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랑랑이 Aug 11. 2015

초록 벌레의 기적  

내가 본 세상 

오늘의 이야기는 이 녹색 벌레로 시작하려고 한다. 


작년 10월에 신랑과 함께 이태리 여행에서 겪었던 일화다. 토스카나에서 와이너리 투어를 마친 우리, 너무나 아름다운 주위 풍경에 홀려 이곳에 조금 더 머물기로 했다. 레스토랑 야외 자리를 고른 우리는, 화창한 가을 날씨와 산들산들 불어오는 바람에 취해 기분이 한껏 들떠 있었다. 식사 전, 마른 목을 추스르려고 테이블 위에 놓인 물컵에 손이 갔다. 그러다 깜짝 놀라 비명 아닌 비명을 지른 나 : "어머! 이거 뭐야?! 벌레! 징그러워!"  다시 보니, 웬걸! 투명한 컵 안의 물 위에 동동 떠있는 정체불명의 초록색 벌레 한 마리!  왠지 모르게 갑자기 기분이 불쾌해졌다. 재수 없게 웬 벌레가 하필이면 내 물컵에 떨어질 줄이야! 그리고 급기야 레스토랑의 세심하지 못한 서비스에도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신랑과 나는 단단히 벼르고 식당 종업원을 불렀다. 가벼운 걸음으로 총총 걸어오는 순박해 보이는 금발 아가씨, 그 밝은 웃음을 애써 외면하고 일부러 무뚝뚝한 표정을 지은 신랑과 나. 그리고 거만하게 손가락으로 컵을 톡톡 치면서 따지는 듯 물었다. " See! What's this?" 그리고 돌아온 젊은 아가씨의 대답에, 우린 적잖게 당황했다.


일반적으로 한국에서 이런 일이 생긴다면 흔히들 보는 장면은 이렇다. 손님의 불쾌한 질문 : "저기요! 이게 뭐죠?" 그리고는 이내 90도 인사로 굽신거리며 사과하는 종업원 : "정말 죄송합니다, 손님, 죄송합니다..."  최악일 경우 식당 매니저까지 나와서 사과를 해야 할 거다. 그뿐이겠는가? 사과의 표시로 식사 또한 공짜로 대접하는 센스가 있어야 완벽하지 않겠는가? 


중국에서라면 어땠을까?

손님의 불쾌한 질문 : "이게 뭐죠?"

그러면 종업원이 90 도는 아니지만 45도 각으로 인사를 하면서 사과를 할 거다. 그리고는 조금 내키지 않는 목소리로 "죄송해요" 하면서 사과를 할 거다.(물론 얼굴엔 누가 봐도 "내가 왜 사과를 해야지"란 표정을 지으면서 말이다^^)


그렇다면 다시 이태리로 돌아가자. 그 밝은 웃음을 가진 아가씨는 과연 우리에게 뭐라고 했을까? 


"Oh, How Beautiful!"


진짜 헐이다! 지금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어 오른 우리 앞에서, 눈치 없는 여자는 이 징그러운 벌레가 예쁘다고 찬양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신랑과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인정하기 싫었지만, 그 여자의 말대로 햇빛에 반짝반짝 빛이 나는 이 초록색 물건은, 한마디로, 꽤... 귀여웠다, 아니, 사실은... 좀 많이 예뻤다. 주위에 아득하게 펼쳐져 있는 푸른색의 포도밭, 그리고 초록색 나뭇잎과 너무나도 어울릴 정도로 말이다. 우리는 물 잔을 가져가는 여인의 뒷모습이 멀리 사라질 때까지 바보처럼 멍하니 쳐다보기만 했다. 


지금도 신랑과 나는 "벌레 사건"을 자주 얘기한다. How Beautiful! 정말 쉬운 말임에도 불구하고, 우린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왜 화부터 먼저 났을까? 각박한 도시 생활과 스트레스에 이미 풍부한 상상력과 아름다운 감성, 그리고 긍정정인 마음을 잃어버리지는 않았을까 더럭 겁이 난다. 


요즘 보복운전 관련 기사가 많이 나오는 것 같다. 이런 기사를 볼 때마다 너무 안타깝다. 언제부터 우린 이렇게 분노가 차넘치는 세상에서 살게 된 걸까? 어쩌면 우리 마음속에 차오르는 분노를 터뜨릴 데가 필요한 건지도 모르겠다. 


조금만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조금만 다른 시선으로 이 세상을 바라본다면, 

징그러운 벌레가 욱실거리는 세상이 아닌, 반짝반짝 빛이 나는 초록 요정들이 춤추는 세상을 맞이할 수도 있지 않을까? 


힘들고 지칠 때, 그리고 우울하고 화가 날 때, "How Beautiful!"를 소리 높여 외쳐보는 건 어떨까? 어쩌면, 그러는 순간, 우린 정말 아름다운 세상으로 한 발짝 더 다가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작가의 이전글 4. 세상에서 가장 로맨틱한 세.글.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