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성애' 없는 엄마라 죄송합니다

엄마와 '모성애' 사이의 진실과 거짓

‘모성애’는 타고난 본능일까요, 아님 후천적으로 만들어진 발명품일까요?


두 아이를 양육하면서 저는 제 안의 한 개인으로서의 욕망(진취적인 삶을 꾸려가고자 하는)과 아이를 잘 양육하고 돌보아야 하는 엄마로서의 책임감 사이에서 늘 갈등을 합니다. 지금은 그래도 아이들이 제법 커서 고등학생이 되었기에, 굳이 제 손을 거치지 않아도 될 나이가 되었는데요. 아이들이 어릴 때에도 일을 그만두지 않았던 제게 있어 두 가치관, 제 이름으로 살고싶은 욕망과 엄마로서의 책임감은 늘 가슴의 짐처럼 무거운 고민거리이자 삶의 숙제였습니다.


아이들이 각각 5살, 3살 때였을까요, 양가 어머님께서 멀리 계셔서 제가 일하러 나가는 동안에는 베이비시터 이모님이 와 계셨었지요. 시간마다 책정되는 베이비시터님의 시급과 제가 일하고 수입으로 얻는 비용을 생각해보면, 어떤 때에는 오히려 금전적으로 마이너스가 되는 때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이렇게 사회활동을 하지 않으면 제 경력이나 커리어가 영영 사라져버릴까봐,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발 동동거리며 바쁜 일상을 보냈었습니다.


지금도 가끔 아이들은 자신들의 어린 시절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그래도 혼자가 아니라 오빠와 동생이 두 명이 있어서 엄마가 늦게 오는 날에도 외롭지 않았다고. 베이비시터 이모님들 중 누구는 좋았지만 누구는 좀 못됐었다고. 초등학교 1학년 비오는 날, 자기들만 아무도 데리러 오는 사람이 없었다고. 그리고 6년 내내 혼자 등하교를 했다고. 두런 두런 자기들만이 아는 기억들을 꺼내며 이야기를 나누는데, 제 마음이 조금은 아리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이제 많이 컸구나, 하는 대견하기도 한 두 감정이 교차했습니다.




세계 어디든, 여성에서 어머니로 변화해가는 과정에서 혼돈을 겪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앞선 저와 같은 선택의 기로에 서서 매번 갈등하고 고민하였을 것입니다. 때로는 ‘나는 모성애가 없는 엄마인가? 왜 아이들 때문에 내 인생이 망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걸까?’라며 자책하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저 역시 그런 때가 있었으니까요. 누군가 이런 말을 하더군요. "'모성애'와 '부성애'는 다르다. '부성애'는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감정인반면 '모성애'는 타고 나는 것이다."라고 말입니다. 물론, 아이를 낳은 엄마 입장에서 '모성애'는 본능인 것은 맞습니다. 문제는 '모성애'를 마치 아이를 둔 엄마들의 삶을 맘껏 재단하고 규율하는데 당연시 여기며 사용한다는 점입니다.


다음은 평소 일을 하다보면 처음 만나는 분들과 많이 나누는 대화 패턴 중 하나입니다.

A: 혹시 결혼하셨나요?

R(저입니다) : 네~

A: 아이는 있으신가요?

R: 네, 둘 있습니다.

A: 아, 네...... 많이 힘드시겠어요......

(숨겨진 말들: 1) 일하랴 애키우랴, 바쁘겠다. 2) 그런데, 애보느라 일도 제대로 못하는 거 아닌가? 3) 밤에도 늦게까지 해야하는 작업도 있는데 큰일이네 4) 차라리 남자 후배를 부를 걸 잘못했다 5) 일에 지장있으면 곤란한데.... 6) 다음 번에 일할 땐 좀 다른 사람으로 고려해봐야겠네)


A의 대화 마지막의 "......"에는 수많은 교차된 생각이 담겨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중 가장 두드러진 생각은 '모성'을 지닌(혹은 지녀야 하는) 여성들 대부분을 다른 '모성' 없는(혹은 없어도 되는) 사람들과 구별지어 생각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십중팔구 이 때의 '모성'은 여성이 일에 대한 성과를 내는 데 있어 (경중의 차이는 있지만) 일종의 핸디캡처럼 여겨집니다. 분명 이미 일 때문에 육아는 어떻게든 접어놓은 채 출근했는데도 말이지요.



