가 남자들이 왕성한 연애 감정을 발산하는 시기일 듯합니다. 작은 사물의 변화에도 마음이 울컥할 때가 있고, 스치는 바람에도 아련한 추억에 젖게 되는. 남성들은 이러한 감정 즉, 사람에 대한 애정과 친밀함이 함축된 감정인 ‘사랑’을 통해 사람들은 자신을 돌아보고 타인을 이해하는 방법을 배우게 됩니다. 여기에서 얼마 전 우연히 엿보게 된 두 남자의 연애편지의 구절들 일부를 잠시 소개해 봅니다.


나는 진정 네가 좋다. 웬일인지 모르겠다.
네 작은 입이 좋고 목덜미가 좋고 볼따구니도 좋다.


정희야, 나는 네 앞에서 결코 현명한 벗은 못됐었다. 그러나 우리는 즐거웠었다. 내 이제 너와 더불어 즐거웠던 순간을 무덤 속에 가도 잊을 순 없다. 하지만 너는 나처럼 어리석진 않았다. 물론 이러한 너를 나는 나무라지도 미워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이제 네가 따르려는 것 앞에서 네가 복되고 밝기 거울 같기를 빌지도 모른다.


정희야, 나는 이제 너를 떠나는 슬픔을, 너를 잊을 수 없어 얼마든지 참으려고 한다. 하지만 정희야. 이건 언제라도 좋다. 네가 백발일 때도 좋고 내일이래도 좋다. 만일 네 마음이 흐리고 어리석은 마음이 아니라 네 별보다도 더 또렷하고 하늘보다도 더 높은 네 아름다운 마음이 행여 날 찾거들 혹시 그러한 날이 오거든 너는 부디 내게로 와다오.


위의 글은 1930년대를 풍미했던, 시인이자 소설가였던 이상이 당대 여류 작가였던 최정희에게 쓴 연애편지의 일부입니다. <날개>, <오감도>와 같은 작품을 남기고 기생 금홍과의 애절한 연애 사건으로도 잘 알려진 작가 이상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이상이 최정희에게 사랑을 고백하던 당시 최정희는 이혼 후 언론사에서 활동을 하고 있었는데요, 수려한 외모와 지성미 넘치는 언변을 지닌 신여성으로 당대 문인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고 합니다. 그녀에게 온통 마음이 빼앗긴 이는 이상만이 아니었습니다. 조각같은 얼굴을 지닌 당대 인기 시인 백석도 최정희를 사모하는 편지를 보냈었습니다.


당신은 당신께서 더욱이-애욕의 순수란 것에 실망하신 일이 있을 것입니다. 반발하는 시기와 증오의 정신을 가장 강력한 한편으로 생각하신 일이 있을 것입니다. 한 정신과 한 정신이 부합하고 반발하는 일이 지극히 귀하고 높고 큰 일이나 또 지극히 천하고 얕고 적은 일인 줄을 아실 것입니다.(중략) 사람을 사랑하다가 사랑하게 되지 못하는 때 하나는 동무가 되고 하나는 원수가 되는 밖에 더 없다고 하나 이 둘은 모두 다 그대로 사랑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는 관대한 탓이고 하나는 순수하고 정직한 까닭입니다. 그러나 그밖에 정말로 사랑하게 되지 못하는 경우를 피탈에서 전가에서 허위에서 볼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시인 백석은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라는 시로 잘 알려진 미남 작가인데요, 최정희를 향한 연애 편지 속에는 앞선 이상과는 달리, 다소 원망어린 어조와 상처받은 마음의 토로 등이 느껴집니다. 물론 최정희와의 사랑에서는 두 사람 모두 실패를 경험합니다. 그럼에도 저는 이상과 백석이 지닌 사람을 향한 따뜻하고 열정적인 그 ‘마음’에 귀 기울여보고 싶었기에 두 장의 연애편지를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먹고 살기도 바쁜 이 세상에 그깟 사랑이 뭐길래, 라고 하신다면 할 말이 없습니다. 하지만 점차 우리가 사는 이 곳이 먹고 살기에만 바쁜 세상이 되어가는 것은 아닌지 하는 안타까운 심경이기도 합니다. 특히 우리 남편들, 아이들의 아빠이신 여러분께서는 먹고 사는 문제에서 조금 벗어나 언제쯤 자신의 ‘마음’에 귀 기울여 보셨는지요? 뜨거운 사랑은 아니더라도 미지근한 가슴 떨림이라도 느껴보신 적은 혹 언제이신지요?


bandicam 2019-10-15 21-15-00-546.jpg (사진출처: pixabay.com)


공적 관계가 익숙한, 사적 관계가 불편한 남성들


남성들은 여성들과는 다른 사회성에 주로 노출되어 있고 익숙해 있다는 연구가 있습니다. <소모되는 남자>(로이 F.바우마이스터)에서는 두 가지 종류의 사회성에 대해 설명합니다. 사회성의 한 영역은 가깝고 친밀한 상호작용을 말합니다. 여기에서 대표적인 관계는 두 사람으로 이루어진 일대일 상호관계입니다. 반면 다른 영역은 친밀함은 덜하지만 더 많은 사람들을 포함합니다. 이 영역을 대표하는 관계는 집단으로 이루어지는데, 세 사람부터 수백만 명에 이르기까지 다양합니다. 이중 남성들은 대부분 일대일 상호작용보다는 큰 규모의 집단적 사회성을 지향하고 이것에 익숙해져 있다고 합니다. 다양하지만 좀 더 약한 유대관계를 형성하는 방식입니다.


