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가을, 아빠에게 필요한 건
'묻지마 여행'이었다

남성과 여행의 상관관계

바야흐로 가을 내음이 물씬 스며드는 요즘입니다.


아빠들은 문득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힌다고 합니다. 가을은 남자의 계절이라고 했던가요. 저희 집에 기거하는 중년의 한 남자도 매주 어딘가로 떠날 마음의 준비를 한답니다.

“이번 주말엔 꼭 떠날거야. 어디로든. 나 말리지 마!”

저는 물론 적극적으로 지지해줍니다.

“꼭 다녀와야해요~! 이왕이면 2박 3일도 좋구. 암튼 바람 쏘이러 어디로든 다녀오세요~”


혹 누군가는 남편이 부재한 주말의 편안함과 자유로움 때문에 일부러라도 떠나보낸다,라고 여길 수도 있겠네요. 하지만 그것보다는 매년 가을 바람 따라 어디론가 훌쩍 떠났다가 와야만 다시금 평안한 겨울을 맞이할 수 있는, 남편의 오랜 습관을 알기에.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한 저의 진심어린 조언입니다.


모든 남성들의 로망이겠지요. 어디론가 자유롭게 훌쩍 떠나는 일상. 직장 다니는 남성들이라면 한번쯤은 꿈꿔본다고 합니다. 출근길에 갑자기 핸들을 돌려서 저 땅끝마을로, 부산 해운대로 떠나버리는 그 어떤 날을요.

하지만, 가슴 아프게도 여유롭고 편안하며 자유를 만끽할 수 있는, 그림 같은 여행을 한 번 떠나기란 만만치 않습니다. 매주마다 신기하게도 해야만 하는 ‘일’들이 팝콘처럼 튀어오르기 때문이지요. 밀린 약속은 왜 그리 많으며 가야만 하는 경조사는 또 어떻구요. 하루라도 좀 쉴라치면 집안에서 아내는 또 잔소리와 함께 밀린 집안 일들을 한껏 안겨줍니다. 20대 때는 무얼해도 잘 가지않던 시간이 중년이 되니 쏜살같이 지나가는 듯합니다.




로랑 그라프라는 작가가 쓴 <매일 떠나는 남자>(Voyage, voyages)라는 소설에는

이같은 우리 아빠들의 모습처럼, 매일 어디론가 떠나는 꿈을 꾸는 한 남성이 등장합니다. 프랑스에서 가장 우울한 도시 캉의 한 원룸에 살고 있는 ‘파트릭’이 그 주인공이지요. 그는 카지노에서 일하면서 언젠가는 꼭 결정적으로 떠날 그 날을 고대합니다. 그렇다고 구체적인 계획은 아직 없습니다. 그럼에도 미래에 누릴 그 여행을 위해 신중하고 치밀하게 매일 준비를 하지요. 매장에서 하루를 꼬박 서성거리다가 구입한 여행가방에서부터 세계 각지의 여행 안내서, 세계 어느 곳을 여행해도 안전할 수 있도록 온갖 예방주사를 맞구요, 다목적 칼과 같은 다양한 여행 용품뿐만 아니라 떠날 때 제출할 사직서까지,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늘 어디론가 떠날 그 날을 고대하며 살기 때문일까요? 파트릭은 지금 머물고 있는 ‘원룸’이 자신이 정착할 집이 아니라고 여깁니다. 그래서 집안의 가구는 물론 액자를 걸기 위한 못자국 하나 없습니다. 방 한 구석에서 매트리스를 펴고 잠을 자고, 음식은 패스트푸드를 ‘기내식’처럼 일회용 접시에 담아 즐겨 먹어 주방을 쓸 일도 거의 없습니다. 따라서 파트릭의 집은 언제나 새 집처럼 깨끗합니다.


“나는 행동하는 인간이 아니다. 그건 확실하다. 하지만 그래도, 나는 항상 임시로 살면서, 언제라도 떠날 준비가 되어 있다. 메트리스만 바닥에 놓고 잔다거나 플라스틱 수저를 쓰는 것으로 볼 때 한 곳에 정착하지 않고 사는 일종의 모험가라고 자처한다. 이런 형태의 삶의 방식 때문에 모든 것이 가능하다. 아무 것도 나를 붙잡지 않는다는 짜릿한 상상을 할 수 있다.”


어디로든 떠날 준비를 매일 하지만, 어디로도 떠날 수 없는 그. 결국 그는 아무 곳에도 가지 않는 아니, 못하는 삶 속에서 또다른 매일을 살아가고 맙니다.

