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운 엄마의 그 때, 당신은 어디에

엄마의 외로움에 대한 사유

'엄마'라서 행복하지만, '엄마'이기에 외롭기도 합니다. '엄마'의 행복은 가족과 함께 할 때 찾아오기에 모두가 알지만 '엄마'의 외로움은 아무도 없는 곳에서 삭이는 흐느낌이기에 그 누구도 알 수가 없습니다.

저도 ‘엄마’는 늘 행복한 줄만 알았습니다. 그 날이 오기 전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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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엄마가 있었습니다. 흥이 많았고 참 고운 얼굴을 지녔습니다. 20대 초반 어린 나이에 무뚝뚝한 충청도 남자를 만나 없는 살림이지만 신혼집을 마련했습니다. 결혼만 하면 땅 팔아서 집 전세금에 보태주신다던 시아버지는 큰 아이가 돌이 지나도록 아무 말씀이 없었습니다. 그래도 잘 살고 싶었고, 아이들도 잘 키우고 싶었습니다. 흥도 접고 고운 얼굴도 내팽개쳐 둔 채 시장에서 장사를 시작했습니다. 드르륵 재봉질도 잘했고 오밀조밀 손뜨개도 능숙했습니다. 집안 곳곳에 알록달록한 예쁜 덮개들이 어느새 가득했습니다.

중국집도 열었습니다. 장사하면 역시 먹는 장사이기에. 앞치마를 두르고 배달통을 날랐습니다. 그 때 뱃속에는 둘째 아이가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급하게 건널목을 건너다 작은 돌부리에 걸려 몸에 균형을 잃고 말았습니다. ‘우당탕탕...’ 온갖 짜장면, 짬뽕 국물이 사방에 튀었습니다. “에이, 뭐야, 이거!” 지나가는 아저씨가 눈을 흘기며 소리를 쳤습니다. 하지만 엄마는 엎어진 음식 국물 보다 얼른 배를 움켜쥐었습니다. 내 아가가 무사한지, 무슨 일이 난 건 아닌지. 다행히 뱃 속 아기는 별 탈 없이 엄마에게 꼭 안겨 단잠을 자고 있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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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은 장맛비가 엄청 내리던 날 밤이었습니다. 낮은 지대에 집을 얻은 터라 밤 사이에 물이 넘치도록 불었습니다. 눈을 떠보니 세간살이가 모두 둥둥 떠다녔습니다. 아이 둘과 강아지를 안고 부부는 달려나왔습니다. 물을 헤치며 높은 산 중턱으로 올라갔지요. 펑펑 눈물이 났습니다. 그래도 목숨을 건진 것만 해도 감사하자고, 부부는 손을 꼭 잡았습니다. 그래서, 더 두 분의 사이는 그렇게도 끈끈했던 것일까요. 평생 싸움 한 번 없이, 헤어지는 그 날까지 애타고 눈물겨웠던 이유가요.

돈을 조금씩 벌었지만 쓰기는 참 아까웠습니다. 닭국을 끓이면 그렇게 닭뼈만 남은 국물에 밥을 말아 먹었습니다. 김밥을 싸면 꽁지밥만 입에 넣고, 사골국을 끓이면 제일 끝에 남은 허연 국물만 들이켰습니다. 그러다가 손재주를 그냥 두기 아까워, 서예를 배웠고 그림을 배웠습니다. 금세 실력이 늘었습니다. 아이들 학교에 가서 서예도 가르치고, 그림도 가르쳤습니다. 아이들이 고등학교에 가고 제법 크면서 엄마의 시간도 많아졌습니다. 매일 화실에 가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또 그림 실력을 키웠습니다. 국전에서 제법 큰 상을 타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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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사랑하는 달링이 많이 아프게 되었습니다. 방광암이었지요. 소변줄, 대변줄을 차는 대수술을 하던 날, “세상이 너무도 야속하네. 내가 이럴 줄 어찌 알았을까.”라며 눈물 흘리던 달링을 보며 숨죽여 피눈물을 삼켰습니다. 그래도 행복했습니다. 매일 밤마다 두 손 꼭 잡고 잠이 들었고 매일 아침 기도와 찬송으로 위로해주었습니다. 그 세월도 5년이 지나 달링과 헤어지던 전날, 엄마는 사랑의 고백을 나눴습니다. “여보. 사랑해요. 당신을 만나 너무도 행복했어요. 당신은 세상에서 가장 멋진 남자예요. 우리 하늘나라에 가서 곧 다시 만나요.”


홀로 된 엄마는 얼마 전부터는 색소폰으로 연주 봉사를 하십니다. 여전히 흥이 많고 여전히 고운 얼굴의 엄마. 달링이 보고파서 눈물이 날 때면 하늘 보고 방긋 웃어봅니다. 딸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은 외로움이기에, 그 누구에게도 말하고 싶지 않은 고독함이기에, 홀로 이겨내려 합니다.


잘 웃고, 늘 낙천적인 엄마이기에 행복한 줄로만 알았습니다. 하지만 곱아진 손가락과 오래 앉으면 통증이 생기는 허리를 볼 때마다 가슴 한 켠이 아려옵니다. 엄마들은 왜 혼자서 세상 모든 짐을 다 지고 가시려는 걸까요? 작은 아픔도 나누면 커질 새라 꼭꼭 감추며 삭히시는 걸까요? 일하느라 바쁜 아들 딸 피해주기 싫어, 늘 씩씩한 모습만 보여주시려는 엄마. 이제는 제 앞에서 눈물을 보여도 된다고, 아프고 서러울 땐 목놓아 우셔도 된다고 말하며 여린 어깨를 꼭 안아드리고 싶은.......가을 오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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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에게 / 나희덕

깊은 곳에서 네가 나의 뿌리였을 때

나는 막 갈구어진 연한 흙이어서

너를 잘 기억할 수 있다

네 숨결 처음 대이던 그 자리에 더운 김이 오르고

밝은 피 뽑아 네게 흘려보내며 즐거움에 떨던

아, 나의 사랑을


먼 우물 앞에서도 목마르던 나의 뿌리여

나를 뚫고 오르렴

눈부셔 잘 부스러지는 살이니

내 밝은 피에 즐겁게 발 적시며 뻗어가려무나

척추를 휘어 접고 더 넓게 뻗으면

그때마다 나는 착한 그릇이 되어 너를 감싸고

불꽃같은 바람이 가슴을 두드려 세워도

네 뻗어가는 끝을 하냥 축복하는 나는

어리석고도 은밀한 기쁨을 가졌어라


네가 타고 내려올수록

단단해지는 나의 살을 보아라

이제 거무스레 늙었으니

슬픔만 한 두릅 꿰어 있는 껍데기의

마지막 잔을 마셔다오


깊은 곳에서 네가 나의 뿌리였을 때

내 가슴에 끓어오르던 벌레들,

그러나 지금은 하나의 빈 그릇,

너의 푸른 줄기 솟아 햇살에 반짝이면

나는 어느 산비탈 연한 흙으로 일구어지고 있을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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