언어를 표현하는 데 있어서도 남성들은 명료하고 단호한 언어를 빈번하게 사용한다고 합니다. 레스토랑에서 여성은 “물 좀 가져다줄 수 있을까요? 제가 갈증이 나서요. 감사합니다.”라고 말한다면 남성은, “여기 물 좀 갖다주세요.”하면 충분하다고 여긴다는 것이지요. 여성들이 상냥한 요청식 간접화법을 구사한다면 남성들은 단호하고 직접적인 화법을 구사하는 것이지요. 스스로를 바라보는 방식에서도 여성들이 ‘관계적 측면’에 중점을 두는 반면 남성들은 좀 더 ‘독립적인 개체’로 여기며 ‘남과 구별되는 특성’을 강조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공적 관계 속에 오래 머물게 되면 자연스럽게 강하고 긴밀한 사회적 유대를 구축하는데 취약해지게 됩니다. 풍부한 감정을 표현하거나 자신의 나약함, 두려움 등을 표현하는 것을 꺼리게 되고 터부시하게 되는 것이지요. 왜냐하면 큰 집단 속에서의 사소한 감정표현은 호시탐탐 자신의 약점을 노리는 경쟁자들에게서 자신을 보호할 수 없기 때문이지요. 감정 표현에 소극적이 되거나 감정을 숨기는 것이 유리할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다보니 중년이 넘어서서, 가정 내에서 관계성을 회복하는데 다소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이미 여성들이 상대를 보살피고 필요에 세심하게 반응하는 관계성에 충분히 익숙해져 있을 때 중년 남성들은 새로이 그 관계성을 체득해야 하는 경우가 생기는 것입니다.


bandicam 2019-10-15 21-25-06-156.jpg (사진출처: pixabay.com)


연애편지가 제시해주는 관계 회복의 비법


좋은 관계 맺기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상대방의 마음을 읽어주며 온전한 소통을 나누는 것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남성들이 자신의 틀 안에 스스로를 감추고 사적 감정을 내보이는데 불편해하는 것은, 정신적인 건강에 적신호가 울리는 상황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이를 반영하듯, 매년 남성 우울증의 증가와 소통 부재를 나타내는 지표들이 다양한 매체를 통해 보여집니다.


저는, 고립된 자아를 긍정적이고 발전적인 방향으로 전환시켜주는 방법으로 ‘연애편지 써보기’를 제안합니다. 물론 남성들도 글쓰기 주로, 사회가 요구하는 글쓰기 – 취업을 위한 자기소개서, 보고서, 발표문, 기획서 등 –에는 자주 노출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내면을 보여주는 글쓰기에는 접근하기 어려워합니다. 그러하기에 중년 남성의 글쓰기는 대개 공적 글쓰기에 길들여져 있고 맞춰져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공적 글쓰기가 아닌, 사적 글쓰기는 자신을 돌아보고 원활한 감정 표현을 할 수 있는 능력과 만족감, 자신감을 심어줍니다. 그 사적 글쓰기의 최적화 된 글의 형식이 바로 ‘연애편지’입니다. 연애편지 쓰는 동안 우리는 특히 억눌려져 있던 감정들이 의식 표면 위로 끌어올려지는 체험을 하게 됩니다. 글쓰는 사람의 심리적 방어벽이 무너지면서 놀라운 자기 표현을 하는 단계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잃어버렸던 감정을 돌이키고 친밀한 관계를 회복하는 데까지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0UnN653Z7l62GjmbWhHUn6I8Wqs.jpg (요하네스 페르메이르, <연애편지>, 17세기)


이중섭의 연애 편지는, 제가 본 중년 남성의 연애편지 중 단연 최고봉입니다.


나의 살뜰한 사람. 나 혼자만의 기차게 어여쁜 남덕군. 이상하리만큼 당신은 나의 모든 점에 들어맞는 훌륭한 미와 진을 간직한 천사요.
당신의 모든 좋은 점이 나의 모든 것에 깊이 스며들어
내가 얼마나 생생하게 사는 보람을 강하게 느꼈는지 모르오.


내 귀여운 당신의 볼에 있는 크고 고운 사마귀를 생각하고 있소.
그 사마귀에 오래 키스하고 싶소.


다음에 만나면 당신에게 답례로 별들이 눈을 감고 숨을 죽일 때까지 깊고 긴긴 키스를 몇 번이고 해드리지요. 지금 나는 당신을 얼마만큼 정신없이 사랑하고 있는가요. 나의 귀엽고도 너무나도 귀여운 선생님, 제발 가르쳐 주시오.


살뜰하고 애틋한 문장 속에는 한 여자를 열심히 사랑한 한 남편의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때로는 눈물나도록 애절하기도 때로는 가슴 뜨겁고 절절하기도 한 그의 연애편지를 보자면 정말 ‘사랑하고 살아가는 삶’이 어떤 것인지 온 몸으로 깨닫게 됩니다. 진정 깊고 충만한 사랑을 하며 삶을 치열하게 살아간 중년 남성의 멋진 모습이지 않을런지요.




아빠들이여! 다시금 ‘발칙한’ 연애편지를 쓰면서, 자신의 돌아보고 내면의 다양한 감정의 스펙트럼을 표현하는 데 스스럼이 없게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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