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 짜장면, 잘리고 부러지고...생쇼를 하다

김치에게 빠진 짜장면

by 랑랑이

일단 고백부터 하고 이번 이야기를 시작 해야 할 것 같다. 난 사실......사실......사실은......장애인이다.


이건 또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냐고? 글쎄 내 말을 들어보라니까! 난 사실 일반인보다 내장기관이 하나 적다. 바로 인체의 내장기관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심장, 그건 아니고, 그 밑에 위? 아니 조금 더 밑으로 가서, 대장! 옳지 바로 거기!. 거기서 조금 더 오른쪽으로, 그리고 밑으로 쭉-쭉, 쭉쭉 뻗어서, 끝으로 가면 보이는 그 부분 -그 가늘고 조그만 꼬리부분... 의학용어로 충수돌기라고 하는 그 부분이 없다는것이 아닌가? 내 의사와 상관없이 난 내 소중한 충수돌기를 잘린 것이다.


한국에 온지 1년남짓 밖에 안되지만, 돌이켜 보면 그 동안 참 파란만장 했던 기간이었다. 그도 그럴것이 짧디 짧은 1년동안 맹장염때문에 한번 병원에 실려가고, 한번은 갈비뼈까지 부러지는 , 거기에 술취해 미친년 행세를 했다가 화상을 당한 "로또"를 맞았으니 말이다. 남들 같으면 한번도 닥칠까 말까 하는 악재를.. 난 연속 3연타를 ..


한국 오기 6,7개월전부터 맹장이 안 좋았던 건 사실이었다. 신랑이 갑작스레 한국으로 발령이 나는 바람에, 나는 어쩔수 없이 또 한번 인생의 갈림길에 들어서게 된 꼴. 떨어져서 사냐, 내가 다 포기하고 한국에 올거냐, 이것이 문제로다. 가족, 인생 이런 저런 고민의 늪에 빠져 허우적 대다가, 머리보다 몸이 먼저 반응을 하게 된 것이다. 그 날도 침대에 누워서 이런 저런 생각 때문에 잠을 못 이루다가 , 갑자기 슬슬 느껴지는 통증. 처음엔 배탈인가 해서 화장실에 가서 30분동안 눌러 앉아있기도 했지만, 좀 나아지는가 싶더니, 어느새 점점 더 심해졌다. 그래도 용케 밤새 참아내고, 그 다음날 아침 새벽에 병원을 찾았다.


멀쩡하게 생긴 젊은 남자 의사. 안경을 껴서 그런지 아주 부드러운 인상을 주었다. 하지만 그건 나만의 착각이었던 것. 내가 아프다고 징징대는것도 뒤로 하고, 아주 냉정하게, 여기 아프냐, 저긴 어떠냐 하면서 배를 여기저기 쿡쿡 찔러댔다. 아니, 사람이 지금 당장 죽는다는데도 어쩜 그리도 태연 할수 있지? 역시 의사는 남자도 여자도 아닌 , 그냥 의사였다.


젊은 안경쟁이 의사는 내 증상을 보고, 심각하게 눈살을 찌푸리더니 "일단 검사부터 받아보시죠"하는 거였다. 봐봐, 내가 그럴줄 알았어. 여기저기 쿡쿡 찔러대더니 하는 말이 고작 그거였어? 나는 울며 겨자먹기로 몸을 최대한 옹크리고 피검사부터 받기로 했다. 그보다 일단 먼저 수납을 해야 한다. 역시 병원이란데는 참으로 냉정한 곳이다. 돈 없인 절대로 갈수 없는 이 곳, 너의 이름은 바로 병원이로다! 다행히도 친정엄마가 옆에 계셔 난 딱히 할 것 없이 그냥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서 불쌍한 환자역할만 충실히 맡으면 됐다. 그리고 피검사, CT, 소변검사까지 한시간동안 생고생 끝에 겨우 다시 찾은 의사 진료실.


