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아빠도 행복하련다
최근의 저출산 현상, 어머니 역할의 과부하, 아버지의 소외 등의 직면한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아버지의 부모 역할 수행이 활성화 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공감을 얻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친구 같은 아버지"가 바람직한 아버지 상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실제로 조사된 한 연구에 따르면 35.8%의 남성들이 “아버지는 아이들의 놀이 친구로서 역할을 해야 한다”고 보고하였다고 합니다. 이러한 아버지 역할에 대한 이해는 자녀와 가족 구성원 전체의 건강한 삶을 위해서도 필요합니다. 또한 아버지 자신의 삶의 만족을 위해서도 중요합니다.
그럼에도 한편 아버지의 심리 특성에 관련 연구들에서는 '양육으로 인한 스트레스', '우울증' 등이, 아버지의 역할에 대한 높아지는 기대와 육아 개입의 부담이 커짐에 따라 발생했다고 합니다. 또 변화하는 아버지 문화로 인해 자녀와 정서적인 접촉을 원하는 아버지들이 많아지지만 반면 아버지로서의 역할 기대와 실제 수행간의 불일치로 죄책감을 느끼는 아버지들이 늘고 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딸 바보가 되어야 하는 한국의 아버지
한 때, 분만실에서 딸을 보면 서운하다는 아빠들이 있었습니다. 아니, '있었다'라기보다 대개가 그랬습니다. 사실 아들 선호 사상이라는 말이 잠잠해진 시기는, 불과 얼마 되지 않습니다. '딸바보'라는 말이 유행어처럼 번질 무렵, '딸'을 좋아하면 좋아했지 굳이 '딸'을 위해 '바보'까지 되어야 하느냐, 등 아빠들의 원성이 자자했었습니다. 바깥 일로도 바쁜 몸인데 아들과 공차고 놀아주는 걸 떠나 이제는 아내보다 어렵다는 딸에게까지 헌신해야 한다니 말입니다. 하루에도 수만번 삐쭉대며 예민하기 그지없는 딸에게 맞춰주느니 차라리 아들과 조기 축구를 다니는 게 낫다는 것입니다. 사실 아빠들 입장에서 보면 엄마인 제가 생각해도, '딸'은 참 어려운 존재입니다. 아내야 연애도 해보고 결혼해서 지지고 볶고 싸움도 해본 뒤라 그래도 이제는 얼추 어느 정도는 맞춰가는 중인데, 딸 게다가 사춘기 딸은 도무지 제3세계에 사는 알쏭달쏭한 여자사람(?) 같기만 합니다. 어제만 해도 애교 만점이더니 오늘은 가까이도 못오게 하며 쌩한 얼굴입니다. 하루의 반나절은 온통 방에 들어가 핸드폰 만지작 거리거나 화장품 바르는 데 다 사용합니다. 같이 맛있는 거 먹으러 나가자고 해도 싫다 하고 좋은 옷 사준다고 해도 "괜찮아요. 요샌 인터넷 쇼핑몰 옷이 더 싸요."라며 철벽을 치는 것은 어떻구요.
그러다 보니 오히려 아빠는 두 가지로 방향을 잡는 것 같습니다. 하나는 아예 시공일관 저자세로 일관하는 것입니다. 소위 '딸바보' 코스프레입니다. 때로 마음이 부글거릴 때도 있지만 그래도 딸과 한 집에서 살아가야만 하고 나중에 효도도 받으려면 지금부터라도 투자한다는 셈 치고 참습니다. 그러다보면 운이 좋으면 일주일에 한두 번은 딸과 기분 좋게 데이트 할 기회도 얻습니다. '아, 나 하나 참으면 집안이 이렇게 편하구나.. 딸바보, 그거 별 거 아니네'라며 위안도 합니다.하지만 그것이 '딸 바보 코스프레'인 것은 아빠가 회사에서 상사에게 몹쓸 큰 소리를 들은 날이나, 영업이 잘 안되어 회사 눈치 보느라 하루를 보낸 날이면 영락 없이 돌변하기 때문입니다. 바로 두 번째 방향인 '엄한 아빠(소위 나는 나 너는 너)' 자세입니다. 아들 대하듯 할 말 다 하고, 엄하게 꾸짖기도 하고,아빠의 권위에 손상이 가는 행동을 한다거나 아빠의 훈계에 반항할라치면 단박에 큰 소리를 치는 것입니다. 마음은 시원합니다. 하지만 한편 딸의 뒤끝이 다소 불편하기는 합니다.
이 두 가지의 모습 사이에서 갈피를 못잡고, 아빠들은 점차 자신들의 사춘기(소위 갱년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태국의 한 광고 - 소리없는 사랑
"(광고 카피) 완벽한 아버지는 없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항상 완벽하게 사랑합니다"
(하지만 아버지도 사람입니다. 결코 사랑에도 '완벽할 수 없습니다.')
