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등감' 파헤치기 프로젝트 1탄
오늘은 ‘열등감’에 대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눠볼까 합니다.
‘열등감’하니 문득 어린 시절의 한 장면이 떠오릅니다. 중학교 때, 한 달에 한 번씩 큰 강당에서 학교 전체 학생들이 모여 조회를 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 날은 갑작스레 사회를 보시던 선생님께서 모두 손을 들고 앞에 걸린 학생 선언문을 읽자,라고 말씀하시더군요. 별 생각 없이 오른손을 옆으로 올리고는 칠판에 걸린 글을 읽을 때였습니다. 뒤에 서 있던 한 친구가 불쑥 한 마디를 던졌습니다. “근데, 너 손 정말 못생겼다. 짧고 뭉툭한 게 소시지 같네. ㅎㅎㅎ” 그 때 제 얼굴은 어찌나 빨개졌는지. 그렇지 않아도 희고도 가늘고 긴 손가락을 가진 친구들을 볼 때면 참 부러웠었습니다. 그런 아이들에 비해 제 손가락은 두껍고 울툭불툭 남자 손처럼 생겼다고 생각했었지요. 피부도 까무잡잡하구요. 그 이후로 손을 들고 하는 행위들을 할 때마다 뒷사람이 신경쓰였고 왠만하면 제 손가락을 잘 드러내 보이지 않으려고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 뿐이었나요. 부끄럽고 수줍음이 많았던 제가 얼떨결에 고1, 1학기 반장으로 뽑히게 되었습니다. 마침 그 날은 선생님께서 외부 연수 때문에 자리를 비우시고 아이들은 자율학습을 하는 시간이었지요. 선생님께서는 떠드는 아이들 체크하고 조용히 자습할 수 있도록 잘 지도하라는 말씀을 남기고 떠나셨습니다. 하지만 선생님 안 계신 그 시간이 너무도 즐거운 반 친구들은 (당연히) 너도나도 수다 나누느라 장난 치느라 왁자지껄 목소리가 커져만 가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조용히 하자, 얘들아.”라며 몇 번을 같은 말을 되풀이 하였지만 친구들의 목소리에 제 목소리는 파묻히고 말았습니다. 그 후로도 몇 번을 큰 소리로 말을 건넸지만 들은 체도 않는 아이들. 순간 내가 여기에서 뭐하고 있는 걸까, 왜 아이들은 나를 이렇게 무시하는 거지?라는 복합적인 생각에 휩싸였고 갑자기 설움이 복받쳐 엉 하고 울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세상에. 덩치도 산만한 고1 학생이 눈물이라니요. 생각할수록 창피함이 온 몸을 휘감아서, 저는 그만 화장실로 뛰어가 숨었고 그 다음 교시 시작 할 즈음에야 다른 친구에게 끌려서 나오게 되었답니다. 이후 대학교 입학하고 나서는 조금씩 사람들 앞에 서는 두려움에서 자유로워졌었는데요, 학창시절에는 참 소심하기 이를 데 없는 답답한 학생이었음을 고백합니다. 못생긴 손가락 콤플렉스와 소심한 성격이 저에게는 ‘열등감’의 한 몫을 담당하고 있었습니다.
저뿐만이 아닌 많은 사람들이 마음 속 한편에 열등감을 묻고 살아갑니다. 겉으로는 완벽해 보이고 부러워보이는 사람일지라도 말입니다. 외모에 대해, 대인관계에 대해, 집안 환경에 대해, 공부에 대해 등등 개인마다 지닌 다양한 열등감. 자신만이 아는, 내면 깊은 곳에서 꿈틀대는 그림자 같은 존재인 열등감.
하지만 그 열등감 자체를 어떻게 ‘다루느냐’는 사람마다 편차를 보입니다. 누군가는 열등감이라는 감정에 크게 휘둘리지 않으며 살아가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열등감에 강하게 사로잡혀 헤어나오지 못합니다. 예를 들어 A와 B가 비슷한 외모와 체격을 가졌다고 하더라도 A는 자신의 외모에 대해 대단히 만족하며 별점 5개를 매기지만, B는 외모 콤플렉스 때문에 대인관계를 힘들어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과연 그러한 차이는 무엇 때문에 생기는 걸까요?
사실 열등감은 그 자체로는 정상적인 감정입니다. 그야말로 감정 중 하나일 뿐이지요. 문제는 그 정도의 차이에 있습니다. ‘열등감’에 대해서는 개인심리학의 창시자인 알프레드 아들러를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는데요, 그 역시 평생 열등감에 사로잡혀 살았던 학자였기에 그가 전착해 온 ‘열등감’에 대한 연구들은 꽤 깊이 있는 울림을 전해줍니다.
