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에게 빠진 짜장면
한국으로 와서 처음 4개월동안 별 탈 없이 잘 지냈다. 그래도 내가 몸 관리를 잘 하고 있나보다 하면서 속으론 못내 좋아했다. 이대로라면 다시 재발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싶었다. 그러나 결국 몸은 못 속이는거였다. 4개월째 되는 어느 날, 오른쪽 하복부에서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바늘로 찌르는 듯한 찌릿찌릿한 아픔.. 신랑은 바로 나를 데리고 병원으로 향했다. 정부에서 운영하고 있는 큰 병원이 아닌, 강남에 위치한 조그마한 장 전문 병원이었다. 난 더럭 겁이 났다. 이런 곳에서 검사를 받아도 될까하는 의구심부터 들었다. 중국에선 무조건 정부소유가 최고주의인 나로서는 이런 조그마한 전문병원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래도 시아버님도 여기서 장 검사를 받으신다는 얘기를 듣고 조금은 마음이 놓였다.
중국에서 받았던 대로 다시 한번 CT를 찍고, 이런 저런 검사를 받았다. 대장내시경까지 받았다. 꽃다운 젊은 나이에..흑..그런 후 의사선생님한테서 자세한 상담을 받게 된 나. 의사선생님은 그림까지 그려주시면서 꼼꼼하게 설명을 해 주셨다. 충수돌기가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 그리고 수술을 할 경우 어떤 후유증이 생길 위험이 있는지, 그리고 수술 방법에 대해서도 낱낱이 설명을 해 주셨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수술 일정을 정했다. 중국에서는 그리도 어려웠던 입원수속을 여기선 이렇게 후딱 해치울줄이야..
며칠 후, 난 무사히 입원을 하고 , 수술 준비에 나섰다. 처음엔 너무 불안 했다. 보통 중국에서는 수술을 받는 경우 , 담당의사선생님과 마취 담당 선생님에게 잘 부탁 한다는 의미로 뭔가 성의를 표시해 준다. 한국에서도 그래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신랑에게 넌지시 물어봤지만, 신랑은 괜찮다고 하는것이었다. 과연 정말 괜찮을까?
결국 3일 후, 나는 수술실에 실려들어갔다. 아무런 빽도, 선물도 없이..맨 몸으로.. 배꼽에 구멍을 뚫어서 꼬랑지를 꺼내는 복강경 수술로 뱃속에서 날 그토록 괴롭혔던 못된 놈을 드디어 꺼냈단다.
40분 후 수술을 마치고 눈을 떴을 때 난 이미 아늑한 병실에 돌아와 있었다. 신랑은 잘린 그 놈의 시체를 찍어서 내 앞에 들이밀었다. 음, 역시 금방이라도 터질듯 팅팅 부어있는 요놈, 이제 넌 영영 빠이빠이다.하하
이렇게 모든것이 한순간에 벌어졌다. 중국에선 그 토록 찾기 어려웠던 병실도, 수술실도 여기선 너무 쉽게 잡혔다. 똑같이 4인실이지만, 나랑 꼬마 한명 밖에 없었다. 알고보니, 꼬마는 나보다 하루 일찍 맹장수술을 받았단다. 나랑 꼬마는 넓은 병실을 함께 쓰는 행복한 룸메이트가 되었다.
3일동안 나는 편하게 병실에서 VIP대접을 받으면서 호강을 누렸다. TV도 볼 수 있었다. 꼬마가 좋아하는 프로를 억지로 볼 때가 많았지만, 그래도 행복하기만 했다. .저녁에 침대에 누워 이리 뒤척 저리 뒤척 잠을 이루지 못한 나는 주위를 두리번 거렸다. 그리고는 낯설고도 낯익은 그 때 그 곳으로 다시 날아갔다. 하얀 벽이 보이는 왁자지껄한 복도, 기다랗게 늘어져 있던 침대들, 의자에 앉아서 꾸벅꾸벅 졸고 있던 가족들, 그리고 지금 여기 따뜻한 색상의 벽지로 도배한 조용한 병실, 옆에서 편하게 누워서 졸고 있는 신랑. 같은 세상에 너무나도 다른 두 곳. 갑자기 서글퍼 지는 밤이었다.