중년의 딸들이 추억하는 아버지, 사부곡
애지중지 키웠을 그 딸이 비로소 아빠를 가슴에 품고 보고파 하며 추억하는 시기는 언제쯤일까요? 아쉽게도 아빠가 아버지가 되고, 딸이 한 남자의 아내가 된 그 때부터일 것입니다. (물론, 세대 차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지금의 딸들을 보건데, 크게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때문에 모든 딸들이 부르는 '사부곡'(思父曲)은 딸이 결혼 이후 철이 든 후 시작됩니다. 어쩌면 아빠 품에서 독립하여 새로운 남자와 적응하여 사는 과정에서 '어른 남자들'에 대한 관심이 깊어졌기에 그럴 것입니다. 그런데 그 딸들에게 추억되는 '옛날의 아버지'는 대개 애증의 존재입니다. 어머니를 아프게 한, 권위적이고 가부장적인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담겨 있는 동시에 지금은 애처로운 뒷모습을 보니 안쓰러운 마음이 생긴다는 고백으로 전개됩니다. 물론 반 세기 전에 아빠는 감히 함부로 부르지도 못할 어려운 존재이기도 했습니다. 또 그 때는 아버지가 어머니를 심적으로든 물적으로든 고생케 해도 허용이 되던 시대였습니다. 가장이라는 무게, 집 밖에서 경제활동을 한다는 무게감이 상당히 컸기 때문이겠지요. 다른 관점으로 보자면, 딸이 아버지를 돌아보게 되는 시기는, 자신이 어머니의 위치에 놓여진 후 아버지를 남편의 상황에 비교하면서부터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송해- 유지나 아버지와 딸 한국방송가수대상 시상식
아버지와 딸 (송해 유지나)
내가 태어나서 두 번째로 배운 이름, 아버지/ 가끔씩은 잊었다가 찾는 그 이름
우리 엄마 가슴을 아프게도 한 이름/ 그래그래도 사랑하는 아버지
세상 벽에 부딪혀 내가 길을 잃을 땐/ 우리 집 앞에 마음을 매달고
힘을 내서 오라고 집 잘 찾아오라고/ 밤새도록 기다리던 아버지
내가 시집가던 날 눈시울을 붉히며/잘 살아라 하시던 아버지
사랑합니다 우리 아버지
추억의 나는 가수다 - 인순이, 아버지
미워도 했지만 이제는 용서하고 사랑하게 된 아버지에 대한 노래
딸바보라는 '페르소나'를 벗고, 아빠의 삶도 행복할 수 있기를
흥미로운 연구가 있어 적어 봅니다. 바로 대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아버지를 지각하는 페르소나(그리스 어원의 ‘가면’을 나타내는 말로 ‘외적 인격’ 또는 ‘가면을 쓴 인격’을 뜻합니다. 스위스의 심리학자이자 정신과 의사인 칼 구스타프 융(Carl Gustav Jung)은 사람의 마음은 의식과 무의식으로 이루어지며 여기서 그림자와 같은 페르소나는 무의식의 열등한 인격이며 자아의 어두운 면이라고 말했습니다. 자아가 겉으로 드러난 의식의 영역을 통해 외부 세계와 관계를 맺으면서 내면세계와 소통하는 주체라면 페르소나는 일종의 가면으로 집단 사회의 행동 규범 또는 역할을 수행합니다.(영화사전, 2004. 9. 30., propaganda)를 검사하는 연구였습니다.
결과를 보자면, 한국 대학생 자녀가 아버지에게서 가장 많이 지각하는 페르소나는 완벽지향 페르소나와 체면지향 페르소나였습니다. 완벽지향 페르소나는 우리나라 아버지들이 갖고 있는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모습의 일부로서 아버지의 역할을 완벽하게 하며 그렇게 보이려고 행동하는 경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체면지향 페르소나는 동양 유교 문화권에서 나타나는 사회적 얼굴로 명예나 지위, 신분 등 일반적이고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페르소나로 한국의 문화적 경향을 보여줍니다.
(조순옥, 채수은, <자녀가 지각한 아버지 페르소나와 양육행동의 관계>, 한국심리학회지, 2016, 12 참고)
어찌보면, 남자는 아버지가 되는 순간 가져야 하는 책무들로 인해 이미 자기 자신으로 살아갈 수 있는 삶의 범주가 점차 좁아지게 되는 것 같습니다. 때문에 질문을 던져 봅니다. 아빠에게 '바보' 되기를 권하는 사회 속에서 이제 아빠는 '바보'라는 또하나의 페르소나를 덧입게 되는 것은 아닐까요? 과연 그 가면을 씀으로써 포기하게 되는 자신의 남성성은 어디에서 보상받아야 하는 건지요? 중년 딸들이 바라보며 애잔해 하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과연 사춘기 우리 딸들은 언제쯤 느낄 수 있을런지요? 그 때만을 기다리며, 또 아빠를, 자신을 억누르라고 강요하는 사회로 점차 변질되어 가는 것은 아닌지요?
딸이 행복하려면 아빠도 행복해야 합니다.
딸바보 아빠, 당신은 오늘 행복하십니까? 묻고 싶은 오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