제가 어린 나이였을 때는 그런 질문, 말투, 침묵 등이 싫었고 또 오기가 생겨서 더 그 일에 몰두했었습니다. 그런데 점차 나이를 먹어가니, 어찌 보면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심이 커진다고 해야 할까요, 아님 피해주는 것이 싫어졌다고 해야 할까요. 왠지 저보다 더 나은 조건(솔로거나 아이가 없어 시간적으로 자유로운)의 후배들이 그 일을 하고 싶어하는 눈치를 보이면 두말 없이 일에서 손을 떼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 어디에서도 딱히 불러주는 곳 없는 외딴 섬처럼 되어버리더군요. 그런 애매모호한 대학원 사회에서의 관계망(사적이지도 않고 공적이지도 않은)이 어려워 지금은 반쯤 독립을 선언한 상태이구요.


이처럼 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사회 생활을 할 때의 가장 큰 딜레마는 곧 정체성의 문제인 것 같습니다. 나는 우선적으로 00의 엄마인지 아님 나 자체인지 말입니다. 두 가지 모두 다 '나'의 구성요소이지만, 그 둘을 모두 다 똑같은 비중으로 살아내기는 만만치 않습니다. 돌아보면 어느새 균형이 깨어져있기 마련입니다. 일하는 엄마들의 경우는 대부분 '일'로 치우쳐 있는 경우가 더 많지요. 그럴 때면 저는 이렇게 고해성사 하곤 하였습니다. "얘들아, 미안해. '모성애' 없는 엄마라서......"


하지만 이거 아시나요? 그 ‘모성애’라는 것도 사실 알고 보면 역사적으로 사회에서 만들어진, 감정 중 하나였다는 것을요.





여성의 ‘엄마화’에 대한 역사를 쓴 책이 있어 가져와 보았습니다. 바로 <모성애의 발명>이란 책입니다. 이 책은 근대가 유포한 ‘모성애 이데올로기’를 연구한 책입니다. 독일의 사회학자 엘리자베트 벡은 현대 사회의 특징을 ‘나만의 인생을 찾는 것’에 있다고 정의내립니다. 개인의 자기 인생에 대한 자율권이 가장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한 개인이 가문이나 종족, 공동체라는 구속에서 벗어난 시대이기에 인생은 스스로 만들고 지키는 ‘개인의 소유물’이 되었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근대 이전 역사에서는 인생의 주체가 개인이 아니었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특히 남성이 아닌 여성의 경우가 그러한데요, 한 개인으로의 인생 행로가 열리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 이전보다도 더욱 가정에 속박되었다고 합니다. 이런 역사적 배경 때문에, 많은 이들이 예전부터 지속되어온 불변의 것처럼 간주하는, 자신을 희생하고 자식에게 헌신하는 ‘모성애 신화’ 혹은 모성에 대한 관념이 실은 18-19세기를 통해 이념적으로 구성된 근대 산업사회의 소산이라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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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2006년 독일의 출생률 감소 논란으로부터 비롯된 문제의식 속에서 탄생하였습니다. 원래 제목이 ‘오늘날 아이 문제-여성 삶과 출생률 감소, 아이에 대한 소망’입니다. 책은 아이를 갖겠다는 인류의 소망과 관련지어 근대 이행기 모성의 사회사를 탐험하는 한편, 19세기 말 인류 첫 출생률 하락기, 1965년부터 현재까지 40여년의 2차 출생률 하락기에 여성 삶에 어떤 변화가 있었고 그것이 모성 관념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까지를 통찰하고 있습니다.