안경쟁이 의사선생님이 나의 CT 결과를 뚫어지게 쳐다보면서 내린 결과는 - 맹장염이란다. 정확하게 말하면 충수돌기염. 아직까지 의학적으로 발병원인은 명확하지 않지만, 내가 봤을 땐 분명히 스트레스 후유증이 틀림없다. 다행히 급성은 아니라서 당장 수술 받을 필요는 없지만, 향후 재발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가급적이면 수술을 받는것이 좋다고 한다.뭐 관리를 잘 하면 재발을 막을 수도 있다곤 하지만, 난 사실 자신이 없었다. 그렇다고 지금 당장 내 몸에 칼을 댄다는것도,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가 필요한 일.. 그래서 일단 중국의 만병통치수단 -링거를 맞고 결과를 지켜보기로 했다.


침대에 누워서 방울방울 내 몸속으로 비집고 들어오는 투명한 액체들을 보면서 나는 문득 신랑과의 링거 토론이 생각이 났다. 중국에서는 링거를 아주 그냥 약 먹듯이 맞는것이 보통이다. 배탈이나, 위장염이나, 심지어 감기도 병원에 가면 링거를 맞혀준다. 중국인들은 이에 아무렇지도 않은듯이 생각한다. 빨리 낫기 위해선 약보단 링거가 더 효과적일 수 있으니까 말이다. 나 또한 그러했다. 그런데 신랑을 만나고 나서 알게 되었다. 한국인들은 그렇지 않다는걸..


몇년전 아직 중국에서 지낼 때, 출장 때문에 한국에 온 적이 있었다. 그 때 음식이 잘 맞지 않아서 그런지 밤부터 슬슬 배가 아프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구토증세까지 나타나기 시작했다. 주말이라서 대부분 약국이 모두 문을 닫은 상태라, 신랑은 인터넷으로 급 검색한 끝에 겨우 강남에 24시 운영하는 약국을 찾아, 약을 사왔다. 난 내심 병원에 좀 데려가줬으면 하는 기대를 했지만. 처음엔 신랑이 귀찮아서 그런줄로만 알았는데, 후에 알고 보니 한국에서 원래 배탈이나 장염 같은 병은, 증상이 그리 심하지 않을 경우에 링거보단 약으로 처방을 많이 해 준다고 한다. 덕분에 난 밤새 격하게 전쟁을 치루는 장들을 부둥켜 안고 자야만 했다. 사실 그땐 조금 이해가 안되었다.


또 한번은 결혼 후 , 아직 중국 신혼집에서 살고 있을 때다.신랑이 심한 감기에 걸려서 열이 39도까지 치솟아 올랐다. 난 평소에 했듯이 병원 가서 링거를 맞자고 했지만, 신랑은 강하게 거절을 했다. 약 먹고 좀 자면 괜찮다고. 꼴에 남자라고 자존심인가보다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었던 걸. 신랑은 병원에서 링거를 맞혀주는것에 대해 전혀 이해를 못 한다는 눈치 였던 것이다. 그래서 결국 끝내 약만 먹고 용케 잘 버텨냈다. 사실 난 이것도 이해가 잘 안되었다.


그런 후 작년 11월달쯤 한국으로 이사 온 후, 주위에 친구나 동료들을 사귀면서 알게 된 사실. 대부분 한국인들은 모두 링거를 맞는것에 대해 그닥 탐탁해 하진 않는다 거였다. 일단 그리 심한 병도 아닌데, 링거를 너무 자주 맞으면 면역력도 떨어지고 몸에 많이 자극이 간다고 생각 한다. 그래서 약처방을 받을 때도 위장, 소화제와 같이 준다고 한다. 음, 역시 꼼꼼하고 세심한 나라인걸. 사실 생각해 보면 그것도 맞는 말이긴 하다. 하지만 중국인들은 일단 아프면 , 참는것보단 바로 병원으로 직행하는것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가장 빠르고 직방인 방법을 많이들 선택 한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링거가 최선의 선택일 수도 있겠지만.. 누구보다 자기 몸을 잘 챙기는 중국인이니까 말이다. ㅋㅋ


하여튼 이것이 나의 첫번째 발병이었다. 다행히 링거를 맞고 나서 금방 통증이 가셔지고 증세가 많이 호전되었다. 그 후 5일동안 꼬박꼬박 병원에 출입신고를 하면서 링거를 맞았다. 그렇지만, 그 땐 몰랐다. 이건 단지 시작일 뿐, 내 인생의 먹구름은 점점 많이 모이기 시작했단 걸..