그 중 <열등감, 어떻게 할 것인가>에서는 그동안 우리가 눈여겨 보지 않았던 열등감의 속성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중 세 가지를 간추려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첫째, 열등감은 ‘남들보다 우월해지려는 목표’로부터 생겨납니다. 흔히 열등감을 실제로 남들보다 열등하기 때문에 생겨나는 감정으로 여기기 쉽습니다. 하지만 그 반대인 경우가 더 많습니다. 오히려 주어진 일에 대해 높은 목표를 가지고 능동적으로 일하려는 사람일수록 열등감에 더 쉽게 빠집니다. 반대로 말하자면 그만큼 삶의 목표치를 높게 두는 사람이라는 뜻이지요. 그들은 자신만의 영역에서 최대한의 성과를 내고 싶어하고 일을 완벽하게 성취하려는 욕구가 강합니다. 학교 생활이나 사회 생활에 꽤 열심을 기울이지요. 타인에게는 바람직한, 본받고 싶은 선,후배로 비춰집니다. 하지만 이상과는 달리 현실에서는 끊임없이 낯선 상황에 마주치게 되고 예상치 못한 결과를 맞이하기도 하는데요. 그럴 때마다 그들은 자신이 안전하다고 느끼는 협소한 울타리 안으로 자신을 가두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을 고통스럽게 했던 특정 상황이나 특정 사람으로부터 도피하면서 자신의 입장을 합리화합니다. ‘열등감’의 동굴에 스스로를 가둬버리는 것이지요.
둘째, 자기 자랑이 많은 사람일수록 심한 열등감에 사로잡혀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혹 주변에 모임하기만 하면 자기 자랑에 여념없는 분이 있다면, 너무 밉상으로만 생각하지 마십시오. 대부분 그 내면에는 심한 열등감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남들보다 우월해지려는 욕구는 누구나 지니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우월함을 어떤 목표를 향해 표출하느냐는 사람마다 다릅니다. 사회적으로 잘 적응하고 타인을 돕기 원하는 사람일 경우 원만한 사회 생활, 인간관계를 맺게 되지요. 하지만 현재 자신의 모습보다 더 중요하고 위대하게 스스로를 포장하여 드러내 보이고 싶은 사람일수록 오로지 삶의 포커스가 자신의 중요성을 확인하는 데 맞춰지게 됩니다. 그들은 과도한 몸짓과 언어로 자신을 포장합니다. 그들의 내면에는 ‘내 말을 강조하지 않으면 내 말에 무게가 실리지 않고, 다른 사람이 나를 얕잡아 볼거야.’라는 소심함이 늘 자리잡고 있는 것이지요.
셋째, 열등감은 ‘우월감’과 이란성 쌍둥이라는 것입니다. 흔히 ‘우월감’을 열등감의 대척점에 있는 감정으로 여깁니다. 즉, 서로 상반되는 감정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두 가지 감정은 동전의 양면이며 한 사람의 삶에서 교차되어 나타납니다.
한 개인의 삶에 나타나는 모든 증상은 일련의 변화를 거치며 모습을 드러낸다. 따라서 증상은 과거와 미래 모두를 포함한다고 할 수 있다. 미래는 우리의 노력 및 목적 등과 관련이 있는 반면, 과거는 우리가 극복하고자 노력하는 열등감 또는 무능력의 상태를 반영한다. 그런 이유로 열등감 콤플렉스는 증상의 초기에 관심을 두는 반면, 우월감 콤플렉스는 증상의 연속성, 즉 증상의 진행에 초점을 맞춘다.(p63)
열등감과 우월감은 자연스럽게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때로는 열등감은 우월감의 생성에 좋은 촉진제가 되기도 합니다. 유독 음식이나 먹는 것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 있습니다. 무엇을 먹는 것이 좋고 또 나쁜 지가 늘 가장 중요한 대화의 주제가 되는 것이지요. 그런 사람들 중 대부분은 어린 시절부터 소화에 어려움을 겪었거나 부모로부터 음식에 대한 피드백을 자주 받았을 확률이 높습니다. 그런 이유로 다른 사람에 비해 음식 문제에 더 큰 관심을 갖게 되었던 것입니다. 시력이 나쁜 아이들이 시각적인 것에 더 큰 관심을 갖고 뛰어난 시인이나 화가가 되는 과정도 이와 같습니다. 왼손잡이 아이가 불편함을 무릅쓰고 오른손 사용에 열심과 공을 들여 어른이 된 후 양손잡이로 성장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따라서 열등한 신체는 우월한 무언가를 발달시키는 촉진제가 됩니다.
정리하자면, 열등감은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지극히 정상적인 감정입니다. 오히려 잘만 다스리면 자신의 우월성을 획득하는 데 중요한 자산이 될 수 있습니다.
다음 편에서도 이어서 ‘열등감’에 대한 여러 가지 유익한 내용들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