파트릭의 모습 속에서 문득 오늘날 아빠들의 모습을 바라봅니다. 중년이 되니, 시간과 경제적 여유가 되어 이제는 그야말로 배낭 하나만 둘러매고 어디로든 갈 수 있을 것 같지만, 막상 일상의 끈은 그를 쉽사리 놓아주지 않습니다. ‘홀로’가 아닌 가족, 직장, 사회라는 공동체에 묶여 누군가의 00으로, 어딘가의 00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남성들을 둘러싼 이러한 연대 혹은 집합체는 일종의 남성이 지닌 ‘그림자’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남자로 산다는 것>의 저자 제임스 홀리스는 이렇듯 구속과 속박에 매어있는 남성들의 삶은 곧 늘 ‘그림자’를 안고 사는 삶이라고 정의내립니다. 한 사람의 남성으로 정의되는 데 필요한 것들 즉, 남성이라는 역할과 기대, 경쟁과 적개심, 자질이나 역량에 대한 평가 등은 모두 남성에게 압박이 된다는 것입니다. 한 예로 남성들은 태어날 때부터 3W에 묶여있다고 합니다. 일work, 전쟁war, 근심worry 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는 남성을 평생 따라다니는 짐이나 부담거리라는 것이지요. 이것을 ‘새턴(Saturn)의 그림자’라고 칭했습니다. 여기에서 새턴은 ‘음울하다’라는 뜻 ‘saturnine’으로 남성 역시 남성의 성역할에 대한 이데올로기의 그림자 아래서 어려움을 겪어왔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여성도 그러하지만, 남성 역시 남성으로 태어났을 뿐인데, 감당해야 할 책임, 경쟁, 적개심 등을 매일 감당해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당연히 느낄 수 있을, 두려움조차도 거부당하기 일쑤입니다. 지금이야 많이 나아졌지만, 예전엔 자신의 감정 표현에 충실한 남성은 비난받거나 조롱거리가 되곤 하였지요. 때로는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고 때로는 자신을 둘러싼 삶의 굴레에서 벗어나 마음껏 자유롭고 싶은 마음. 건강한 남성이 되려면, 그 마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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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남성들은 이 그림자에서 어떻게 탈출할 수 있을까요?


이를 위해서는 남성들이 자신의 ‘그림자’를 스스로 인식하고 ‘의식적으로’ 짊어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여기에서 ‘의식적’이라는 것은 ‘지혜롭게’ 혹은 ‘자의적으로’와 비슷한 말 같습니다. 그래야만 세상의 잘못된 모습이 자기 자신에게도 깃들어 있다는 것을 ‘알며’, 그 그림자를 제대로 ‘다룰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비록 우리 시대의 거대하고도 해결되지 않은 여러 사회문제들을 한 번에 해결할 수는 없지만 미미한 몫이라도 기꺼이 짊어질 수 있게 됩니다. 남성들이 물려받은 ‘허상, 역할 기대’라는 그림자를 인식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의 몫을 기꺼이 해나갈 때, 세상 속에서 보다 자유로운 남성으로 거듭날 수 있게 됩니다.




나약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요.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요. 나약하기에 타인의 약함에 공감할 수 있고, 흔들리기에 나만 옳다는 아집에서 벗어날 수 있을 테지요. 우리 시대의 아빠들을 위해 곁에 누군가가, 잠시 기댈 수 있는 작은 어깨를 내어주고, 떠나고 싶으면 언제든 떠나라고 등 토닥여준다면, 이 가을이 더 이상 스산하지도 외롭지만도 않을 것 같습니다.

앞서 이야기한, 매일 떠나고 싶어하지만 못 떠나는 남자 파트릭의 꿈은 사실 소박했습니다. 고단한 현실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나 ‘나다운 나의 모습’으로 하루만이라도 살아보는 것,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털이 숭숭 보이는 다리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세상 편한 반바지를 입고, 멋드러진 카페에 앉아 담배를 피우는 그 시간. 그 어떤 지위나 소속, 편견에서도 모두 벗어나 ‘나’인 채로 행복한 그 시간. 그 시간을 맘껏 누리는 것이 파트릭이 상상했던 ‘여행’의 모든 것이었습니다.


“나는 담배라고는 피우지 않는다. 그렇지만 나는 보카치카나 마르가리타 혹은 타마타브 같은 곳의 카페에서 내가 담배를 피우는 상상을 자주 한다. 반바지를 입고 말이다. 나는 다른 사람이 될 것이다. 이제까지의 내 삶은 기나긴 발아기에 불과했다. 이제 여행을 떠나게 되면 오랜 애벌레 생활을 끝내고 다시 태어난 파트릭을 만천하에 알리게 될 것이다.”



올 가을에는 자유로운 ‘나’를 꼭 만나보시길 바랍니다. 나지막한 동산에서든, 한강 둔치에서든 여유가 된다면 하루 코스로 바다를 보러 떠나셔도 되겠지요. 한편 마음 같지 않아 이 가을 훌쩍 떠날 수 없다면, 파트릭처럼 상상 속 여행이라도 추천해드리고 싶습니다.


“상상력은 실제 경험이라는 청박한 현실보다 훨씬 더 나은 대체물을 제공할 수 있다!”(데제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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