그로부터 정확히 두달 후의 어느날 새벽, 똑같은 증세로 다시 병원을 찾아야만 했던 나. 이번엔 또 다른 안경쟁이 의사 선생님이 날 맞아주었다. 두달전의 CT 결과, 그리고 의사 소견서 등 내용을 보고 다행히도 이번엔 내 소중한 피를 앗아가겠단 잔인한 말을 꺼내진 않았다. 별 검사 없이 바로 링거 투입. 하지만 어쩐다? 이번엔 만병통치 링거도 안 먹히는걸.. 증상이 좋아지기는 커녕 점점 더 아프기 시작한 것. 어, 이게 아닌데?? 거기에 대한 넘버2 안경쟁이 의사선생님의 침착한 대답:

"원래 그럴 수 있습니다. 링거를 너무 많이 맞아서 더이상 효과가 없을 수도 있으니, 가장 좋은 방법은 수술을 받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뒤를 이은 얄미운 한 마디:

" 그런데 어쩌죠? 지금 우리 병원에 병실이 없어서.. 다른 병원에 한번 가보시는건 어떨까요?"

젠장, 젠장, 젠장, 지금 .. 이런 꼬락서니를 하고 어딜 가란 말인지..ㅠㅠ


결국 난 최후의 히든 카드를 쓸 수 밖에 없었다. 우리 가족의 빽을 동원 하기로 한것이다. 나의 사랑하는 사촌 오빠, 즉 우리 엄마의 언니의 아들에게 부탁 하기로 했다. 무역수출업 사업을 하는 오빠라 워낙 인맥이 넓은 분이다. 사촌오빠는 즉시 지인을 통해 다른 병원을 알아봐주셨다. 그런 후 나는 꼬부랑할머니 꼴을 하고는 사촌오빠가 알아봐 준 다른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에 도착한 나는 그날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역시 중국은 인구가 참 많다는것을. 그래서 비율로 따지면 환자도 엄청 엄청 많다는 것을 말이다. 환자들로 이미 꽉 차있는 병실들을 보고 난 입을 다물지 못했다. 하지만 날 더 경악하게 한 것은 병실이 아닌, 병실밖 복도에 기다랗게 늘어져 있는 침대들, 그리고 그 위에 있는 ...환자들이었다.


대체 이 많은 환자들은 어디서 왔단 말인가? 중국인들은 대부분 모두 국가 소유 병원을 많이 찾는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일단 시설이 개인병원보다 좋고, 의료진 수준 또한 훨씬 높고, 훨씬 안전하다. 개인이 차린 전문병원도 있지만, 의료사고가 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대부분 개인병원은 사람들에게 홀대를 많이 당한다.


그리고 그 후 며칠동안 난 이 병원에 환자가 이토록 많은 다른 한가지 이유도 차차 알게 되었다. 이렇게 난 빽까지 동원 해서, 감격스럽게도 드디어 병동에 내 자리를 얻었다. 병실 안은 아니고, 병실밖 복도에, 그것도 화장실 옆에 자리잡은 아주 "아늑한" 자리였다. 난 드디어 이 기다란 줄에 합세하게 된 것이다. 입원 수속을 마친 후, 어색하게 침대에 걸터 앉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을 무렵, 우리 사천오빠가 찾아준 빽이 드디어 오셨다.


외과 과장님 되신단다. 40대쯤 되는, 머리가 약간 벗겨진 아저씨였다. 대머리선생님은 나를 보시더니, 아주 싹싹한 톤으로 괜찮은지 물어보셨다. 그리고 전에 넘버1 안경쟁이 선생님이 했던 대로 내 배를 이리저리 쿡쿡 찔러대더니 머리를 갸우뚱 거리면서 하시는 말씀:

"이상하네, 붓지는 않았는데, 맹장염이 아닌 것 같은데?"