산업화 이전, 곧 18세기에 서양의 인구 다수 집단은 농민과 수공업자였고 이들의 노동과 삶의 형태는 ‘한 집안 노동 경제 공동체’에 귀속됐습니다. 당시 아이를 많이 생산한 것도 경제적 이유가 컸었지요. 아이는 상속자이자 노동력이었습니다. 당시 경제 공동체에서 아이 돌보기는 여럿이 나눠 맡는 게 일반적이었습니다. 어머니가 아이의 육체적인 ‘양육’을, 아버지가 복종과 신에 대한 공경을 가르치는 ‘교육(훈련)’을 맡았습니다. 양육 업무도 어머니가 가족경제의 중요 노동력이었으므로 조부모, 일가친척, 형제자매, 하인들이 나눠 했습니다.


하지만 산업화와 함께 가족이 노동, 경제 공동체 구실을 상실하면서 남녀 사이에 새 노동분업이 탄생합니다. 남성은 “외부 세계의 직업과 사회를 담당”하고 여성은 “가정과 집안일과 가족을 맡게된 것”입니다. 이를 위해 본성마저도 남성은 활동성, 추진력, 힘, 오성으로 여성은 온순함, 겸손함, 감정, 감수성으로 새로 규정되었고 그런 이념은 장자크 루소의 <에밀>을 비롯한 철학, 종교, 문학, 정치 연설에서 설파됩니다. “사랑스런 여성이여. 그대의 품위는 행동보다는 존재에, 앞으로 나아감보다는 가만히 서 있음에, 명령보다는 복종에, 의지보다는 순종에 있노라.”라고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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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새로운 성역할은 19세기 초부터 자리잡기 시작했습니다. 이 과정 가운데 ‘유년기(아동)’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어린이는 부모의 소유가 아닌 인격적인 독립체로 간주되기 시작합니다. 아이가 기초적인 양육 외에 목적의식적인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주장이 강해지면서 ‘아이를 위한 노동’ 업무를 아이를 낳은 사람 즉 어머니에게 일임하게 됩니다. 과거에는 아이의 육체적 양육은 어머니의 몫이었고 교육 업무는 아머지의 몫이었지만 남성들이 매일 많은 시간을 가족과 함께 하지 못하는 시간이 늘어나게 되면서 여성들이 아이를 전담하게 됩니다. 여성에게는 과거에 가사와 가내수공업 노동 사이에 아이 돌보는 일이 주어졌으니 이제는 고유의 과제이자 주된 과제가 된 것입니다. 그렇게 여성은 오로지 아이 돌봄, 곧 모성을 바탕으로 정의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모성을 위한 자아 포기가 여성 지고의 행복”이라는 모성애 이데올로기는 18세기에 시작되어 19세기에 번성했으며 20세기에도 지속되어 교육서와 문학서, 예술에 스며들었고 지금도 존재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자기 역시 엄마이자 사회학자 남편을 둔 저자,엘리자베스 벡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친숙한 모성의 형태는 새로운 제도다. 유래없이 부유한 사회의 산물이다. 대부분 인류 역사에서 건강한 성인 여성은 노동력이어서 오로지 아이를 돌보는 일만 하도록 놔둘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자기 삶(노동)을 포기하고 자식만을 위해 헌신하는 모성은 봉건적이라기보다는 근대적 현상이었던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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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책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여성에게 모성애가 태생적으로 있다, 없다의 문제가 아니라 알게 모르게 여성들이 아이보다 자신의 자아실현에 대해 더 열중하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게 만드는 최근 사회적 현상에 대한 비판이겠지요. 마치 엄마인데 일하는 여성들을 굳이 ‘워킹 맘’이라 불러야 하고 가사일과 육아를 완벽하게 해내는 것이 전적으로 엄마만의 일인 듯 속박하는, 세상에 대한 일침도 포함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모쪼록 이제는 “모성애”의 얕고 깊음으로 평가받는 엄마로서가 아닌, 나의 이름 석자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하고 행복할 수 있는 여성들이자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