퇴원할 때 신랑은 고맙다는 표시로 간호사언니들에게 맛있는 마카롱을 사줬다. 중국에서 이걸 주면, 아마 뒤에서 욕 먹을지도 모른다. ㅋㅋ 목숨을 살려 놓았더니 기껏 준다는게 고작 과자부스러기냐 하면서..(통큰 중국인들한테 선물로 주기엔 너무 가볍다.ㅋㅋ). 그래도 여기선 간호사언니들이 너무 맛있게 먹어줘서 기분이 좋았다. 언니들이 싹싹하게 잘 보살펴 준 덕분에 더 빨리 나은 것 같아서 너무 고마웠다. 사실 중국에서 입원 해 있을 때도 간호사언니들은 다 싹싹하게 잘 해주셨던 것 같다. 환자들이 워낙 많아서 조금 정신이 없긴 했지만..
그렇게 난 드디어 자유의 몸이 되어서 풀려 나왔다. 그 동안 못 마셨던 바깥세상의 공기를 마음껏 마시면서..그리고 내 인생의 새로운 장이 펼쳐지는 줄 알았다. 그 뒤에 또 다른 시련이 기다리고 있을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하고 말이다.
맹장수술을 마친 후 3,4개개월 지난 뒤, 배위에 난 콩알만한 상처를 빼곤 이 모든것이 이미 서서히 잊혀가고 있을 무렵.. 두번째 로또는 예고도 없이 찾아왔다.
그날, 신랑과 오랜만에 양재 카페거리에 위치한 일식집에 들려서 맛있는 밥을 먹기로 했다. 그런데 사건의 발단은 바로 일식집의 밑으로 뚫려져 있는 바닥이었다. 보통 일식집보다 조금 더 깊이 뚫려져 있는 바닥, 난 그날 따라 공교롭게 렌즈도 안경도 없이 나온 것이다. 자리에 들어서면서, 실수로 그만 발을 헛디디는 바람에 나는 바닥으로 그대로 꼬꾸라져 버렸다. 그러면서 아주 가볍게, 옆 테이블로 날아갔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튕겨나간 것이다. 순간, 뭔가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갑자기 일어난 호흡곤란 증세. 젠장, 여기서 이러면 안되는데.. 송곳으로 찌르는 듯한 통증이 순간 오른쪽 옆구리로부터 차오르면서, 나는 그 자리에서 신랑품에 쓰러지고 말았다. 그후 10초동안 나는 살려고 정신없이 발버둥을 쳤던 것 같다. 욕심을 부리면서 한껏 공기를 들이마셨다, 안 그러면 죽을 것 같으니까. 그 와중에도 잔 머리를 굴렸다, 사실 창피 하기도 했다. 바로 우리 왼쪽 옆 테이블 손님들이 나때문에 깜짝 놀라 연신 " 괜찮으세요?"하면서 신랑에게 묻는 얘기가 어렴풋이 들렸다.그래, 차라리 조금 더 있자.. 쪽팔리니까. 한참 후에, 조금 안정을 되찾은 나는 신랑의 부축하에 조심히 일어섰다. 그리고는, 아주 창피한 얘기지만, 포기하지 않고 꿋꿋하게 밥을 먹었다. 옆 테이블 손님도 지켜보고 있으니, 절대 이렇게 그냥 나가버릴수는 없는 일.
집에 돌아와 보니, 역시 오른 쪽 옆구리에 멍이 많이 들어있었다. 그래도 몸은 멀쩡하고, 움직일 수도 있으니 별일 없겠지 하면서 파스만 붙이고 잠을 청했다. 그 후 이틀동안 아무렇지도 않은 듯 정상 출퇴근을 했다. 그런데 3일째 되는 날, 통증이 서서히 심해지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호흡곤란을 느끼기까지 한 나는 그제서야 뭔가 불안한 느낌이 들어 , 퇴근 후 신랑과 함께 부랴부랴 병원을 찾았다.