나는 부랴부랴 두달 전에 찍었던 CT를 대머리선생님에게 건넸다. 그 분은 CT결과를 자세히 훑어보시더니, 또 내 속을 후비는 말씀을 하셨다.

"CT로 보았을 땐 맹장염이 맞는데, 이미 두달이 지났기 때문에 확실치는 않습니다."

"일단 링거를 맞아서 염증을 치료하고 , 결과를 좀 더 지켜 봅시다."

젠장, 이놈의 링거는 대체 언제까지 맞아야 되는거냐고!!!


나는 결국 병원 복도에서 6일동안 지내면서 하루 8시간동안 포도당이랑, 기타 등등 이름 모를 액체만 계속 먹어대기만 했다, 입이 아닌 몸으로 말이다. 그러면서 나는 여태껏 경험 해 보지 못했던 다른 세계를 보게 되었다. 고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이 시대의 뒷면에 숨겨져 있는, 아주, 암흑한, 그리고 비참한 세계를 말이다.


내 자리는 화장실 옆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한것이 있었다. 내 자리 바로 맞은켠에 계단으로 통한 문이 있다는것. 그래서 문이 열릴 때마다 바람이 슝슝 들어온다. 그러면서 화장실의 묘한 스멜까지 함께 바람을 타서 슝슝 코끝으로 날아들어온다. 나는 이불을 꽁꽁 덮어쓰고 누운채, 말똥말똥 방울방울 내 피부를 침범하는 이놈의 액체를 뚫어치게 쳐다 볼 수 밖에 없었다. 통증이 서서히 가라앉을 무렵, 난 드디어 정신을 차리고 주위 낯선 환경을 둘러볼 여력이 생겼다.


가장 먼저 눈에 띈건 20대초반의 팔팔한 젊은 총각이었다. 실은 총각보다도 복도 구석에 자리잡고 있는 그 은밀한 위치가 내 시선을 더 끌었던 것이다. 난 몰래 그 자리를 찜해놓았다. 이 총각이 나가면 내가 들어가야지 하는 비굴한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젊은이는 옆구리에 이상한 봉지를 하나 달고 다녔다 . 알고 보니, 맹장수술을 받았다고 한다. 그런데 맹장이 터지는 바람에, 배속에 남은 찌꺼기나 쓰레기 등을 깔끔하게 제거 하기 위해 한동안은 봉지를 달고 다녀야 한다고 한다. 음, 나도 언젠간 이 말썽꾸러기 맹장이 터져야, 끝을 볼 수 있나보다..휴. 총각은 빨리 퇴원하고 싶은지, 하루에 몇시간동안 쉴새 없이 걷기만 했다.


그리고 내 침대 왼쪽 맞은 켠 침대. 40대후반의 여성환자가 자리 잡고 있었다. 유방혹 제거 수술을 하러 왔다고 한다. 몇달전에 예약 해서 얻은 자리란다. 이런 자리라도 얻었으니 이 얼마나 다행이냐라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남편과 같이 온 여성은 성격이 아주 활달 하고 붙임성이 있어 보였다. 멀쩡한 내가 병원에서 링거를 맞고 있는 걸 보고 궁금 했는지 나에게 넌지시 물어본다.


"저기 보아하니 나이도 젊은것 같은디 ,어디가 아픈거유?"

"아, 저요? 저.. 맹장염 같다고는 하는데, 일단 링거를 맞고 결과를 지켜보고 있는 중입니다. 아주머닌 어디서 오셨어요? 여기 분은 아니신거 같은데.."

"아, 나유? 난 길림에서 왔어유.."

헉, 5시간 기차를 타고 대련까지 왔단 말인가?

"길림에도 병원이 있지 않나요? 그런데 왜 굳이 멀리 여기까지 오신거에요?"

나는 그 이유가 궁금 했다.

"병원이 있어두 여기만 하겠슈? 대도시에 병원이 훨씬 좋지유.."

여기 병원이 유방혹 제거 수술이 괜찮다고 해서 일부러 찾아온 거라고 한다. 여기 병원이 언제부터 이렇게 유명했었지? 난 왜 몰랐을까?


