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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하지만 특별한, 나의 엔딩크레딧을 꿈꾸며

라온's 엔딩크레딧

by 라온


엔딩크레딧에 이름을 올리는 건, 내가 잘 살고 있다는걸 가족들에게 보여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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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상예술대상에서 진행팀장으로 일을 하던 중 이 말을 듣고 한동안 영상을 멍하니 바라보고 생각에 잠겨 일을 했다. 화려한 무대와 박수, 스포트라이트 뒤에서 묵묵히 일하는 수많은 사람들. 나는 바로 그 무대 뒤, 이름 없는 한 줄을 꿈꾸며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 사실이, 어느 순간부터는 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자부심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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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2002년 대한민국이 붉은 악마 물결로 뜨거웠던 월드컵에 태어나 대학교에 다니고 있는 두산베어스를 사랑하는 평범한 대학생이다. 하지만 내 하루는 남들과 조금 다르다. 21학번으로 입학한 20살, 코로나로 모든 것이 멈췄던 시절, KBS 드라마 소품팀과 기획팀에서 1년간 일했다. 세상이 멈춘 것 같아도 현장은 결코 멈추지 않는다는 걸 그때 알았다. 누군가의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그곳에서, 나는 작은 소품 하나를 챙기며 ‘내가 이 현장에 꼭 필요한 사람일까?’라는 질문을 수도 없이 했다. 그 질문은 지금도 내 마음속에 남아, 내가 어떤 현장에서든 진심을 다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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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주로 주말 황금시간대 드라마 오! 삼광빌라, 국가대표 와이프, 오케이광자매, 빨강구두, 신사와 아가씨, 달리와 감자탕 등 소품팀으로 여러 드라마에 참여하면서, 특히 “신사와 아가씨”에서 주인공 지현우 배우와 함께한 경험이 깊은 인상을 남겼다. 프로그램의 방영시간은 1시간 남짓이지만, 실제 촬영은 거의 6시간 가까이 이어졌다. 어느 날, 함께 출연한 단역 배우에게 힘들지 않냐고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저는 연기를 하고 싶어서 10년간 무명 시절을 견뎌냈던 사람입니다. 방송에 출연할 수만 있다면 목숨 걸고 열심히 하겠다고 생각했어요. 다시 무명을 겪고 싶지 않고, 방송에 나오지 못했던 그 시절에 비하면 지금은 전혀 힘들지 않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힘차게 파이팅을 외치며 녹화에 임하는 그의 모습은 정말 빛나 보였다. 이 경험을 통해, 사회의 어두운 이면을 비추어 밝게 만들고, 소외된 이들이 있다면 포용할 수 있도록 변화를 이끌어가는 것이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임을 다시금 깨달았고 앞으로도 이 본분을 잊지 않고, 사회를 위해 일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다짐을 새롭게 하게 되었다.


KBS 이후 나는 더 넓은 현장으로 나아갔다. 2021년 XIA 준수 콘서트에서 게이트 검표를 시작으로, 드림콘서트, 백지영·이승철·거미·김성규·이찬원, JX, G-Dragon 등 국내 정상급 아티스트 콘서트, Dua Lipa, Charlie Puth, 후지이카제,Official髭男dism, 콜드플레이, Guns N’ Roses, One Republic, Benson Boone, Kehlani, Suede, Nothing But Thieves 등 내한 공연까지, 정말 다양한 무대에서 스태프로 일했다. 내가 맡은 일은 게이트 검표, 관객 동선 관리, 백스테이지 업무, 공연장 안전관리, 아티스트 출입구 관리, 공연 오퍼레이션 셋업, 통역, 컨트롤룸 운영, 진행팀장 등 다양했다. 청년의날 축제, 충주 다이브 축제, 카스 쿨 페스티벌, 글로벌 탤런트 페어, FRIEZE SEOUL,, AWS Summit 등 대형 행사에서도 VIP 응대를 포함한 내 역할은 늘 현장의 중심에 있었다. 관객 1만 명이 넘는 대형 콘서트부터 아티스트와 팬이 가까이 소통하는 팬미팅, 글로벌 기업들이 모이는 박람회까지, 내가 맡은 역할은 늘 달랐고 그만큼 책임감도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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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위에서 환호하는 관객과, 무대 뒤에서 분주하게 움직이는 스태프들, 그 사이에서 나는 늘 ‘노란 신호등’처럼, 짧지만 강렬하게 내 역할을 다하려고 애썼다. 누군가의 기억에 남지 않을지라도, 그 순간만큼은 내가 현장을 지탱하는 작은 빛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를 ‘노란 신호등’에 비유한다. 캠퍼스를 걷다 올려다본 하늘, 그 사이를 가로지르는 신호등. 빨간색과 초록색 사이, 단 3초 동안만 빛나는 노란 신호등. 자기 자리가 분명하지 않지만, 그 짧은 순간을 온 힘을 다해 빛내는 모습이 내 신념과 닮아 있다. 어디서든 주인공이 아니지만, 내게 주어진 순간만큼은 누구보다 치열하게, 의미 있게 살아가고 싶다. 누군가에게는 잠깐 스쳐가는 존재일지라도, 그 짧은 순간이 누군가의 길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으로, 나는 오늘도 나만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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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이번 콜드플레이에서는 6일간 34만 명이 모인 콜드플레이 내한 공연의 치열한 현장 한가운데서, 나는 공연기획자의 꿈을 안고 수많은 스태프와 함께 무대 백스테이지에서 일을 하며 무대 세팅부터 안전, 통역, 실무까지 모두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는 그곳에서, 예상치 못한 상황에도 팀워크와 소통으로 문제를 해결하며 성장했다. 크리스 마틴이 무대 뒤 모든 이들에게 전한 감사처럼, 나 역시 공연이란 수많은 사람들의 땀과 헌신이 모여 완성된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느꼈다. 관객의 환호 뒤에 숨은 노력을 가까이서 경험하며, 음악과 공연이 세상을 얼마나 따뜻하게 만들 수 있는지, 그리고 그 한가운데서 일할 수 있다는 자부심을 얻었다. 콜드플레이의 유토피아 같은 무대는 내 인생의 별빛이 되었고, 나도 언젠가 누군가의 마음에 희망을 심는 공연을 만들고 싶다는 다짐을 남겼다.


