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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문학 테라피스트 R Oct 25. 2019

나쁜 행동을 수정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

우리는 왜 '실패'만 거듭했을까?


수학을 너무도 싫어하는 초등학생 아이 J가 있었습니다. 그 아이는 수학 뿐만 아니라 공부 전반에 큰 관심이 없었지요. 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수업 시간에 다른 아이들을 툭툭 치며 괴롭힌다든지, 과도한 액션으로 주위를 산만하게 만든다든지, 수업에 방해되는 행동들을 빈번하게 계속하며 반 아이들에게 불편함을 끼쳤습니다. 그런 J를 향해 많은 교사들 또 주위 어른들이 타일렀습니다. “공부를 잘 해야 너의 인생이 행복해지고 편안해질 수 있단다. 그러니, 공부하는 데 좀 더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렴.” 혹은, “지금처럼 공부도 안하고 지내다가는 어른이 되어 큰 일이 날거야. 어서 책상 앞에 앉아 주어진 과제를 마저 끝내렴.”이라고 말입니다. 하지만 J가 학교에서 집중하는 시간은 좀처럼 늘어나지 않았고 J는 학교 담임 선생님에게 반에서 주목해야 할 문제아로 자주 지목되곤 했습니다.


또다른 한 아이가 있습니다. 이 아이 K는 16세 남자아이였는데, 어릴 때부터 물건을 훔치는 걸 시작했고 12세부터는 또래 아이들과 어울리며 밤늦도록 거리를 헤매기 일쑤였습니다. 한편, K의 부모님은 K가 어린 시절에 이혼하셨고 K는 아버지와 함께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와 K의 사이는 그다지 좋지 않았습니다. K의 부모님은 K가 어릴 때 성격 차이로 빈번히 싸웠는데, K의 아버지는 부부 싸움의 원인이 K때문이라고 종종 말하였고 우연히 그 말을 듣게 된 K는 아버지에 대해 큰 반감을 가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혼 후 K는 주로 친할머니 손에서 자랐고, 아버지와는 서로를 경계하는 사이처럼 지내왔습니다. K의 일탈행위는 여러 번의 사고와 징계를 반복하면서도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그럴수록 K의 아버지는 불같이 화를 내며 K를 나무라는 데 온 에너지를 쏟곤 하였고 두 사람의 사이는 점점 멀어지기만 했습니다.


앞에 예로 든 두 아이 J와 K, 모두 타이르거나 옳은 방향을 제시한다고 해서 그 행동이 바뀌지 않았다고 한다면, 과연 무엇이 문제였을까요?


(사진출처: pixabay.com)



사실 우리는 일반적으로 다른 사람의 행동을 변화시키기 위해 그 사람의 잘못을 지적하고 그 사람이 올바른 길로 나아가는 솔루션을 어떻게 하면 잘 제시해줄 수 있을지를 고민합니다.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혹은 잘못을 저지르는 것처럼 보이는 상대방이 자신의 행동이 얼마나 잘못된 행동인지를 잘 모르기 때문에 그런 행동을 반복한다고 상상합니다. 그렇기에 친근한 사이일수록 더욱 강하고 센 어조로 그 사람이 바뀌어야 하는 100가지 이유를 상세히, 조목조목 이야기하는 것이지요. 그렇게 했음에도 그 사람이 바뀌지 않으면, 도리어 화를 내거나 심하게 모욕을 주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 행동에 변화가 없다면, 그 원인에 대해 고민해보아야 합니다.


그 때에는 오히려 우리가 까맣게 잊고 있던 근본적인 문제로 돌아가 볼 필요가 있습니다. 과연 그 아이들이 혹은 상대방이 왜 그런 행동을 하게 되었을까? 하는 질문을 던져보는 겁니다.


“그런 행동을 함으로써 얻고자 하는 최종 목표가 무엇일까?"




모든 사람의 행동에는 나름의 목표의식이 분명히 있습니다. 어떤 일에든 그 일이 발생하게 된 ‘원인’과 ‘결과’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지요.


