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를 앞두고
교육전문직 시험에 최종 합격한 나는 9월 발령을 기다리고 있다. 02년 3월에 발령이 났으니 총경력은 23년 6개월이다. 어젯밤 산책하는 길에, 송별회에서 마지막 인사말을 어떻게 할지 생각했다. 시작 문구는 ‘이 순간이 기어이 오고야 말았네요.’로 하기로 했다. 이 순간이란 무엇일까. 새로운 변화를 시작하는.
어린 라니는 특별한 재능이 없었다. 선생님께 제출하는 일기장에 이러한 나의 평범함을 고민하는 내용을 적어서 내고, 이에 선생님께서 다정한 피드백을 답글로 적어주셨던 기억이 난다. 온순한 성격이라 선생님께서 하라는 과제나 공부를 충실히 했던 평범한 모범생이었다. 어린 라니 주변에는 좋은 어른이나 훌륭한 어른이 보이지 않았다. 눈에 보이는 좋은 어른들은 대부분 선생님이었고 그 선생님들은 나를 칭찬으로 성장시켜 주셨다. 4학년 때 성적이 계속 오른다며 반 친구들 앞에서 나를 칭찬했던 담임선생님, 6학년 때 ‘공식의 왕‘이라며 나를 치켜세워주셨던 정해공 선생님 덕분에 양가 일수였던 내 성적표는 국민학교를 졸업할 때는 ’ 올 수‘를 받았다. 매콤하게 학생을 훈육했던 중1 담임선생님, 과학 시간에 낸 일기도 분석 과제물을 보시고는 ‘기상캐스터‘같다고 칭찬하셨던 중2 박양자 선생님, 50점대였던 중간고사 수학성적 대비 기말고사에서 100점을 받았다고 나를 의자에서 일으켜 세워 친구들 앞에서 칭찬해 주셨던, 너무나 멋졌던 정치명 선생님 덕분에 나는 고등학교 내내 수학이 너무 좋았었다. 글을 쓰는 이 순간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이유를 나는 알고 있다.
24세 라니가 교사가 되었을 때, 교직이 나에게 정말 안 맞는다고 생각했다. 목소리는 작고, 겁이 잔뜩 든 채 교탁에 서던 초보교사. 그 시절 학생들에게 ‘선생님 너무 착해요’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이 말은 계속 들어왔다.) 그렇게 적성이 맞지 않으면서 그만둘 생각을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던 게 신기하고 대견할 따름이다. 24세 라니는 교직 외에 다른 길은 생각지도 않았던, 시야가 좁은 초보 사회인이었다. 하지만 힘든 가운데서도 과학을 공부하는 것은 즐거웠다. 교육 과정에 있으니까, 시험을 봐야 하니까 해야 하는 공부에서 벗어나 수업을 준비하기 위해 깊이 있게 과학을 접하면서 알아가는 즐거움이 있었고, 이러한 나의 즐거움이 수업 시간에 학생들에게 조금 전해졌으리라.
두 번째 학교에서도 교직은 내게 너무 힘들었고, 상처로 너덜너덜해진 마음을 밤새 기워 붙이며 출근을 이어나갔다. 터닝포인트는 출산과 육아였다. 첫째 아이를 출산하고 7개월 후 복직했는데, 나는 이상하게도 야들야들해져 있었다. 거친 학생들로부터 나를 방어하기 위해 잔뜩 날이 서 있던 나는, 이때부터 애들이 조금씩 예뻐 보이기 시작했다. 하나라도 더 듣고, 더 배우게 하기 위해 먹을 것을 아낌없이 제공했고 과학 기사 소개하기, 코넬식 노트 필기 등 나의 교사 도구도 하나씩 만들어나갔다. 첫째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나는 또다시 1년 휴직을 했고 이때 이러저러한 일들로 진짜 내 모습을 직면하며 뒤늦은 사춘기를 거치면서 비로소 일의 감사함을 갖게 되었다. 이 시기에 나는 많이 읽고 많이 들으며 자신에 대해 알아갔다. 복직 후 한동안 나는 아침마다 나가서 일할 수 있음에, 적성에 적당히 맞는 직업이 있으며 돈까지 벌 수 있음에 감사하다고 기도를 했다.
세 번째 학교에서부터 내가 교사로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고, 네 번째 학교에서 드디어 내가 교사라고 자각하기에 이르렀다. 네 번째 학교에서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수업을 마음껏 했고, 과학교사로서 할 수 있는 다양한 탐구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이때의 경험이 전문직 공부의 좋은 밑재료가 되었다. 그때는 몰랐지만, 이 시기에 나는 교사로서 가장 열심히 일했다. 그리고 동료 교사의 권유와 안내로 자연스럽게 교육 전문직으로의 전직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도전과 변화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변화에 저항하는 마음의 관성은 매우 강했다. 40대가 되면서 겨우 맞아진 교사의 옷을 낮 동안 입고, 저녁에는 읽고 듣고 운동하는 삶이 만족스러웠다. 굳이 안 해도 되는 도전과 변화를, 하고 싶지가 않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미래의 라니가 도전을 안 한 것을 두고 후회하고 싶지 않았다. 도전에 실패하더라도, 도전조차 안 한 것이 더 후회스러울 것이 분명하므로, 도전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오래 일하고 싶었다. 평교사로 정년까지 일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고, 남편이 내 도전을 응원해 줬다. 남편은 내가 그만두고 싶다고 하며 약한 모습을 보일 때마다 나를 북돋아 주었다.
교사의 정체성을 가진 지 얼마 안 된 나는, 3년간 교육 정책을 공부하면서 시야가 넓어졌고 교육 전문직의 마인드를 자연스럽게 장착하게 되었다. 하지만, 발령을 하루 앞두고 있는 지금도 나는 교사이고 앞으로도 계속 교사일 것 같다. 교사가 된 지 얼마 안 된 내가 이제 변화를 시작하려고 한다. 앞으로 나에게 펼쳐질 불투명한 미래가 두렵기도 하다. 일의 강도는 얼마나 셀지, 초근은 얼마나 자주 할지, 내가 못하는 일이 나에게 맡겨지면 어떻게 해야 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화는 값진 것이다. 도전하지 않았더라면 몰랐을 세계를, 나는 경험할 것이다. 모르던 것을 새롭게 알아가는 즐거움을 충분히 즐길 것을 다짐한다. 그 가운데 나를 아껴주는 것을 잊지 말자. 나에게 식이섬유를 먹이고, 가끔씩 달리고, 흔들리는 앞니를 붙들어줄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