아울러 난 군대를 제대하자 마자 파이브가이즈에서 23년 9월부터 24년 6월까지 일을 했고 그 열정적인 분위기를 잊지 못해 재입사하여 지금도 파이브가이즈에서 스태프로 일하고 있다. 햄버거와 감자튀김, 쉐이크를 만들고, 손님을 맞이하고, 동료들과 함께 바쁜 시간을 견디며, 나는 ‘팀워크’와 ‘존중’의 가치를 배웠다. 누군가는 주방에서, 누군가는 카운터에서, 누군가는 청소를 하며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할 때, 비로소 하나의 매장이 완성된다는 걸 느꼈다. 이곳에서도 나는 ‘현장’의 중요함과, 작은 일이 모여 큰 감동을 만든다는 걸 다시 한 번 배운다. 대학에서는 다양한 사람들과의 소통, 배움, 그리고 성장의 시간을 보냈다. 내가 만난 수많은 사람들, 그들과 나눈 대화, 함께한 프로젝트, 그 모든 경험이 내 삶의 엔딩크레딧에 한 줄 한 줄 새겨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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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삶을 자랑하고 싶지 않다. 오히려, 내가 정말 열심히 살아왔는지, 내 이름이 누군가에게 의미 있는 한 줄이 될 수 있을지 끊임없이 지금도 고민하는데 시간을 보내고 싶다. 공연이 끝난 뒤, 무대가 어두워지고 관객이 모두 떠난 텅 빈 공연장에서 공허함과 뿌듯함을 느끼며 언젠간 올라가 있을 엔딩크레딧을 바라본다. 그 한 줄이, 내 가족에게, 그리고 나 자신에게 ‘너, 정말 열심히 살고 있구나’라는 작은 위로가 되었으면 한다. 누군가는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누군가는 무대 뒤에 머문다. 하지만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 노력이 결국 한 편의 엔딩크레딧으로 남는다는 것. 그게 내가 공연을 기획하고, 현장에서 땀 흘리며, 오늘도 파이브가이즈에서 일하는 이유고 보훈외교단으로서 코리안메모리얼페스타에서 기업유치도 하고 지평주막부스를 이끄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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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내 이야기를 푸념하듯 하고 싶어 이 글을 두서 없이 썼지만 앞서 말했듯이 백상예술대상에서 본 엔딩크레딧 영상은 내게 큰 울림을 주었고 이 글을 쓰는 이유다. “엔딩크레딧에 이름을 올리는 건, 잘 살고 있다는 걸 가족들에게 보여주는 것”이라는 말이 내 마음을 흔들었다. 무대 위의 화려함은 잠깐이지만, 무대 뒤에서 묵묵히 일하는 스태프들의 이름이 엔딩크레딧에 남는 순간, 그 순간이야말로 진짜 ‘삶’의 증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공연이 끝나고, 관객이 모두 떠난 뒤 무대 위에 남아있는 건 조용한 조명과, 스태프들의 이름이 흐르는 엔딩크레딧뿐이다. 그 한 줄 한 줄이, 누군가의 인생이고, 나 역시 그중 한 줄을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에 조금은 뿌듯하고, 조금은 감사하다.



나는 앞으로도 내 이름이 담긴 엔딩크레딧을 위해, 그리고 언젠가 누군가에게 작은 감동을 줄 수 있기를 바라며 오늘도 나의 현장을 살아간다. 공연장에서, 파이브가이즈에서, 대학교에서 늘 ‘진심’으로 임하려고 한다. 내가 하는 작은 일이 누군가에게는 큰 감동이 될 수 있다는 걸 믿기 때문이다. 노란 신호등처럼, 내게 주어진 단 몇 초의 순간이라도, 나는 그 자리에서 온 힘을 다해 빛나고 싶다. 누군가에게는 스쳐가는 존재일지라도, 나의 작은 노력이 누군가의 길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으로, 오늘도 나는 무대 뒤와 일상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있다. 엔딩크레딧에 내 이름이 올라가는 그 순간까지, 나는 오늘도 정말 열심히, 그리고 진심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게 내가 나 자신에게, 그리고 내 가족에게 보여주고 싶은 가장 솔직한 ‘잘 살고 있다’는 증거다. 무대 위 온스테이지와 무대 뒤 백스테이지, 그리고 일상 속에서 노란 신호등처럼, 나만의 엔딩크레딧을 써 내려가는 중이다. 그 한 줄이 언젠가 누군가의 마음에 닿기를, 그리고 나중에 지금의 나의 부모님과 동생처럼 나의 가족이 생겨 이 글을 돌아볼때 열심히 살았다는 삶의 증거가 되기를 소망하기 위해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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