나는 아주머니와 이런 저런 수다를 떨면서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었다. 중국- 이 넓디 넓은 땅덩어리에 구석구석 모두 병원을 짓는단건 그리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경제가 많이 발달되고, 넓은 지역엔 큰 병원을 많이 짓는 법, 그렇지 않을 경우엔 큰 병원을 찾기도 힘들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병목현상이 생기는것 같다. 즉 아프면 무조건 큰 병원, 큰 병원은 무조건 대도시, 대도시에서도 가장 안전한 건 정부에서 운영하는 병원.. 결국 이렇게 한곳으로 쏠리는 현상이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


병원 뿐만 아니라, 학교도 마찬가지다. 뭐 요즘은 부잣집 도련님들이 사립귀족 학교를 점점 많이 찾기 시작하는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국가에서 운영하는 공립학교가 가격이 그나마 조금 저렴하고 인기가 제일 많다.

길림아주머니가 수술을 마친 첫날 밤, 남편은 밤새 그 옆을 지켰다.


보통 환자 가족들은 하룻밤 50원씩(9000원정도)하는 침대를 빌려서 복도측 빈 자리에서 잤다가, 아침 일찍 다시 병원측으로 돌려줘야 한다.복도의 구석구석마다 환자들을 위한 소중한 자리니까 낮에는 자리를 내 줘야 한다. 처음 이틀동안은 친정엄마도 그렇게 주무셨다. 그러다가 내가 조금씩 회복할 때쯤, 낮에는 병원에서 저녁에는 집으로 들어가셨다. 운좋게 집이랑 병원이 가까워서 다니기 편했다.


길림 아주머니가 수술을 받은 지 이틀째 되는 날, 남편되는 분이 갑자기 사라져버리고, 다른 여성 한명이 와서 길림아주머니 옆에서 간호를 해줬다. 알고 보니, 남편은 직장때문에 오래 쉴수가 없어, 아침 첫차로 이미 다시 길림으로 떠났다고 한다. 휴, 저런...


며칠이 지난 뒤, 난 조금 좋은 자리로 진급 할 수 있게 되었다. 그 복막염 걸린 총각이 병원의 독촉에 못이겨 결국 일찍 퇴원을 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난 그 화장실 옆, 바람 슝슝 들어오는 문 맞은켠 자리로부터 드디어 탈출하고 조금 안쪽으로 진급하게 되었다. 그러나 내가 원했던대로 총각의 자리를 꿰차지는 못했다. 워낙 나보다 빠른 사람이 한둘이 아니라..


그리고 내가 있었던 그 최악의 자리에 또 다른 환자가 들어왔다. 난 사실 지금까지 그 환자분 얼굴도 기억이 안 난다. 아니, 사실은 그 환자분 얼굴을 본적이 없었던 것 같다. 입원하자마자 바로 수술 들어갔다고 한다. 그리고 수술이 끝난 뒤, 바로 병원 복도에 위치한 자리로(바람 슝슝 들어오는 바로 그 최악의 자리)로 실려왔다, 아직 마취가 덜 깬 상태로 말이다. 그러다가 갑자기 쇼크상태가 발생해서 한사코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난 여기서 생생하게 "그레이아나토미"를 보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저쪽 켠에선 환자 가족들이 병원측에 심하게 컴플레인을 하고 있었다.

"이게 대체 말이 되냐구요!! 예? "

"우리가 병실 예약한게 언제인데, 어떻게 이딴식으로 수술을 금방 마친 환자를 병원 복도에다 방치해 둔단 말이요!!! "

"이러다가 우리 엄마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당신네들 책임질 수 있냐구요!!"


그리고 그 다음날, 그 환자분은 바로 병실로 옮겨졌다. 음, 그래도 가족들이 옆에서 난리를 친것이 어느정도 효과를 본 듯 하다. 한편으로는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도 , 그냥 웃고 지나치기엔 너무 씁쓸한 현실..

그리고 며칠 뒤, 길림 아주머니가 퇴원 하고, 그 자리에 새로운 주인이 들어왔다.