이번에도 강남에 위치한 조그마한 정형외과였다. 하지만 더이상 불안하지 않았다. 지난번 맹장수술의 좋은 기억이 남아있으니^^. 그래도 적응하는데에 시간이 조금 걸릴 듯하다. 지금도 나는 강남에 자리잡고 있는 수많은 전문병원들을 보면 참 신기하다. 중국에서는 참으로 보기 드문 광경이다. 앞에서 말한 대로 중국에선 개인전문병원이 있어도 환자들이 거의 찾지를 않으니까 말이다.
병원에서 초음파를 찍고 난 후, 난 불안한 마음으로 진료실에서 의사선생님을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50대초반으로 보이는 남자의사 선생님 한 분이 들어오셨다. 그 분은 나의 CT사진을 자세히 보시다가 침착하게 말문을 열었다.
"어떻게 다치셨어요?"
"아, 레스토랑에서 부딪쳐서.."
"음, 많이 아프셨겠어요.."
"네? 네.. 좀 아프네요.."
"그렇죠, 뼈가 부러졌으니.. 그런데 그동안 어떻게 참으셨어요?"
응,응?? 부러졌다니? 누가? 내가? 이건 또 뭔 시츄에이션이래? 내 뼈가 부러졌다니 !!!!!
난 뼈가 이렇게 너덜너덜 한 채로 이틀동안 아무일 없듯이 출퇴근을 하고, 밥을 처먹고 그랬단 말이지?
너무 기가 막혔다. 아무래도 난 바보가 맞나보다. 맹장수술을 받은지 얼마나 됐다고, 이젠 뼈까지 부러지다니.. 오른쪽 9번 갈비뼈..
"선생님, 그럼 어떻게 하면 빨리 나을수 있을까요? 링거라도.."
"아니요, 그냥 진통제 좀 드시고, 가급적이면 움직이지 마시고 집에서 쉬셔야 해요."
역시, 여기선 링거는 필요없단다. 대신 진통제와 소화제 등 약들을 한가득 안고 풀이 죽어서 집으로 돌아갔다.
나는 지금도 내가 그 때 벌을 받아서 갈비뼈가 부러졌다고 생각이 된다. 송년회 때 난타를 하기 싫어서 하느님에게 건방지게 기도를 했다. "뼈라도 부러지게 하소서." 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결국 난타가 끝나고, 이렇게 잘못 된 타이밍에 정말 뼈가 부러지다니.. 역시, 기도는 아무나 하는것이 아니다.
최근에야 갈비뼈가 완전히 붙은 나는 이번에 건강검진도 받았다. 한국에선 처음으로 받는 건강검진이었다. 대체로 중국과 비슷하긴 한데, 검사항목이 조금 더 많았던 것 같다. 위내시경이나 대장내시경을 무료로 선택 가능한 것이다. 중국에선 필수사항에 내시경 항목은 없었다.
이렇게 나는 몇개월 안되는 사이에 온갖 검사를 다 받아보고, 온갖 CT를 다 찍어봤다. 아마 지금 내 몸은 방사능 투성일 것이다. 일본의 후꾸시마 원전의 수치보다는 조금 낮겠지만..
이렇게 파란만장한 나의 1년이 어느덧 마지막 12월을 가리키고 있다. 난 지금도 가끔 한국인이 참 행복하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항상은 아니지만 말이다(특히 일할때는 절대 아님.). 아플 때 병원에서 편하게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것이 얼마나 행운인지 아마 대부분 한국인들은 아직 모르는 것 같다.
그리하여,
올해 나의 크리스마스 소원은 조금 일찍 정해졌다.
나의 부모님이나,
친구들이나,
직장동료들,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모든 이들이
중국에서 편하게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그 날;
더 이상 병실때문에,
병원비때문에 걱정 하지 않아도 될 그날;
그런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복막염 총각, 길림 아주머니, 공사장언니,
우리의 자식들은 그들보다는 조금 더 나은 세상에서 살아야 하지 않을가?
이것이 나의 2013년
마지막 달
마지막 소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