어린아이부터 어른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구체적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각자의 생각 속에서 가장 뛰어난 방법을 선택합니다. 그렇다면 목표는 어떻게 갖게 되는 걸까요? 지금 현재의 자신에게 가장 필요하고 중요하다고 여기는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 목표를 세우게 됩니다. 예를 들어, 갓난아이의 경우 배가 고프거나 기저귀가 이물질 때문에 영 불편하다면 어떻게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생각하고 행동에 옮기는 것입니다. 큰 소리로 ‘우는 행위’로 말이지요. 그러면 보호자가 얼른 달려와서 자신에게 음식과 쾌적한 환경을 제공해줍니다. 이를 반복적으로 경험하게 된 갓난아이는 ‘우는 행위’를 자신의 목표를 이루는 데 아주 중요한 행동으로 인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진출처:pixabay.com)


그 사람의 목표가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다면 잘못된 행동은 패턴만 바뀐 채 계속될 것입니다. 다시 말해, 자신이 그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행동 하나를 버린다고 하더라도, 곧 다른 행동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오랫동안 수면장애로 고통받고 있었다고 합시다. 그런데 그 내면을 들여다 보면, 그는 수면장애를 타인에게 관심을 받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해 왔던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만일 그 사람이 병원에서 지어준 약을 먹고 수면 장애를 해결한다면 끝나는 걸까요? 아마도 그 사람은 수면장애 대신 편두통 증상을 얻게되어 또다시 다른 이들에게 주목받고자 할 것입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목표가 변함없이 유지되는 한, 사람들은 그 목표를 계속 추구하기 위해 다양한 행동들을 수행하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에게 있어 ‘다양한 행동’의 옳고 그름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목표를 이루는 데 가장 ‘적합한 행동’이 곧 ‘옳은 행동’이 되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우리는 J와 K에게 각각 그 아이들이 왜 그렇게 행동하게 되었는지, 구체적으로 그 아이들이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질문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랬을 때, J의 경우 “저는 선생님께 관심을 받고 싶어요. 저처럼 공부도 못하고 눈에 띄지도 않는 아이들이 선생님께 주목받기 위해서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은 ‘문제아’가 되는 것이지요. 지금은 선생님이 반에서 5등인 아이보다 저에게 더욱 관심을 가져주시기 때문에 만족해요.”라고 말을 했다거나 K의 경우, “저는 아버지에게 복수하고 있는 거예요. 아버지는 제가 어렸을 때부터 저를 무시하고 어떨 땐 제가 세상에 태어나지 말았으면 좋았겠다,라는 말을 서슴없이 했어요. 엄마를 떠나가게 한 것도 아버지구요. 저는 제가 어떻게든 아버지의 말에 순종하지 않는 독립적인 아이이고, 아버지를 거스르게도 행동할 수 있는 아이란 걸 보여주고 싶어요. 그게 아버지와 함께 살아가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예요.”라고 했다면, 우리는 그 다음으로 그 아이들을 위해 무엇을 우선적으로 해줘야 하는 지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J에게는 ‘선생님께 주목받는 것’이 스스로의 삶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음을 인식시키고, 건전한 자존감을 세우도록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K에게는 아버지가 K를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처지가 나아지지 않기에 푸념처럼 내뱉은 말로 상처준 것이었음을 알게 해주고, 아버지와의 관계를 회복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 그것이 어렵다면 당분간 아버지와는 잠시 떨어져서 서로를 덜 간섭하는 관계로 지내도록 할 수도 있겠지요.


구체적인 목표를 잘못 선택했음을 이해하게 되면
그때 그 사람은 그의 행동을 변화시킬 수 있다.
따라서 목표를 바꾸면 정신적인 습관과 태도 역시 변화한다. 더 이상 옛날의 습관과 태도가 필요 없으며, 수정된 목표에 적합한 새로운 습관과 태도가 자리를 잡는다.
아들러, <열등감, 어떻게 할 것인가>, 159쪽


이러한 목표 수정 방식은 우리가 열등감을 극복하는 데에도 큰 도움을 줍니다.



우리가 지닌 열등감 역시 곧 우리가 하고 있는 행동의 진짜 ‘목표’가 무엇인지 인지함으로써 하나씩 해결해나갈 수 있습니다. 목표는 납득할 만한 이유가 있다면 얼마든지 수정 가능합니다. 그리고 목표가 바뀌면 정신적인 습관과 태도도 변화합니다. 수정된 목표에 적합한 새로운 습관과 태도가 생기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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