키가 아담하고, 순박한 시골옷차림을 한 30대초반으로 보이는 젊은 여성이었다. 옆엔 젊은 남성이 같이 따라왔다. 공사장에서 일을 하는 부부라 한다. 여성이 일을 하다가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바람에 , 다리를 다쳤다고 한다. 요즘 대체 왜 이렇게 다치는 사람이 많을까? 특히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말이다.. 여성은 흐느끼면서 주위 환자들에게 하소연을 했다.


"흑흑, 우리 공사장 팀장님께서 , 개인적인 실수라 돈을 많이 못 줄 수 있다고 하시네요"

"쯧쯧, 이런 나쁜놈이니라구.. 신고를 해요. 이런 놈은 신고를 해야 되!"

"아니야, 신고를 한다 하면 그 쪽에서 더 안 줄수도 있어. 불러서 잘 좀 얘기를 해야지!"

"일단 병원비라도 어떻게 받아야 하지 않겠나?"

옆에서 너도 나도 한마디씩 끼면서 젊은 여성을 위로해 주었다. 알고 보니 젊은 부부는 복건성(중국 남쪽 지방)에서 온 *농민공(농촌을 떠나 도시에서 일하는 중국의 빈곤층 노동자)이었다. 집에 6살 되는 아들을 친정어머니에게 맡겨두고 돈 벌기 위해 대련으로 왔다고 한다. 그런데 일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이런 사고가 날줄이야. 공사장 팀장이란 놈은 일을 얼마 하지도 않고 사고가 났다면서 봉급도 못 주겠다고 모르쇠로 일관 하고 있다. 그나저나 병원비도 꽤 들텐데..


그날 밤, 난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내가 착해서 그런건 아니고, 그 언니의 밤새 흐느끼는 울음소리 때문에 도저히 눈을 붙일 수가 없었다. 그 옆을 남편은 조용히 밤새 지켜줬다. 물론 50원씩 하는 침대를 빌리지 않고, 의자 두개를 붙여서 몸을 맡긴채로.. (그 의자는 착한 내가 빌려드린 것이다.). 나는 너무 궁금 했다. 과연 그 공사장 팀장이란 놈은 정말로 직원이 다쳤는데도 나 몰라라 할것인지?


공사장 여성이 입원한 그 다음날, 같은 공사장에서 일하는 동료로 추정되는 건장한 남자 몇명이 병원을 찾았다. 내가 알아듣지 못하는 지방사투리(복건말로 추정됨.)로 뭐라 뭐라 하더니, 주머니에서 100원짜리 현금을 몇장 꺼내고, 여성의 손에 쥐어주는 것이었다. 젊은 여성은 돈을 받고 연신 눈물을 훔치면서,허리를 굽실 거렸다. 휴, 다행이다, 죽일놈의 공사장 팀장놈은 안 왔지만, 같은 고향 친구들이 이렇게 모은 돈으로 일단 병원비는 해결이 됐다는 생각에 나도 안도의 숨을 내 쉬었다. 오늘은 그래도 단잠을 잘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그날 오후, 누워있기 너무 심심해, 혼자서 산책 갔다 돌아온 사이, 간호사언니가 공사장 언니의 침대를 정리하고 있는것이 아닌가?

"어, 언니, 여기 환자분은요?"

"아, 이 분 방금 퇴원 하셨어요"

"네??..."

결국 부부는 고향친구로부터 받은 돈을 병원비에 쓰기엔 너무 아까워, 간단하게 응급치료만 받고 퇴원을 한것이다. 그래도 그렇지, 나중에 후유증이 있을텐데.. 나는 텅 빈 침대를 바라보며 한동안 목석처럼 그 자리에 굳어있었다.


