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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문학 테라피스트 R Nov 04. 2019

방랑하는 젊음-나를 찾아 떠나라

혜초의 왕오천축국전 (김탁환)

떠남이 아름다운 사람들이 있다. 낯선 길 위에서 깨달은 삶의 의미를 꼼꼼히 기록한 영혼들! 박지원도, 이븐 바투타도, 마르코 폴로도 견문을 넓히기 위해 돈과 시간을 쏟아부은 사람들이다. 움직일 때 그들은 빛났고, 움직이면서 무엇인가를 적을 때 그들은 위대했다. 


723년 갓 스무 살의 잘생긴 학승이 배에 오른다. 5년 동안 머물렀던 중국 광저우를 떠나려는 것이다. 존경하는 스승이나 동학과 이별하는 아쉬움보다 길 위로 나서는 즐거움이 더 컸다. 그의 이름은 혜초. 열여섯에 고향 계림(신라)를 떠나 유학을 왔다. ‘참 나’를 찾아 중국으로 건너온 신라승은 400여 명을 헤아렸고 그중 몇몇은 가르침의 본향인 천축국(인도)으로 향했다. 혜초도 그 중 한 사람이었다.


혜초가 천축국까지 나아간 바닷길은 초원길, 사막길과 함께 동서문명이 교류하는 3대 핵심 여행길 중 하나였다. 남천축 출신인 금강지가 이 길로 동진하여 중국으로 와서 혜초를 가르쳤고, 금강지로부터 배움을 얻은 혜초가 스승이 왔던 길을 거슬러 서진하여 천축국에 닿았다. 4년 가까이 혜초는 철처히 길 위의 영혼이었다. 다섯 천축국은 물론이고 대삭국(아랍)까지 여행하며 보고 들은 바를 기록했다. 혜초 같은 학승이 이슬람 권역까지 갔을 리 없다는 견해도 있지만, 나는 대삭국으로 나아간 혜초의 심정이 헤아려진다. 여정은 바뀌기 마련이며 때로는 생의 경계까지 넘는 것이 바로 여행의 매혹이다. 


혜초가 중국에서 여생을 마쳤기 때문에 우리 역사의 위인으로 넣기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금강지의 제자인 불공이 유서에 혜초를 ‘신라인’이라 명시했고, 무엇보다도 혜초 스스로 남천축을 지나며 “내 나라는 하늘가 북쪽에 있고/ 남의 나라는 땅끝 서쪽에 있네/ 일남(日南)에는 기러기마저 없으니/ 누가 소식 전하러 계림으로 날아가리.”라고 고향을 그리는 심정을 시로 읋은 것을 볼 때, 그는 자신이 계림 출신임을 안팎으로 아로새긴 인물이었다. 한자 문명권이나 불교 문명권이라는 큰 틀 안에서 혜초를 조망할 필요가 있다. 혜초를 한국의 첫 세계인으로 꼽는 역자 정수인의 주장에 귀 기울일 때다.


4년 내내 자신의 행적을 차분히 적어 나간 혜초라면, 신라로 돌아갈 것인가 중국에 남을 것인가 하는 문제 또한 쉽게 정하지 않았으리라. 출발점으로 돌아오는 것도 인생이지만 새로운 삶을 만나 머무는 것 또한 인생이다. 그가 고승의 반열에 오른 것은 젊은 날의 여행을 한때의 즐거움으로 치부하지 않고 깊은 구도로 연결시킨 결과다. 두 번 다시 그처럼 긴 이국 여행의 기회는 혜초에게도 또 박지원에게도 없었지만, 그들은 단 한 번의 여행에서 충분히 멋진 문장과 풍부한 가르침을 남겼다.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은 문명 교류사의 대가인 정수일의 정돈된 해설과 치밀한 주석이 돋보인다. 혜초의 여행길을 머릿속으로 따르면서 그의 맑은 눈빛 한 움큼씩도 함께 주머니에 채우기를.    


열여섯 살에 홀로 유학을 떠나 깊은 배움의 경지에 이른 학승 혜초의 삶이 눈 앞에 보이는 듯 그려졌습니다. ‘여행’을 곧 ‘참 나’를 찾기 위한 구도의 선상으로 삼은 선구자, 개척자들의 모습이 마음에 깊은 울림을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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