공사장 언니 탈출 사건을 겪고, 난 기분이 많이 다운 되어 있었다. 이 모든 것이 많이 혼란스럽고, 또 실망 스러웠다.마침 그 때 친한 친구 몇몇이 병문안을 오겠다고 했다. 난 사실 처음에는 한사코 만류를 했다. 화장실 자리가 뭐 그리 자랑할 만한 자리는 아니니까. 그래도 결국 여자 몇명이 과자와 음료수를 사 들고 기세등등 병원에 들이닥쳤다. 병원 복도에 방치해 둔 나를 보고, 그 친구들이 받았을 충격을 나는 이해를 한다. 나도 처음 여기에 왔을 땐 그들과 똑같은 뭐 씹은 표정이었으니까. 그 중에서도 가장 마음이 여린 친구는 결국 참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이 놈의 병원, 대체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사람을 어떻게 복도에다 버려놓고 ...흑흑.."

"아이고, 왜 울고 지랄이야, 나 며칠만 있으면 병실로 옮길수 있을지도 몰라. 그리고, 나 그래도 환자복이 어울리지 않냐? 흐흐.."


친구들앞에서 최대한 밝게 보이려고 노력했다. 사실, 열악한 환경이라지만, 나보다 더 힘든 사람이 이 곳에 널리고 널려서 난 내가 힘들다는 얘기를 차마 입 밖에 낼 수 없었다. 내가 살고 있는 이 좁은 도시도 이 정도라면 , 베이징이나 상하이같은 대 도시는 하루에 얼마나 많은 환자를 받을지, 그리고 환경은 얼마나 더 심각할 지 상상이 간다.


입원한지 6일만에 나는 드디어 병실 구경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할렐루야!! 그것도 4인실로말이다. 역시 중국에서 꽌시(빽)라는 강력한 파워를 실제로 체감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멀쩡한 나는 주위의 시기와 질투의 시선을 한몸에 안고 보란듯이 아늑한 병실로 옮겼다. 그렇지만 솔직히 편하지만은 않았던 건 사실이었다. 나를 제외한 기타 모든 환자들은 모두 수술을 앞두거나, 수술을 갓 마친 중환자들이었으니.


병실도 그닥 맘에 들지는 않았다. 말은 아늑하다지만, 실은 그냥 침대 4개를 둔 방이었다. TV는 물론 없고, 개인소지품을 넣을 수 있는 작은 수납함이 있었다. 그래도 복도보단 낫지 않은가? 암, 아무렴, 천만배 낫지..

이 조그마한 병실에서 난 하루종일 뭐 마려운 강아지마냥, 안절부절 못했다. 수술을 마친 환자는 병실로, 어느 정도 회복이 되고 있는 환자는 다시 병원 복도로 나가야만 했다. 난 다행히도 든든한 빽이 있어서 그리 걱정할 필요는 없었지만..눈치 보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매일마다 들어오는 새로운 환자들, 그리고 그들의 아픈 사연들을 두 눈으로 지켜봐야만 하니, 이 또한 나에게 참을 수 없는 고통 이었다.


나는 병실에서 8일정도 더 지냈다. 다행히도 병원과 집이 멀지 않아서, 간간이 집에서 자기도 했다. 솔직히 난 내가 왜 병원에 있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링거를 10일 넘게 맞고, 이젠 통증도 거의 가셔졌다. 병원측도 수술 해 줄 생각은 꼬물만치도 없는 듯 하고.. 그래도 친정엄마는 힘들게 잡은 병실인데, 혹시 그 사이에 또 재발 하면 다시 병실을 잡기가 어려울 테니, 조금만 더 지켜보자고 하셨다.그렇게 나는 가장 할 일 없고, 가장 멀쩡한 환자취급을 받으면서 병원에서 눈치밥을 먹으며 버텼다.


결국 나는 그렇게 14일 동안 병원에서 비참한 세계를 한바퀴 구경을 하고, 그 재수 없는 꼬랑지를 그대로 달고 퇴원을 하게 됐다. 젠장, 그때 누군가 한명 과감하게 내 몸에 칼을 댔어야 하는건데..그걸 달고 한국까지 와서 고생을 하게 될줄 알았으면 그 때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잘라버리는거였는데..

퇴원 할 때 그 대머리 빽 선생님은 나에게 신신당부 했다.

"염증은 거의 치료가 되었으니, 이제부터 몸 관리를 잘 해야 돼요."

이에 대해 나는 할 말이 없었다.

------------------다음편 계속----------------

<작품 제목: 링거 소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